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세상이 적막하게 느껴질 떄가 있다. 거리에 사람이 가득하고 세상은 온갖 잡음으로 가득한데 세상은 곧잘 적막하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내사람이 없고 내소리가 없기 떄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삭막한 거리에서 감정의 적막함을 한움큼 쥔채 군중속의 소외감을 끔찍하게 느껴야만 한다.
극중 정호(김상경 역)의 말처럼 "우리는 가끔 보이는 것들을 놓치곤 한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보이는 것들 외에 들리는 것과 만지는 것 등의 다른 감각들이 살아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가 보는 것들은 우리가 감지하고 있는 것의 일부라는 것이다. 동시에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혜택을 하나를 세밀히 볼 수 있는 능력을 감퇴시킨다. 이 영화의 조용한 세상은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그 고요한 순간을 되새기게 한다. 우리가 전체라는 핑계로 간과하는 일부에 대한 관심을 말이다.
일단 이 영화는 스릴러의 장르적 제스쳐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골격이 엄연히 그 장르에 기대고 있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서스펜스는 맥거핀과 같다. 서스펜스의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짙은 페이소스. 그 페이소스가 이 영화의 구도를 예상하지 못한 차원으로 이끌어나간다.
강력계에 몸담고 있는 김형사(박용우 역)는 자신이 좇던 수배자를 맞닥뜨린 상황에서 기묘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이후로 그 사람과 또 한번 대면하게 된다. 결국 그 묘한 인연은 훗날 다가올 큰 사건과도 연결된다. 김형사와 정호는 우연적인 만남에서 필연적인 맞물림을 경험하게 된다. 물론 두 인물의 사이가 그리 각별한 것은 아니다. 김형사로부터 정호가 용의자로 의심을 받았던 적도 있고 말이 없는 정호와 김형사가 교감을 나눌만한 시간적 여유도 제공된 적은 없다. 하지만 둘의 사이가 시간적인 각별함보다도 일촉즉발의 결탁을 형성하는 것은 김형사가 지닌 직업적 열정보다도 깊은 강직한 성품과 정호가 지닌 과거의 상처로 인한 치유적 갈망의 모색점에 있다.
이 영화의 제목인 조용한 세상은 이 영화속에서 중의적인 의미로 변용되어 사용된다. 결말을 본다면 알게되겠지만 이 영화의 제목은 이 영화가 관객을 흔드는 결정적인 그것이다. 하지만 그외에도 영화속의 상황들로부터 도출되는 이미지, 즉 소녀가 사라져도 조용하기만 한 그들의 가족들이 그렇다. 세상은 적막하다. 김형사의 대사처럼 세상이 졸라 삭막해지고 있지만 삭막해지는 세상을 전달하는 뉴스의 아나운서는 그저 무심하게 사건을 보도한다. 삭막해지는 세상을 전달하는 목소리마저 무심한 세상이다.
영화는 노골적으로 그 세상의 폐부를 파고든다. 물론 소녀들의 납치는 보편적인 사건이 아니다. 하지만 그 보편적이지 않은 사실 너머에 자리하는 것은 너무나도 삭막한 우리의 진실이다. 무심코 골목을 지나다 계단에 쭈그려 앉아있는 아이의 사진을 찍다가 아이가 먹다버린 음식을 주워먹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 상호의 시선은 누구나 접할법한 놀라움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런 진실과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아이의 집을 찾아가 마주하는 것이 그 아이의 어머니 주검임에 놀라는 것도 당연하다. 그 역시 우리의 삶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변을 둘러보는 것에 인색하다. 이웃이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사는지 따위는 알 수도 없고 알 바도 아니다. 대문을 걸어잠그는 것이 중요한 시대다. 타인과의 불필요한 대화는 자제하는 것이 믿을만한 삶을 보장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불신이 추앙받는 시대. 소통이 거부당하는 시대. 이 영화는 그 소통의 부재를 형성하는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소녀들이 사라져가는 것 역시 그것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소녀들이 애초에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것. 위탁된 집안에서 자라나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았다는 것. 이는 단지 영화의 긴장감에 대한 근거로 작용하는 것이 아닌 교감적 통증의 실마리가 된다. 관객이 짊어져야 하는 아픔은 그지점에서 우러나온다. 영화속에서 한정된 슬픔이 아닌 스크린너머로 튕겨져나가는 슬픔의 교감.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모두 공감하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스릴러의 정공적 구조물을 착실히 세우면서 동시에 세태적인 묘사를 통해 감정의 이입을 들어맞게 구축했다. 사실 이 영화에서 느껴지는 스릴러적 긴장감의 강도는 거세지 않다. 다만 적당히 장르적인 모양새안에서 뒤쳐지지 않을 정도로 이야기의 틀을 유지한다. 극속의 범인이 누구인지 정도를 파악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그 긴장감의 밀도가 떨어지는 이유가 영화의 엉성함떄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그것보다도 중요한 사실, 조용한 세상에 대한 처연한 목격. 장르적 쾌감이 아닌 이야기적 감성이 두드러지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말미에 주어지는 충격의 요소는 뒤집기가 아닌 되돌리기에 있다. 모든 상황을 순식간에 불식시켜버리는 장난같은 반전이 아닌 지난 상황들을 되돌아보고 다시 느끼게 하는 자성같은 반전이다. 느낌은 다르지만 식스센스류의 영화를 통해 느꼈던 묘한 울림이 동반되는 충격이 인상적이다.
최근 소탈하고 어눌한 옆집총각같은 연기로 편안한 이미지를 닦아오던 박용우는 헐거워보이지만 날카로운 형사이미지를 잘 살린다. 또한 신비하면서도 내면적인 상처를 지닌 인물을 연기하는 김상경 역시 그에 못지 않다. 연기 잘 하는 두 남자배우의 궁합은 검증된 보증수표에 확인도장을 찍는 것만 같이 들어맞는다. 또한 남성적 이야기에 홍일점을 찍는 한보배 역의 박수연 역시 나이에 비해 성숙한 연기를 보여준다.
두눈을 가린 정호의 모습은 슬프지만 감동적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보고 싶어하는 모습이자 우리가 보아야 할 모습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하철에서 자살한 여자때문에 출근시간이 지연되었다는 x같은 뉴스보다는 말이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외면과 무관심으로 조용해지는 것이 아니라 대화와 나눔으로 시끄러워져야 하는 이유이자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소망이 아닐까. 물론 정호에게 세상이 조용했던 이유는 별개의 문제겠지만 말이다. 정호가 사진을 찍었던 것도 어쩌면 그 조용한 세상에 있었기 때문에 별 수 없었던 것 아닐까.
-written by kharismani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