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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영화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한창 영화에 빠져서 마치 내 자신이 굉장한(혹은 천재적인) 영화광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던 몇년전... 저는 우리나라 영화와 헐리우드 영화를 뛰어넘어 이젠 유럽의 소위 예술 영화라는 것들에 도전할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때 제 눈에 가장 먼저 띈 영화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희생]이라는 영화 였습니다. 깐느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는 이 낯설은 러시아 감독의 영화는 제게있어서 나의 예술적인 감각을 시험해 보는데에 정말로 효과적인 영화인 듯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며칠간 저는 [희생]과 자존심을 건 사투(?)를 벌여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희생]을 비디오에 꽂아놓고 마치 고문을 당하듯이 영화를 봤던 기억은 정말로 참가 어려운 괴로움이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알수도 없었으며 알기도 귀찮았습니다. 그 영화를 보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감기는 눈을 겨우겨우 참으며 인내심 시험을 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괜한 자존심에 영화를 끝까지 보겠다는 일념으로 몇번이고 플레이 버튼과 정지 버튼을 번갈아 눌러야 했으며, 결국 그날의 고통은 제가 엄청난 영화광이 아니며 그저 평범한 영화 관객이라는 깨달음을 안겨 주었습니다. (엄청난 영화광과 평범한 영화 관객의 경계는 모호하지만... 암튼 전 지금 평범한 영화관객인 제 모습에 상당히 만족합니다.) [희생]에 극찬을 해놓은 영화 평론가들을 보면 그들이 진짜로 이 영화에 영화적인 재미와 진정한 감동을 얻고 이런 글을 썼는지 아니면 단지 영화적인 허영심을 과시하기위해 이해하지도 못했으면서 차마 지루했다는 말은 못하고 그런 글을 썼는지 궁금해지더군요. 물론 [희생]을 보았던 때가 벌써 6년전의 일이니 저도 지금쯤 그 영화를 다시 본다면 어쩌면 [희생]을 끝까지 그것도 영화에 대해서 이해를 하면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제게 있어서 영화는 즐거움이기에 졸음을 참아가면서까지 예술 영화를 봐야한다는 쓸데없는 허영심 따위는 이제 없습니다. 그런데 헐리우드의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바로 이러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영화인 [솔라리스]를 리메이크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스티븐 소더버그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조합... 거참! 기묘하군요.
이 영화의 관련 인물들을 살펴보면 정말로 어떻게 이러한 조합이 가능했던 것인지 궁금해 집니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과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조합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기묘한데 거기에 헐리우드 상업 영화의 거두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제작을 맡았습니다. 솔직히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과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은 깐느 영화제가 총애하는 감독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은 26세에 만든 데뷰작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라는 영화로 깐느 영화제 그랑프리를 차지했을 정도로 깐느 영화제에서 그 능력을 인정받은 감독입니다. 그 후 그는 [에린 브로코비치], [오션스 일레븐] 등 헐리우드 상업주의 영화와 [트래픽]과 같은 작가주의적인 영화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며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있으며, 헐리우드 감독중에서 세계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몇 안되는 감독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임스 카메론은 다릅니다. 그는 너무나도 완벽하게 헐리우드의 상업주의 영화의 그 한복판에 서 있는 인물인 겁니다. 그런 그가 지루하기로 악명이 높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영화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정말로 이상하게 보여집니다. 암튼 이유야 어떻든간에 제임스 카메론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솔라리스]를 헐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하기를 원했으며, 그 감독으로 젊고 유능하며 흥행과 비평면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는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발생합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솔라리스]를 보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솔라리스]에 내려진 평을 종합해본 결과 이 영화는 SF라는 외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심오하고 철학적인 주제를 내포하고 있는 전혀 영화적인 재미와는 동떨어진 영화임에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이 영화의 철학적 주제들이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손에 의해서 다분히 헐리우드적인 SF 로맨스 영화로 탈바꿈한 것입니다. 분명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영화를 리메이크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제작자인 제임스 카메론의 [타이타닉]에 좀 더 많은 영향을 받은 듯한 인상을 줍니다.
