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그가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중에, 나아중에 알고 보니까 그는 사실 듣지도 못하는 사람이었다. 낙엽이 철 지난 물 위에 떠 다정하게 위로하고 있는 수영장에서 그는 아이에게 자신이 듣지 못한다는 비밀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는 오랫동안 귀가 들리지 않았던 관계로 남들에게는 유별나 보일 정도로 시각적으로 보이는 관찰능력이 뛰어났을 뿐이었다.
세상은 사실은 알고 보면 그런 건데, 나도 주위 사람들도, 영화의 등장인물들도 모두 그가 현실감각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었다.
그는......괴로웠겠지. 그리고 괴로운 만큼 외로워겠지. 친구들은 그를 ‘괴물’이라 부른다 했다. 그것은 별명이나 애칭이 될 수 없었다. 세상은 그의 고독을 이해하기 전에 흉측한 모습으로 한강다리 밑을 돌아다니며 사람을 습격하는 괴물로 만들어 버렸다.
영화의 막바지. 커다란 스크린 가득 엎드린 자세로 죽어 있던 그가 소방관에게 돌려지고 그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었을 때 나는 굉장한 충격으로 잠시 머릿속에 멍해졌다. 그는 손바닥으로 눈을 덮은 채 죽어 있었다. 물론 영화상에서 그런 모습의 죽음이 의미하는 것은 수연이에게 각막을 주기 위해 눈을 상하지 않기 위함이었지만 그 보다 더, 영화 내내 반복되었던 남들보다 더 많은 걸 알 수 있지만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기 자신에 대한 끝없는 절망, 유일하게 세상과 소통하는 도구였으나 내 안의 견고한 절망의 도구였던 그 눈을 두 손으로 꼭 가린 채 죽은 그의 모습은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머리와 몸과 마음이 나도 모르게 욱신거릴 정도로.
모든 배우들의 열연, 특히 두 주인공이었던 김상경과 박용우의 연기가 너무 좋았다. 그리고 이렇게나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영화라니 오랜만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매우 지루한 영화로 기억될지도 모르지만(느리고, 마치 내셔널 지오그라피의 사진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나에게만은 어쨌거나 특별한 영화로 간직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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