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에 있어 공동의 기쁨은 잠시이나 공분은 오래 간다는 말이 있다. 대중의 심리는 분노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매체 사회면을 장식하는 흉악 범죄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그만큼 더 즉각적으로 나타난다.
영화 '그놈 목소리'(감독 박진표, 제작 영화사집)는 이러한 대중의 공분에 직격탄을 날린다. 지난 91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형호군 유괴 살해 사건을 영화화한 '그놈 목소리'는 15년이 지나 공소시효가 만료된 영구 미제 사건에 대해 다시 한번 환기할 것을 호소한다. 잊지 말자고, 범인을 꼭 잡자고.
'죽어도 좋아', '너는 내운명'을 연출한 박진표 감독은 다큐멘터리 프로듀서의 경험을 십분 살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을 선보여왔다. '내 상상력이 빈곤하여'라는 이유를 대기도 하지만 박진표 감독의 영화는 실화라는 호기심 어린 소재와 영화적 재미를 더해 화제를 모아왔다.
세번째 장편 연출작 '그놈 목소리'는 무엇보다 화려한 출연진으로 기대를 더했다. 충무로 최고의 연기꾼 설경구와 CF스타 김남주의 6년만의 복귀작, 그리고 톱스타 강동원의 악역 연기라는 화려한 간판을 내걸었다.
예고편을 통해 공개된 김남주의 절절한 모성 연기와 호기심을 자극하는 스토리라인은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영화는 유괴에서부터 사체를 발견하는 44일간의 사건일지라 할 수 있다. 아이가 유괴되고 피말리는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변화하는 주인공들의 심리와 일상을 무엇보다 세밀하게 잡아낸다.
그러나 '너는 내운명' 때의 폭발적인 영화적 감성을 기대하면 적잖은 실망을 느끼게 된다. '그놈 목소리'에서는 과잉의 에너지를 찾아보기 힘들다. 2시간 내내 영화에 집중하게 되지만 클라이맥스 없이 영화는 흘러간다. 특히 협박 전화로 범인과 협상하는 과정은 매번 비슷한 양상으로 되풀이돼 지루한 감도 있다.
영화 '그놈 목소리'에는 쥐어 짜내는 눈물도 스릴의 절정을 내달리는 장면도 없다. 그것은 영화를 보는 우리 모두 이 사건의 비극적인 결말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화가 가지는 호소력과 무게감은 2시간 동안 스크린을 응시하게 만드는 힘이다. 그리고 오랜 공백기간에도 불구하고 애끓는 모성 연기를 펼친 김남주와 아이를 찾기위해 동분서주 하면서도 무기력할 수 밖에 없는 아버지 설경구의 모습은 비통함을 배가시킨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심정에 감정을 대비시키며 바라보는 영화는 보는 내내 고통과 긴장감을 준다. 영화를 보고 난뒤 그 무거움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9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이형호군을 한번 더 기억하거나 공소시효의 문제점에 대해 생각한다면 그것은 감독과 배우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그놈 목소리'를 만든 목적이 거둔 성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