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니 다이아몬드를 실제로 보거나 만져본 적은 아직 한번도 없는 것 같다. 내 나이가 나이니만큼 아직 보석을 다룰 만한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만큼 엄두가 나지 않는 값어치를 하는 물건이기 때문에 접할 수 있는 기회가 극히 드물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비단 다이아몬드 뿐만이 아니라, 손톱만한 보석들이 몇백, 몇천만원 어치는 너끈히 호가하며 광채를 자랑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돈이란 것이 때론 저렇게 가벼울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 나름대로 생각하는 돈과의 교환 가치는 얼마나 실용적이냐 하는 것이다.(철없는 생각일 수 있다는 것,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런 내 나름의 가치를 염두에 둘 때, 손대면 톡 하고 깨질 것만 같은 그런 작은 보석들이 억억하며 값어치를 내고 있고, 거기에 또 목숨 걸고 달려드는 부유한 사람들의 모습은 꽤나 이해하기 힘든 풍경이기도 하다. 어디 보석 회사 광고 말마따나 영원한 아름다움을 지속하기 위해서? 막상 나같으면 하도 비싼 물건이라 목에 걸거나 손가락에 끼기도 무서울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러나 이런 인간의 깃털처럼 가벼운 욕망을 위해 대단히 무거운 것들이 희생되고 있다는 건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이렇게 손톱만한 아름다움을 위해 수 톤의 피가 희생되는 현실을 바라본다.
1999년 시에라 리온. 다이아몬드 광산을 둘러싸고 피바람이 불어닥친다. 한창 '혁명연합전선'이라는 반란군과 정부군 사이의 내전이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반란군이 다이아몬드로 활동 자금을 모으기 시작하고, 이를 위해 무고한 국민들을 사정없이 잡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반항하거나 다이아몬드를 탐낼 생각을 하는 사람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죽여버리고, 힘 좀 쓴다 싶은 청년들은 잡아다 노예처럼 다이아몬드를 채취시키고, 남자 아이들은 자신들의 뒤를 이을 살인병기로 키우는 것이다. 평범한 가장이었던 솔로몬 반디(디몬 혼수) 역시 희생자다. 갑작스런 반란군의 습격으로 가족과 헤어지고 다이아몬드 광산에 몰리게 된다.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다이아몬드를 캐던 솔로몬은 어마어마한 값어치를 할지도 모를 핑크 다이아몬드를 발견하게 되고, 이때문에 그를 끌고온 반란군의 애꾸눈 대장의 위협을 받는다. 한편, 아프리카에서 나고 자라 무기 거래로 먹고 사는 서양인 용병 대니 아처(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다이아몬드 밀거래 혐의로 체포되는데, 그 과정에서 솔로몬과 핑크 다이아몬드에 관한 일을 알게 된다. 지긋지긋한 아프리카의 현실에서 떠나고 싶어하는 대니는 솔로몬에게 모종의 거래를 제안한다. 그 다이아몬드를 찾는 조건으로 솔로몬의 헤어진 가족들을 찾게 해주겠다는 것. 그 과정에서 다이아몬드 밀수 현장에 대한 취재를 하던 기자 매디 보웬(제니퍼 코넬리)이 합류하게 되고, 이들은 숨겨놓은 핑크 다이아몬드를 찾으라 다시 반란의 한복판으로 들어간다.