물론 안드레이 타르프스키 감독의 [솔라리스]를 보지 않은채 이러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무척이나 위험한 짓입니다. 하지만 [희생]을 보며 느꼈던 안드레이 타르프스키 감독의 그 심오한 지루함을 생각한다면 분명 그가 연출한 [솔라리스]가 최소한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연출한 [솔라리스]처럼 가슴 아픈 사랑에 매달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그 증거로 안드레이 타르프스키 감독의 [솔라리스]는 러닝 타임이 거의 3시간에 달합니다.(왜 아니겠습니까??? [희생]의 그 고집스러운 러닝 타임을 생각한다면... 윽~) 타르프스키 감독은 그 긴 러닝타임동안 영화의 외형적인 스토리 라인과는 전혀 관계없는 등장 인물들의 내면의 갈등을 그리는데에 사용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솔라리스]에 와서는 러닝 타임이 절반인 1시간 30여분으로 대폭 줄어들었습니다. 물론 러닝 타임이 줄어들었다고 해서 그 영화의 작품성도 같이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만큼 표현이 시간이 줄어든 만큼 영화는 스토리 전개와 작접적인 관계가 있는 장면들에게 치중하게 될 것이며, 당연히 등장인물들의 내면적인 표현의 시간은 휠씬 줄어들 것입니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솔라리스]를 보면 그러한 점이 확연히 눈에 띕니다. 이 영화는 주인공인 정신과 의사 켈빈(조지 클루니)가 어떠한 정신적인 황폐함을 지니고 있는지 표현하지 않습니다. 아니 표현을 하기는 하지만 켈빈의 레아(나타샤 매켈혼)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이 영화의 진행을 이해시키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감안한다면 그 표현의 시간이 너무나도 짧게 느껴집니다. 결국 소더버그 감독은 켈빈의 내면을 표현하는 대신 플레쉬백을 통해서 그의 과거를 직접적으로 관객에게 보여줌으로써 켈빈의 내적 황폐함을 관객에게 이해시키려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그리 성공적이지 않다는 것은 영화의 중반부에 가면 확연히 드러납니다. 솔라리스 행성의 신비스러운 작용으로인하여 나타난 죽은 레아에 대한 환상 아닌 환상(영화에선 비지터라고 표현하더군요)을 맞이한 켈빈의 행동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 뿐입니다. 그는 먼저 그녀를 우주의 저 밖으로 내쫓아 버립니다. 이러한 행위는 켈빈이 내적으로 레아를 그리워하면서도 그녀를 죽음으로 몰았다는 죄책감과 그로인한 두려움을 함께 내포하고 있다는 설명이 충분히 이루어 진다음에야 가능한 행위입니다. 결국 켈빈은 죽은 레아의 비지터를 봄으로써 그녀에 대한 그리움보다는 두려움이 먼저 생겨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그 어디에도 그러한 켈빈의 내면적인 갈등은 보여주지 않습니다. 단지 관객 스스로 켈빈의 갈등을 상상할 뿐이니다. 두번째로 나타난 레아의 비지터로 인하여 켈빈은 레아에 대한 그리움이 되살아나고 그녀와의 이루지 못한 사랑에 집착하게 됩니다. 이러한 이 영화의 진행은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솔라리스]가 가졌었던 심오한 철학적 주제 접근은 무시하고 켈빈과 레아의 안타까운 사랑에 촛점이 맞춰져 관객의 감성을 자극하려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것에 있습니다. 이 영화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그 심오함을 무시하고 [타이타닉]식의 헐리우드 감성주의 적인 영화로 탈바꿈되었다는 사실은 사실 제임스 카메론이 제작을 맡음으로써 어느정도 예견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제임스 카메론의 입장에선 타르코프스키 감독이 만든 지루한 영화에 자신의 거액을 쏟아부울 마음이 전혀 없었을 겁니다. 그는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지극히 지루한 [솔라리스]라는 영화에서 어느정도의 상업적인 냄새를 맡았을 것이며,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은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예술성을 어느정도 보전하며 상업적인 재미를 끌어내는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을 테니... 어찌 우리가 그러한 제임스 카메론의 상업적인 계산에 욕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영화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이 영화가 지루하다는 겁니다. 깐느 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처음 상영하고 기자 회견을 가진 자리에서 한 기자가 ''너무 지루하다''라는 발언을 해서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과 조지 클루니를 발끈하게 했다는 군요. 하지만 그 기자의 발언은 사실입니다. 물론 영화를 보는 사람에 따라서 이 영화가 감동적일 수는 있겠지만 최소한 제 입장에서 본다면 이 영화는 지루합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솔라리스]가 지루한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그의 영화적인 표현 방식이 원래 그러하니 그의 영화가 지루하다고 욕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단지 그의 영화를 안보면 되는 겁니다. 하지만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영화가 지루한 것은 근본적으로 문제가 틀립니다. 제가(제임스 카메론이) 그에게 원하는 것은 소더버그 감독의 예술적인 감각 속에서 헐리우드적인 상업적 재미가 가미된 영화들 입니다. 지금까지 그는 그러한 제 욕구를 총족시켜 줬습니다. 아마도 제임스 카메론도 그러한 점을 높이 사서 그를 연출자로 내정한 것일 겁니다. 하지만 [솔라리스]의 리메이크라는 프로젝트를 맡음으로써 소더버그 감독은 예술적인 감각이 두드러진 영화도 아닌 그렇다고 상업적인 재미가 충만한 영화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영화를 만들고 말았습니다. 차라리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솔라리스]처럼 영화적인 재미를 포기하고 작품성에 매달렸다면 이 영화가 관객의 외면을 받았더라도 그의 도전 정신만은 높게 평가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작품성을 포기하고 철저하게 상업적인 재미에 매달렸다면 타르코프스키를 사랑하는 평론가들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을테지만 최소한 관객에 대한 배신을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소더버그 감독은 이도저도 아닌채 방황하며 결국 [솔라리스]를 원작의 작품성을 완전히 훼손하면서도 지루하기까지 한 영화를 만들고 말았습니다. 스티븐 소더버그여! 이럴바엔 어찌하여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에게 도전하였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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