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프랑코의 쿠데타로 촉발된 3년에 걸친 스페인 내전이 끝난 1939년, 부모가 좌파였던 10살 소년 카를로스는 산타루치아의 어느 고아원으로 간다. 운동장 한복판에 불발된 폭탄이 남아 있는 황폐한 고아원, 이곳에서 카를로스는 유령의 속삭임을 듣는다.
카를로스는 자신의 침대가 참혹하게 죽은 소년 산티의 자리였다는 걸 알게 되고 복잡하게 얽힌 고아원의 비밀이 하나둘 드러난다. <악마의 등뼈>에서 유령은 단순히 관객을 겁주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첫 장면에 흘러나오는 독백은 “유령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끝없이 반복되도록 운명지어진 끔찍한 순간… 번번이 되살아 나타나는 죽은 어떤 것, 오랫동안 연기된 어떤 감정….” <악마의 등뼈>에서 유령은 스페인 내전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스페인 역사를 연상시키는 강력한 상징이지만 역사적 배경을 모르고 봐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유연하고 우아한 호러영화.
[악마의 등뼈] 파시스트에 저항하는 아이들의 연대....
이 영화는 <판의 미로>의 전작이다. 전작이라는 의미는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판의 미로> 전에 제작한 스페인어 영화라는 의미이자 동시에 논리적으로도 <판의 미로>의 전편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판의 미로>가 1944년 이미 스페인 내전이 파시스트의 승리로 결정된 가운데 일부 좌파를 군이 추격하는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면, <악마의 등뼈>는 1939년 파시스트의 대공세가 막바지에 이른 시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두 영화 모두 파시스트 지배 하의 순수한 어린 아이들의 저항과 탈출을 그리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두 영화는 '거울이자 쌍둥이 같은' 면모를 지니고 있다. 다만, <판의 미로>가 파시스트의 암울한 지배에서 탈출하고픈 한 소녀의 판타지를 그린 것이라면, <악마의 등뼈>는 어린 산티를 죽이고 다른 아이들을 억압하는 어른(파시스트)에 맞서 어린 소년들이 서로 연대하고 게릴라 전법으로 산티를 죽인 바로 그 자리에서 파시스트를 처단하고 먼 길을 떠나는(현실의 탈출) 얘기를 그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판의 미로>보다 훨씬 더 직접적이고 강력한 주장을 담고 있다고 보인다.
유령보다 더 무서운 존재. 그것은 '파시스트'다.
※ 영화를 보고 나서 알게 된 사실. Backbone이라고 하면 말 그대로 등뼈란 뜻도 있지만, 산업의 인프라나 단체의 재정적 자원과 같은 것을 지칭하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모체의 죽음으로 사산된 태아로 담근 술병 속의 태아를 가르키는 말이지만, 또한 이 술을 팔아 고아원을 유지하니 Devil"s backbone은 고아원의 backbone이기도 하다. 죽은 아이들로 산 아이들을 키우는 셈인데, 민주주의는 피를 먹으며 자란다라는 말이 연상되는 지점이다.
※ 개봉 당시 미국 평론가 로저 에버트의 평 : “<디 아더스>와 비슷하게 야심적이고 지적인 영화지만, <디 아더스>보다 강력하고 설득력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