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사건을 영화화한 <그놈 목소리> 는 촉망받는 9시뉴스 앵커인 아버지와 그의 부인이 이룬 평범한 가정이 아들의 유괴로 인해 망가져가는 모습을 처절하리만큼 자세하게 묘사합니다. 아들의 유괴범은 단지 전화 통화 목소리 하나만으로 등장하지만 그 무미건조한 목소리는 그의 부모, 사건을 쫓는 경찰은 물론 동시에 그 모습을 바라보는 관객들까지도 충분히 분노를 일으킬 수 있을만큼 그들의 부성과 모성을 저당잡아 철저하게 협박하고, 처절하게 농락합니다. 또한 이미 <죽어도 좋아>, <너는 내운명> 으로 현실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묻혀지고 잊혀지고 있는 음지의 소재들을 극으로 끌어와 약간의 영화적인 설정과 재미를 섞어 그것들이 진지하게 재조명 받고, 사람들로 하여금 소외받는 그들과 그들을 소외받게끔 만드는 환경을 다시 한번 생각하기를 원하는 박진표 감독의 진심은 이 영화에서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영화를 만들며 정말 처절한 마음으로 힘들게 작업했다는 감독의 말이 영화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습니다.
설경구와 김남주는 유괴된 아들을 찾아 영화 전반적으로 엄청나게 동분서주합니다. 그 모습은 너무나도 절절하며 가슴이 아픕니다. 이 두 배우의 연기는 영화 속에서 최고의 앙상블을 보여줍니다. 설경구는 더 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로 정말 캐릭터 속에 완전히 빠져버린 상태에서 아들을 잃어버린 아버지의 모습을 관객들에게 보여줍니다. 긴 휴식과 함께 간간히 CF에서만 그 모습을 보였던 김남주도 관객들의 그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녀는 설경구가 내뿜는 에너지에 못지 않을 정도의 연기력을 보이며 역시 자식을 유괴당한 후 실의에 빠져 완전히 망가져가는 한 여자, 어머니의 모습을 보입니다.
사건이 일어난 동시대의 가장 전형적인 모습의 형사, 즉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으로 치자면 송강호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캐릭터로 나오는 김영철은 지금까지 영화에서 보여져왔던 모습과는 조금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습니다. 의외로 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처절하기만한 극에서 감초 역할을 하면서 늘 어느 정도 무게감 있는 남성적인 역할을 도맡아했던 김영철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그놈 목소리> 는 영화적 재미와 구성이 그리 뛰어난 영화는 아닙니다.
영화는 영화 제목처럼 그 범인의 목소리 하나만으로 극의 긴장을 진행시키고 있으며 동시에 이는 영화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으로 작용합니다.
아이는 극 초반에 굉장히 일찍 유괴를 당해 버립니다. 그 이후는 범인과 부모 그리고 경찰간의 팽팽한 밀고당기기가 영화의 대다수를 차지합니다. 단, 그 밀고당기기에 있어서 범인의 역할이 단지 전화 통화 목소리 하나만으로 대체되어야만 하는 상황이 효과적인 긴장감을 발생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비슷한 실제 일어난 사건의 소재를 다룬 <살인의 추억> 과는 많이 대비가 되는 부분입니다. <살인의 추억> 에서는 그 시대의 무능하기만 한 경찰이 지능적인 한 범인을 잡는데 있어, 연속되는 사건의 발생과 관객들을 계속해서 헛갈리게 만드는 용의자들의 존재 그리고 독특한 증인 캐릭터와 또 그에 얽히는 에피소드 등으로 효과적으로 관객들의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놈 목소리> 의 사건의 발생은 일찍이 발생하고, 경찰이 지목하는 용의자들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범인스럽지 않은 용의자들입니다. 또, 제대로 된 증인은 단 한명도 존재하지 않으며 에피소드는 아들을 잃은 설경구와 김남주의 슬픈 오열뿐입니다. 감독은 영화적인 재미보다는 당시 현실의 모습 묘사에 치중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더욱이 이 영화에서 경찰의 모습은 정말 무능 그 자체입니다. 이는 현실 고발적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 의 PD 였던 감독이 해당 프로그램의 첫 회에서 다뤘던 사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던 그 해에 벌어져 더욱 아이러니칼한, 시대의 무능에 오로지 부모만이 그 아픔을 짊어지고 나아가야만 했던 사건을 영화로 옮기면서 영화속에서 좀 더 그 시대 현실의 모습을 고발하고픈 감독의 심리가 드러나있는 부분입니다.
따라서 영화는 거의 전적으로 아들을 잃고 점점 공황 상태에 빠져드는 설경구와 김남주의 모습에 기대고 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도 리얼하게 아들을 잃고 망가져가는 부모의 모습을 묘사합니다. 특히 설경구의 마지막 씬(전적으로 관객들을 울리기 위한 영화적인 설정으로 보이는) 에서의 클로즈업 된 그의 얼굴은 가슴 아프도록 절절하게 아버지의 슬픔을 묘사하고 있으며, 김남주 역시 최근에 출산을 한 한 아이의 엄마로서 누구보다 그 아픔을 스스로통감해가며 피멍이 든, 아니 들어야만 했던 시린 가슴의 어머니를 보여줍니다. 영화를 제작하며 터져나오는 그들의 격한 감정을 제어하느라 힘들었을 감독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영화의 마지막은 당시에 녹음된 범인의 실제 목소리를 들려주며 이미 공소시효가 끝나버린 이 사건에 관객들의 관심을 호소합니다. 실제 범인의 목소리는 영화 상에서 들리는 강동원의 무미건조한 목소리보다 훨씬 차분하고, 감정이 느껴지지 않으며, 동시에 여유롭고 무능한 시대를 조소하는 듯한 소름끼치는 목소리입니다.
시간은 흐르고 강산이 변했고 시대는 영화속에서 김영철을 비롯한 그들이 그렇게나 외쳐댔던 ‘과학수사’ 가 일반적인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역할은 변하지 않았고, 더불어 부모의 마음, 자식을 잃는 슬픔은 영화속의 시대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 시대의 부모들은 왜 그렇게 44일간의 말도 안되는 수사 속에서 어이없이 자식을 잃어야만 했을까요. 아이를 찾아주기보다는 범인을 잡기에 급급했던 그들의 수사에 왜 아이가 변사체로 발견되었어야만 했을까요.
우리는 왜 그를 잡지 못했어야만 했을까요.
영화명 |
그놈목소리 |
감독 |
박진표 |
주연 |
설경구, 김남주 |
장르 |
범죄드라마 |
예상주관객층 |
10~50대 |
영화의장점 |
1. 설경구와 김남주의 혼신을 다한 열연
2. 처절하리만큼 리얼한 당시 현실의 묘사
3. <죽어도 좋아> <너는 내운명> 등을 통해 음지의 사람과 소재들을 이끌어 관심을 호소하는 박진표 감독의 진정성 |
영화의단점 |
1. 단지 범인의 목소리만으로 극의 긴장감을 유지시키는데 있어서의 긴장감 부족
2. 전반부 이른 사건의 발생과 그 이후 나타나는 에피소드들에 있어서 설경구와 김남주의 황폐화되는 모습에 전적으로 기대는듯한 모습
3. 영화의 호흡이 고르지 못한점, 완만한 감정 조절의 실패로 영화 내내 관객들을 힘들게 한다는 점 |
최종평가 |
흥행성 |
A- |
작품성 |
B+ |
reviewed by 마르슬랭 ( http://blog.naver.com/gcityangm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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