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장커는 소심하게도 허물어지는 건물과 그 건물들을 허물고 있는 노동자들, 주변사람들을 화면에 담으면서 한동밍과 센홍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권력이 허용하는 한계선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란 감독들이 그렇잖은가. 이것저것 표현에 제약을 받고 나면 어쩔수 없이 한정된 화면으로 한정된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는 것 말이다. 그런데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깊이 파고들 자신이 없었다면, 자신의 영화가 난도질 당하거나, 중국권내에서 상영조차 안될 뿐더러 지아장커 자신에게도 위해가 올게 뻔하여 두려웠다면 아예 카메라를 들이대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다시말해 산샤 이야기를 할려고 맘먹었다면 그런 위해들을 각오하고 치열하게 부딪혔어야 하는거 아닌가 말이다.
정성일은 마지막 씬의 줄타는 노동자의 모습을 애매하게 표현했다. 위험, 마술, 응원등의 단어들을 동원하더니 급기야는 태연자약으로 마무리한다. 반면 지아장커는 분명하게 말한다. "매우 위험하다는 뜻입니다." 이 말이 웃기는 건 감독 자신이 자신의 영화에 상징은 없다고 말했다는 거다. 정성일에게는 이 영화가 올해의 영화였는지 모르겠지만, 내겐 감독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게 해 준 영화였고, 중국 권력에 대한 냉소를 한층 더 올리게 한 영화였다.
이 영화를 통해 본 중국, 박정희 뒷꽁무니 따라가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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