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의 최대 단점은 영화 홍보의 컨셉을 '매트릭스 형제의 위쇼스키 형제가 만들어 낸 또다른 가상현실', '3차세계대전 후 완벽하게 통제된 미래에서 세계를 구할 슈퍼히어로' 따위로 잡은 데 있다고 생각됩니다. 당연히 위쇼스키 형제와 미래, 3차세계대전과 매트릭스를 떠올리면서 영화를 보게 되고, 영화를 보게 되는 내내 실망감에 엉덩이를 들썩거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절대 슈퍼액션히어로 영화가 아닙니다. SF 영화도 아닙니다. 이 영화는 혁명영화입니다. 억압하고 짓밟고 감추려는 정부,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무차별적인 차별과 테러를 일삼으며 국민들을 폭력과 공포로 다스리는 절대권력에 대항한 민중의 항쟁과 투쟁을 다룬 영화입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유신이나 5공때 상영했으면 딱 잡혀가기 쉬운 영화였군요)
영화를 보는 관점 역시 브이의 액션을 보는 것이 아니라 에비와 국민들이 브이와 그의 가면을 통해 공포정치를 일삼는 정부의 압제에서 일어나 투쟁의 면모를 찾게 되는 과정을 위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영화는 위쇼스키 형제가 만들었다지만 디지털 세상에서의 개인적 성찰을 다룬 매트릭스보다는 통제사회에서의 인간의 자유와 존엄의 중요성을 역설한다는 점에서 이퀄리브리엄과, 또 멀~리까지 가지를 뻗는다면 데몰리션 맨 (실버스타 스텔론과 웨슬리 스나입스의) 과도 비슷하다 할 수 있습니다.
즉, 이 영화는 심각한 관점에서 머리를 싸매고 봐야 할 영화이지, "아자뵤~" 하면서 액션을 즐기면서 볼 영화는 아니라는 얘기죠. 하지만 국내외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적 실망감이 더 컸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ps) 그리고 영화의 초입에 나왔던 교수형 장면과 브이가 내내 쓰고 다녔던 가면, 그리고 왜 11월 5일인지에 대한 기본 설명이 없기 때문에 국내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는데 더 혼란스러웠을 것같습니다. 다들 영화와 커다란 관련이 있기 때문이죠. 영화 맨 처음에 지하토굴에서 싸움 끝에 잡혀서 교수당한 인물은 가이 포크스라는 인물입니다. 1605년 11월 5일, 영국의 제임스 1세 정부의 독재에 항거하기 위해 장작더미 아래 36배럴의 화약을 숨겨서 의회 지하터널로 잠입하다 체포되어 사형당한 사람입니다. 브이의 가면이 바로 이 가이 포크스의 가면이고, 영국에서 11월 5일은 억압과 박해에 항쟁하려던 가이 포크스를 기리기 위해 성대한 불꽃놀이를 열고 그의 인형과 가면을 판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