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더 없이 아름다운 우리들의 시간....
공지영의 베스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의 스토리는 영화 개봉 전부터 이미 오픈되어 있었고, 스놉시스 그대로다. 즉 뻔히 예측 가능한, 그리고 예상한대로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눈물짓게 만들고 가슴으로부터 절규하게 만든다.
아마 그 누구도 원작 소설을 읽으며 주인공인 유정과 윤수에 이나영과 강동원을 대입시켜 상상한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정해성 감독이 여러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특히 강동원을 캐스팅한 이유가 강동원이 죽는 모습이 사형제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던져 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감독의 의도는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생각된다.
이나영도 그렇지만, 뜻하지 않게 살인을 저지른 후 삶을 포기했다가 다시금 삶의 희망을 가지게 된 사형수 윤수 역의 강동원 연기는 꽤 괜찮았다. 특히 원작에선 경기도 출신이라 사투리 사용이 없었는데, 영화에서의 경상도 사투리가 극의 리얼리티를 살렸다고 보인다.
영화는 원작 소설의 자자분한 가지들을 쭉 쳐내고 둘의 사랑으로 바로 돌입해 들어간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이에 대한 평가가 다를 수 있다고 보는데, 소설과 달리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기가 벅찼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소설보다 오히려 영화에 더 점수를 주고 싶다. 소설에서의 강한 종교적 정서가 많이 감쇄된 것이 나에겐 긍정적으로 다가온 반면, 영화가 초반부를 넘기면서 모니카 수녀가 갑자기 화면과 이야기에서 완전히 배제되고, 유정의 시니컬함이 소설보다 더 과격하게 표현된 건 좀 아쉽게 느껴졌다.(소설에서는 행동보다는 비웃는 듯한 언어로 표현되었는데 꽤 재미가 있었다.)
공지영 씨가 이 소설을 쓰게 된 이유라면 당연히 사형제에 대한 반대가 큰 작용을 했겠지만, 구체적으로는 김영삼 정부 말기 사형수의 대규모 처형이 배경이 되고 있다. 1997년 12월 18일 대통령선거에서 국가반란혐의로 사형까지 선고됐던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자신의 임기 동안은 사형수에 대한 처형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선언은 국내외 인권단체들에 큰 힘을 주었고, 인권 중시 국가로 한 단계 올라설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한 선언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정부가 출범을 앞두고 김영삼 정부는 무려 23명의 사형수를 처형했으며 이는 몇 십 년 만의 최대 규모였다. 원작 소설에선 이 부분이 꽤 자세하게 거론되고 있다. 윤수가 구체적으로 삶의 희망을 가질 수 있던 것도 바로 차기 정부의 사형 보류 입장이 주요한 근거가 됐던 것이다.
뻔히 예정된 결론임에도 그것이 사람의 감정을 흔드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의 사랑에 대한 얘기이고 죽음에 대한 얘기이기 때문이다. 종교적으로 보면 처형은 재판관의 몫이 아니라 신의 몫이기 때문에 사형을 반대할 수도 있고, 아니면 오판 가능성에 대한 우려, 아니면 인권 가치에 대한 존중 등, 그 어떤 이유라 할지라도 더 이상 이 문제가 정치적 이유로 계속 보류되고 연기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영화는 강조하고 있다. 가끔 사형제 폐지나 국가보안법 폐지같은 문제에 대해 그걸 폐지하는 게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국민하고는 별 관계 없는 문제인데, 왜 굳이 폐지하자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반대로 전체 국민과 별 관계 없는 일인데, 굳이 반대할 일은 아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제는? 행동과 주장이 필요한 시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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