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착한 남자보다 나쁜 남자에게 더 끌린다는 속설이 있다. 물론 착한 남자와 나쁜 남자의 구분법이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그 역시도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어쩄든 남자인 필자는 그말이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의 미묘함과는 별개로 그 취향의 속설은 비정의적 속성과는 무관하게 종종 구설수에 오르듯 이야기되는 것 같다.
사랑은 주는 자와 받는 자 사이의 의사소통 관계가 원활할때 개화하는 꽃이다. 그 주고받음의 과정이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한쪽이 거부하거나 거부당하면 시들어져야하는 운명과도 같다. 물론 그 끝에 미련을 쥐는 것은 본인의 선택이자 권리이다. 그리고 그 선택과 권리를 이행했을때 그로부터 얻어지는 비소통의 통증을 감수하는 것은 책임이 된다.
여름은 울창하다. 모든 생명들이 에너지를 넘실거리는 계절. 그것은 어쩌면 인간의 생에서 청춘과도 같다.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를 발산하고자 하는 계절. 20대는 청춘이라고 불려도 당당한 시기다. 그 시기의 사랑은 그만큼 충만된 에너지를 머금어 그것이 무모해도 상관없어 보이기도 한다.
29살의 여자 소연(김보경 역)은 재현(권민 역)과 함께 전시회를 보러가다 문득 어머니께 전화를 하러 가겠다며 자리를 뜬다. 그녀가 전화한 이는 어머니가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민환(이현우 역)이다. 부산으로 출장을 내려간 민환에게 가기위해 전시회도 취소하고 재현에게 거짓말을 하며 부산행을 나선다. 그녀는 그 들뜬 마음으로 민환에게 가지만 민환의 무심함에 실망하기도 하면서도 그를 보고싶어하는 자신을 원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를 미워하지도 않고 오히려 그의 말 한마디까지 갈구한다.
파리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유학생 소연은 잠시 한국에 머무르며 두 남자를 만났다. 한국에 잠시 들어와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재현은 그녀만을 바라보고 외교관인 이혼남 민환은 그녀에게 자상하면서도 무심하다. 그녀는 재현의 친절함에 고마워하기도 하지만 실은 그녀가 사랑하는 것은 민환이다. 그녀는 간혹 갈등을 느끼기도 하지만 항상 민환에게 향한 마음을 돌리려 하지 않는다. 실망하다가도 그리워하고 상처받으면서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 사이에서 재현은 소연에게 외면받고 거짓에 휘둘리면서도 그녀를 사랑한다. 민환은 그녀에게 자신의 이혼경력을 숨기지도 않고 그녀를 좋아한다고 말하면서도 그녀에게 무심할 정도로 배려하지 않는 듯 하다.
이 영화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사랑이라는 감정 그 자체에 대한 물음이다. 과연 사랑이라는 것이 소통과는 무관하게 감정 그 자체만으로 유지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 어쩌면 그것은 그 감정에 대한 가장 본질적인 접근이 될 수 있다. 사랑이 감정을 주고받는 상호간에 소통되느냐의 문제는 감정과는 별개로 결과적인 차원의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와 무관하게 그 감정 자체가 지속될 수 있는가는 그 근원의 존재 자체만으로 결과와는 무관하게 당사자가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가라는 고행에 대한 물음이 된다.
삼각관계와도 같아 보이는 영화속 세 인물의 관계도는 사실 하나의 수직선을 그린다. 재현은 언제나 소연을 향하고 소연은 언제나 민환을 향한다. 사실 그 관계의 중심에 놓인 것은 감정을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하는 소연이다. 결국 그 감정의 축을 잡고 있는 것은 소연이라는 셈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그 감정의 축에 서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축의 위치를 이행할 수 없다. 그것은 민환을 향한 애정이 그녀 자신도 놀랄 정도로 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구도와는 무관하게 민환은 그 감정의 관계도를 장악하는 지배자가 된다.
소연은 민환의 무심함에 때로 상처받으면서도 그의 모든 것을 그리워하고 갈구한다. 그가 전화 한 번만 하면 그에게로 달려가고 그가 원하는 것에 모든 것을 맞춘다. 극 중 표현에 따르자면 착한 여자가 되는셈이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재현에게는 갑작스럽게 약속을 취소하고 변덕을 부리며 거짓말을 하면서도 성질을 부리기도 한다. 결국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와 사랑하지 않는 상대앞에서 다른 모습을 보이는 소연을 통해 발견되는 것은 감정에 따라 외면의 형태가 좌우되는 모습이다.
물론 그녀가 파리로 떠나가면서 그 사랑은 정리되어지고 비지속적인 결과물이 된다. 하지만 그녀가 비행기에 탑승하러 떠나가는 이별의 순간 그 공항에 존재하는 세인물은 그 순간조차도 그 직선적인 관계도를 유지한다.
그 지극히 개인적인 사연담과 같은 영화속 이야기를 통해 발견되는 것은 그 연애가 지니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속성이다. 영화속의 사랑은 특별한 상황에 놓여진 것 같지만 사실 지극히 평범한 우리의 초상과도 같다. 누군가를 사랑해보거나 사랑을 받았다면 그 사랑이 항상 받아들여지거나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자신의 감정이 상대방에게 감흥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상대방에게 이끌리는 것은 사랑이 지니는 마력같은 모순이다. 극 속 재현의 말처럼 소연은 민환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을 스스로도 알 것이다. 하지만 재현 역시도 소연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을 알면서도 그녀를 찾는 것처럼 소연 역시 민환에게 기대려 한다. 결국 민환이라는 캐릭터는 감정에 포커 페이스를 씌운 결과적 악역처첨 비춰지기도 하는데 그것조차도 손가락질을 하기에는 가당찮은 상황이다. 그가 소연을 통해 자신의 허기진 마음을 달래려했음인지 그 의도는 분명치 않지만 그의 행동 역시 소연에 대한 일종의 방어본능이기 떄문이다. 결국 민환이라는 인물은 극적인 인물관계를 구성하는 키워드가 되고 소연은 그 키워드를 좇는 타자(打者)가 된다. 그 감정에 이끌릴 수 밖에 없는 사랑의 솔직함. 그것이 이 영화에서 드러나는 세 인물의 독특하면서도 평범한 사랑 방식이다.
사랑을 갈구하는 자와 사랑을 외면하는 자, 혹은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만 완전히 수용하지 않는 자. 그 불완전한 형태를 띠는 사랑은 그 결과와 무관하게 감정적으로는 형태가 뚜렷하다. 사랑이라는 것은 그런것이다. 받아들여짐의 문제가 아니라 그 감정이 피어나는 것 그 자체로써 이해되어야 하는 가치라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일지라도 그 감정의 속성안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파리로 돌아간 소연은 과연 서울에서의 사랑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커피 한잔을 머금고 응시하는 그녀의 눈은 민환을 그리고 있을까 혹은 재현을 그리고 있을까. 어쩄든 그 스물 아홉의 늦여름에 찾아온 불볕더위같은 사랑은 그렇게 끝났다. 어쩌면 그 사랑의 끝이 예정되 있음을 알면서도 미련을 버릴 수 없었던 것은 자신의 청춘의 끝자락에 찾아온 사랑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 얼마남지 않은 인생의 여름이 가기전에 자신에게 찾아온 사랑의 감정 그 자체에 솔직하고 싶었던 것 아니었을까. 청춘이 가기 전에 자신의 푸르른 시절에 솔직한 감정을 하나라도 더 지키고 싶었던 것 아닐까. 그 사랑이라는 감정에 솔직할 수 있는 청춘이 가기전에 말이다.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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