이 영화는 이제까지 수업시간에 본 영화들과는 조금 다른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된다.
한 소년의 성장을 이야기한다기보다는 꿈을 갖고 노력하는 자들에게 이 영화가 ‘실화’라는 점을 강조하여 희망을 전해주고 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내가 생각할 수 있었던 건 단 한 가지. “나도 할 수 있다”라는 것이었다. 난 이제까지 너무 어리석고 이기적이었던 것 같았다. 당장에 대학 입시 걱정을 하고 있으면서도 집에 가면 잠만 자고 그 다음날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는 절망스럽게 얘기하는데 에 익숙해졌다. 그런데 이 영화, 정말 실제로 있었던 일을 각색한 이 영화는 그런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과연 미식축구선수가 아니면 대학도 못가고 아버지를 따라 탄광촌으로 가야하는 신세, 그것도 아주 시골에서 로켓을 만든다는 터무니없는 꿈과 예술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영화과로 대학을 진학 해보겠다는 꿈 중에서 어떤 게 더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누구나 후자 쪽을 말하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부끄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나에게도 어떤 작은 희망을 심어준 영화였다.
<옥토버 스카이>는 희망을 전해주고 있지만 기본 플롯으로는 소년의 성장이야기가 들어간다. 주인공 호머의 성장을 통해 노력을 하면 이루어진다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이제까지 우리가 보았던 영화들에게 몹시 충실하다. 먼저, <스탠 바이 미>에서처럼 형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주인공이 나온다. 주인공 형은 미식축구에 재능이 있지만 주인공 동생들은 자기가 뭘 해야 할지 정하지도 않은 채, 무의미하게 인생을 살아간다. 또 <개 같은 내 인생>에서처럼 누군가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 여기서는 아빠의 탄광촌 부하직원인 아저씨가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호머가 ‘꿈’을 잃지 않게 하기위해서 도와주던 그 아저씨는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호머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또 자신의 가장 열렬한 팬이었던 선생님 랠리도 불치병에 걸리자 호머는 그들을 위해 다시 한번 도전한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는 <허공에의 질주>처럼 아빠와의 불화가 갈등의 원인이 된다. 이 점은 영국영화 <빌리 엘리어트>와도 같다. 자신을 따라 같이 신분을 숨기면서도 가족애는 유지하자고 말하는 아빠나 현실을 직시하라면서 자신의 직업을 물려주는 아빠나 아들이 상류층들이나 보는, 계집애들이나 하는 발레를 하겠다고 하자 말리는 아빠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아빠들은 아이들을 위해 큰 결심을 한다. 아들의 자유를 위해 놓아주고, 아들을 위해 자신의 자존심을 굽히고, 아들을 위해 최대한 지원을 해준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던 아들에게 큰 희망을 안겨주게 한다.
이렇듯 <옥토버 스카이>는 성장영화들이 한 번씩은 써먹었던 플롯을 그대로 가지고와 조금씩 변형시키면서 자기 껄로 소화하고 있다. 그러면서 ‘희망’은 버리지 말자고, 너보다 더 악조건에서 이렇게 훌륭하게 된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 나도 앞으로 불평만 하는 비관론자가 되기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걸 최대한 즐기고 노력해서 꼭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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