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따윈 필요없어] 일본 드라마의 한국적 변주의 참담한 실패
일본에서 TV드라마로 성공한 원작이 있다는 얘기를 이 영화가 나오면서 들었다. 성공한 일본 TV 드라마의 한국적 변주는 과연 성공할 것인가? 안타깝게도 국민 여동생이라 일컬어지는 문근영과 탄탄한 연기력의 김주혁을 내세운 한국적 변주는 참담한 결과를 내놓으며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처음(그리고 마지막)에 나오는 설경은 이 영화가 딛고선 지점을 명확히 보여주는데, 그건 무국적성이고, 현실과 괴리된 또는 유리된 영화라는 점이다. 대사만 한국말일뿐 풍경과 대사 그리고 정서는 아마도 일본? 또는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한국이 아닌) 외국일 것이다.
물론, 그런 무국적성이 필요한 영화가 있다. 주로는 SF 장르나 판타지에서. 문제는 이 영화 [사랑따윈 필요없어]는 무국적성보다는 발을 딛고선 탄탄한 현실 속에서 이야기를 끄집어 내야 감동이 살 수 있는 영화라는 점이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시간의 느림을 뼈저리게 느꼈던 건 다름아닌 현실성의 결여에 있었다.
첫 설경(삿포로에서 촬영했다고 하는)을 지나, 그 이름에서부터 무국적성을 명확히 보여주는 줄리앙의 직업에서 느껴지는 낯설음. 일본에선 호스트라는 직업이 정당하게 대우 받고 사회적으로 인정 받는 직업일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선 호스트바의 존재 자체가 퇴폐업으로 분류되어 단속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문근영이 길거리에서 아무리 아도니스(이름 참 거시기하다) 바를 찾아도 왠간해선 찾기 힘들 것이다.
대체 왜 녹차밭 사이로 대저택을 세워 놨는지도 의문이고, 그렇다고 하면 꽤 시골일 것 같은데, 잘 꾸며진 아이들의 떼거리 등장은 허탈한 웃음을 만들어 낸다.
결정적으로 한국은 세계 어느 국가보다 국민에 대한 관리 통제 체제가 확실한 국가라는 점이다. (물론 몇몇 예외는 있을 수 있다. 북한 같은) 따라서 줄리앙이 어릴 때 집을 나간 오빠인지는 일단 주민등록증 검사부터 시작해야 마땅하다. (그 전에 변호사라면 친오빠를 찾을 좋은 방법은 수도 없이 많다. 핸드폰에 전화하는 것 말고) 그 다음으로 주민등록등본, 호적등본 등등. 물론 최후로는 DNA를 통한 친자 확인까지. 왜 처음부터 쉬운 방법은 시도하지 않고 줄리앙의 말만 믿고 집에 들였는지.. 줄리앙의 입장에서도 밝혀질 수밖에 없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걱정은 애당초 없었는지....
언제부터 우리나라의 사채업자들이 멋드러진 시계 들고 다니며 말로만 어르다, 시간 지나면 무조건 쑤시고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나마 이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이기영의 연기도 비현실성에 묻혀 버린다.
이렇게 현실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무국적 영화지만 재미라도 있으면 감사한 게 보는 사람의 입장이다. 정말 좌절하고 싶은 건 재미도 없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심각한 영화라도 상영시간 119분 동안 적어도 몇 번은 웃을 수 있도록(어이없는 웃음 말고) 배려해줘야 하는 건 아닌가. 무슨 70년대, 80년대 멜로 영화도 아니고.
영화를 보고 나서 대체 어떤 감독인가 찾아 보았다. 세상에나. 뮤직비디오와 CF 출신 감독이라니. 그런 감독이 이처럼 느려터진 영화를 만들었단 말인가. 뮤직비디오와 CF 출신이라는 장점은 어느 한 군데에서도 찾을 수 없는 영화를 만들다니.
문근영, 김주혁 캐스팅할 시간과 노력의 1/10이라도 시나리오의 완결성에 투자했다면 이처럼 어이 없는 영화가 나오지는 않았을 텐데. 차라리 이럴거면 일본 드라마의 하일라이트를 보여주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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