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세대인 저로써는 그다지 썩 와닿지 않지만, 전쟁이란 사람을 미치게 하는 바이러스를 품고 있나 봅니다. 기껏해야 제가 경험할 수 있는 전쟁이란 영화나 다큐멘터리 뉴스 필름 속의 것이기 때문 인지 모르지만, 전쟁 속에서 벌어지는 극악스러운 모습은 과연 인 간이 저정도 나락까지 떨어질 수 있는 것인가 싶습니다. 누군가를 죽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전쟁에서 자비란 사치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닥친다면 전 얼마나 인간적일 수 있을까요?
마다산도 아마 이런 상황은 생각도 않았을 겁니다. 그의 조국인 중 국이 일본과 싸우는 중이고 자신의 마을에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지 만.... 단지 그것뿐입니다. 그는 단지 시골 촌부일 뿐이니까요. 조 용한 이 작은 시골마을에서 전쟁이란 너무나 먼 단어입니다. 적어 도 그날 밤 〈나〉라는 사람이 잡아온 일본군 포로 두 명을 던져주 기 전까지는요.... 그가 돌아올 때까지 이 둘을 잘 잡고 있다가 줘 야 하는데 이거 참 큰일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참 답답 한 일이죠. 아무리 등장 밑이 어두워도 명색이 일본군 주둔지니까 요. 마다산과 마을 사람들은 회의까지 해보지만 별 다른 뾰족한 수 가 나올리 만무합니다. 뭐 이제 방법은 하나뿐이죠. 잘 데리고 있 는 수밖에요.
아마도 마다산은 그날 저녁 그냥 조용히 잠자느라 문을 안 열어주 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을 수십번... 아니 수백.. 수천번 은 했을 겁니다. 그랬다면 폐허가 된 자신의 마을을 만나진 않았을 테니까요. 자기가 나고 자랐던... 몇 시간 전만해도 자신과 웃고 이 야기했던 마을 사람들의 싸늘한 주검 앞에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 을까요. 결국 이 모든 사건의 시작도 자신이고, 포로를 풀어주자고 주장한 사람도 자신이며, 일본군을 마을로 인도한 사람도 자신입니 다. 모든 사건이 자신 때문인지 어찌하여 자신은 이렇듯 멀쩡하게 살아있고 엉뚱한 사람들이 죽어야 하는 건가요. 자신의 소중한 그 모든 것이 그들에게는 마치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처럼 폐기 되어 불태워져 버린 걸 본다는 건 절망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흑백영화.... 게다가 아는 얼굴이라곤 강문 딱 한명. 그러나 저에게 이 영화를 볼 목적이 되어준 사람이죠. 이 배우에 대한 신뢰감이 든 것은 그가 감독한 [햇빛 쏟아지던 날들]이라는 영화 때문이었습 니다. 처음엔 그저 그런 영화 같았던 이 영화는 보고난 뒤에 잔상 이 오래 남던 영화였거든요. [귀신이 온다]는 제가 받았던 그런 느 낌의 연장선상에 있었습니다. 강문이 감독과 주연을 함께 한 이 영 화는 처음 코미디 영화처럼 시작합니다. 모든 배역이 연기가 아니 라 실제같이 보일정도로 자연스럽거든요. 그러나 저의 별 생각없던 웃음이 부끄러워질만큼 후반에 벌어지는 끔찍한 학살극 그리고 그 런 음울함을 정리하는 듯한 마다산의 마지막 미소는 보고난 이후에 도 그 강렬한 느낌 때문에 가슴 깊이 스산해지던 영화였습니다.
마다산이 마지막 미소가 무슨 의미였을지 한참 생각했습니다. 그러 다 문득 생각이 난 게 김진의 『푸른 포에닉스』에 나온 대사였습 니다. ‘사람을 죽이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지. 하나는 진짜로 상대를 죽이는 거고. 또 하나는 숫자를 폐기하는 거야. ..... 그래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라면, 폐기되는 것보다는 살해되는 쪽을 선택하고 싶은 거지.’ 마다산은 적어도 폐기되기보다 살해되 는 쪽을 택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인간이었으니까요. 선 함이 오히려 더 큰 악을 부른다니... 정녕 전쟁에서 인간애란 사치 일 뿐인가요..... 전...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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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 온다(2000, Devils on the Doorstep)
배급사 : 튜브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