일단 이 영화가 외형적으로는 액션 영화를 표방하고 있긴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가 상당히 출중하다. 그 중에서도 대니 아처 역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솔로몬 반디 역의 디몬 혼수의 연기가 꽤 인상적이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이 영화에서 서양인이면서도 아프리카에서 나고 자란 덕분에 미국적이지는 않은 독특한 영어 발음을 선보이며 '개성있는 액션배우'의 모습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아수라장이 따로 없는 아프리카 한복판에서 살벌한 일을 하며 살아오면서 아예 체념한 듯 속물처럼 행동하고, 그 속에서 황폐화된 속내를 드러내기도 하는 복잡한 심경을 지닌 인물의 모습을 멋지게 표현해냈다. 힘을 잔뜩 줘서 정말 신들린 연기처럼 보이게 하는 연기가 아니라, 실제 인물처럼 능글맞게 자연스러우면서도 깊이가 느껴지는 연기였던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피바람의 희생자인 솔로몬 반디 역의 디몬 혼수의 연기도 매우 멋졌다. 이 배우는 아프리카 출신 배우로서 이전까지는 다소 인상 강한 흑인 배우 정도로만 생각되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비슷한 비중, 아니 어쩌면 더 큰 비중일 수도 있는 주연급 역할을 맡아 제대로 강렬한 연기를 보여준 것 같았다. 평범한 가장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가 보여준 분노와 절망, 슬픔은 다듬어지지 않은 듯 거칠면서도 보는 사람도 부글부글 끓어오르게 만드는 폭발력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나 후반부 전투 장면에서 극에 달한 분노가 폭발하는 장면에선, 한편으론 무섭게 느껴질 수 있었음에도 그 속에 정제되지 않은 슬픔이 강하게 배여 있는 듯한 큰 파괴력을 보여줬다. 매디 보웬 역의 제니퍼 코넬리의 경우는 예의 청순가련 이미지를 벗어나 강인한 의지력을 소유한 여성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줬는데, 앞서 얘기한 두 배우의 연기의 개성이 워낙에 뚜렷했던 탓인지 상대적으로 좀 무난한 느낌을 주었다.
액션 영화를 표방하고 있는 만큼, 파워풀한 액션 장면들도 여럿 등장한다. 아무래도 헐리웃 거대 자본이 들어간 영화만큼, 시각적 효과에 있어서 돈을 아끼지 않은 면이 많이 보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가 보여주는 액션이 팝콘 먹으며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액션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구체적인 시간적, 공간적 배경 속에 논란의 소지가 충분한 현실 상황을 펼쳐놓은 채 그 속에 액션을 집어넣은 터라, 그들이 흘리는 피와 비명, 둔탁한 폭발음과 자욱한 연기는 그냥 영화라고 넘기기 힘들만큼 묵직한 고민을 안겨준다.
이 영화를 처음 보기 시작하면서 대번에 떠오른 영화가 <호텔 르완다>였다. 이름조차 생소할 아프리카의 한 나라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학살과 그 속에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유사한 점이 꽤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시콜콜 비교하지는 않겠지만, 간단하게 얘기한다면 이 영화는 <호텔 르완다> 못지 않게, 아니 어쩌면 더 복잡한 현실을 보다 안전하게 그리고 있었다.
이 영화 속 시에라 리온의 현실은 마주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참혹하다. 국민들을 위해 나섰다고 자처하는 반란군들이 국민들을 재미삼아 죽인다.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의 팔을 자르고, 어린 아이와 연약한 여성들의 목숨도 대수롭지 않게 빼앗는다. 그런 아비규환의 현장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노예처럼 끝도 없는 노동의 장으로 끌려가 언제 끝날지 모를 육체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한창 뛰어놀아야 할 남자 아이들은 차가운 총을 손에 쥐고 살인을 연습한다.
