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경과 박용우가 호흡을 맞추고 있는 영화 <조용한 세상>은 표면적으로는 연쇄사건을 전면에 내세운 스릴러처럼 보이지만 영화의 주인공 격인 신비스러운 느낌의 사진작가 정호와 거친 느낌의 김형사 그리고 이 영화의 또 하나의 주연 보배로 구성된 인물들의 조합과 역할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쩐지 스릴러의 분위기 보다는 우울한 세상으로부터의 도약을 꿈꾸는 인물들의 일종의 환타지적인 이야기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린 시절의 어두운 기억으로 세상과의 단절을 원하며 오직 사진으로만 이야기하는 정호라는 인물, 사람이 죽어도 그것으로 인한 산 사람들의 불편함을 이야기하는 뉴스내용을 오히려 안타까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세상을 관조하는 김 형사, 그들과는 정 반대로 아직은 희망을 간직한, 불우함 속에서도 미소를 잊지 않고 꿋꿋한 모습을 보이며 때묻은 어른들에게 보배의 모습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어린이 살인사건 보다 더 인상적으로 느껴지는 건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감독의 시각이 사건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다기 보다는 인물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다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이 영화는 좋으면서도 한편 아쉽다.
그러니까 줄거리를 이끌어 나가는 인물들 즉, 정호를 비롯하여 김형사, 보배 그리고 김형사 주변의 형사들에 이르기까지 이 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캐릭터의 성격이나 연기가 꽤 인상적이고 안정감 넘치는 인상으로
<조용한 세상>이라는 제목하에 그것에 제대로 맞아떨어지는 정호라는 캐릭터와 그런 정호를 세상과 소통하게 하는 보배의 존재, 사건이 팽배하는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도 한 가닥 정의를 지키고자 정열을 불태우는 김형사의 이미지는 이 영화를 강렬하고 멋진 영화로 기억하게 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연쇄살인을 토대로 한, 형사가 사건을 풀어가는 스릴러로서의
줄거리를 놓고 보자면 다소 허술하고 안타까운 점이 군데군데 눈에 뜨인다.
살인자의 윤곽이 너무 쉽게, 지나치게 우연하게 드러나는 것도 그렇거니와 살인자를 쉽게 짐작하게 되
는 줄거리의 허술함, 조금은 뜬굼없어보이는 주인공들의 만남 그리고 허무하고 작위적인 느낌을 주는
엔딩에 이르기까지 이 영화가 스릴러로서 가지고 있는 덕목은 허술하기 그지 없다.
하지만 등장인물이 주는 분위기의 그럴 듯함, 인물로 이야기하는 영화의 소통에 대한 메시지, 감독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등 영화가 주는 분위기는 그다지 나쁘지 않은 뒷맛을 준다.
또한 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드러나는 비밀은 이 영화가 주는 일종의 선물같은 신선함을 준다.
마치 영화 식스센스의 반전이후 영화 전체를 통째로 돌아보는 기막힘을 느꼈달까...
스릴러로서의 흥미보다는 이 영화의 마지막이 주는 반전의 묘미가 꽤 인상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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