그런데 중요한 건, 이런 내부의 참혹한 현실이 단지 내부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린 대가로 얻어진 다이아몬드들은 내전 자금은 물론이요, 미국과 같은 떵떵거리며 잘 사는 선진국에 수출되어 불티나게 팔려나간다는 것이다. 물론 팔리는 다이아몬드들이 모두 이런 분쟁국가로부터 나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끝에 얻어진 다이아몬드들이 그저 가벼운 자기과시용, 장식용으로 소비된다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손톱만한 보석만도 못하게 만들어버리는 끔찍한 짓임이 틀림없다. 영화는 이렇게 보석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무고하게 희생당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이런 사람들의 모습은 상관없다는 듯 보석덩어리를 보며 자신의 욕망이 채워질 것에 침을 흘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대비시키며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그런 점에서 대니 아처와 솔로몬 반디는 꽤나 대립되는 지점에 서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대니 아처는 일단 보석을 얻어 자유를 되찾는 것을 1차 목적으로 삼으며 자신의 욕망이 채워지기를 학수고대한다. 반면 솔로몬은 이런 보석의 가치로 인해 가족과 헤어지며 죽음보다 끔찍한 생이별의 아픔을 감수해야 한다. 이런 두 사람이 일행을 이루면서 영화는 이들이 인종, 국적, 이해관계를 넘어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를 수도 있음을 넌지시 얘기하고 있는 것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진저리쳐지는 참혹한 현실 속에서, 한없이 이상적이기만 한 해결 방안만 떠올리는 것도 별로 어울리지는 않은 것 같다. 그보다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얼마나 현실이 끔찍하고 얼마나 우리가 무지한지를 깨닫는 일이다.
신이 우리가 한 짓을 용서하실 수 있을까 싶었다는 대니 아처의 말처럼, 영화 속 그곳은 한줌의 보석을 위해 사람으로서 용납할 수가 없을 온갖 잔혹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아프리카 내의 끔찍한 현실이 외부와는 철저하게 차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외부의 사람들은 그런 피의 대가로 얻어진 보석들을 좋아라하면서 차고 다니고, 그런 부유층들의 만족도가 높아질 수록 거기에 필요로 하는 피의 양은 점차 늘어간다. 이렇게 외부가 번쩍번쩍해질수록 내부는 점차 누더기가 되어 가는데, 이런 안타까운 현실은 한 단어를 통해 완벽하게 격리된다. 'TIA'(This is Africa. 여기는 아프리카다.) 얼마나 많은 피가 흘러 넘치고, 얼마나 많은 목숨이 스러지든 간에 그건 아프리카 내의 생리일 뿐 외부가 손을 댈 수는 없다는 논리다. 대니 아처가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는 이 말은 아무렇지도 않아서 더 섬뜩하다. 그만큼 아프리카 안에서 희생당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존엄성을 가볍게 무시하는 꼴이 되어버리니 말이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논리를 방패막 삼아, 다이아몬드를 어디까지나 '영원히 남아있는 아름다움'의 대명사로만 인식했던 수많은 사람들 역시 그 뒤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비명에 귀를 막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리 대니와 솔로몬이 벗어나려 발버둥치고, 또 가까스로 벗어난다 하더라도, 그들만 빠져나온 채 아프리카의 문은 또 다시 닫혀있을 것이라는 사실이 무섭게 느껴진다. 그와는 상관없이 여전히 격리된 아프리카 속에서는, 단순하지만 무섭기 짝이 없는 'TIA' 논리를 무기로 보석을 둘러싸고 사그라들지 않을 피바람이 불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영화가 보여주는 다소 낙천적일 수도 있는 결말은 생각보다 훨씬 참혹한 현실을 다소 안전하게 매듭지으려는 구석도 보여주는 것 같아 다소 쓴맛을 남기는 것이 사실이다.
이 영화는 이처럼 사회적, 정치적 메시지를 강하게 띄고 있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디까지나 헐리웃 상업영화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구석도 있다. 다소 불필요하게 느껴지는 대니와 매디 사이의 러브라인 구축 노력이라든가, 끝으로 갈수록 대니가 마치 영웅처럼 그려지고 있는 모습 등이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안전한 울타리 속에서 차마 보지 못했을 세계의 또 다른 모습을 꽤 생생하게 보여줬다는 점은 충분히 인정할 만하다. 손톱만한 보석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짐승같은 짓을 저지르고,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감내해야 했는지 목격하지 않았는가. 쇼윈도우 너머 진열된 화려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원망스럽게 바라보는 솔로몬처럼, 영화를 보고 나서 다이아몬드를 보며 조금이라도 몸서리가 쳐졌다면, 이 영화는 우리에게 충분히 중요한 걸 심어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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