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어렵다.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달한다는 것만큼 힘겨운 일도 없다. 물론 요즘은 쿨하게 한마디로 던져내고는 아니면 만다지만 그건 애틋한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이 아니기에 그럴지도 모른다. 단순히 호감일 때 고백은 오히려 쉽다. 그만큼 충격도 덜 할테니까 행동의 제약이 작다. 하지만 그것이 절실하다면 양상은 달라진다. 거절당했을때의 통증이 작지 않으리라는 것쯤은 알 수 있다. 그래서 어렵다. 그네들은 그렇게 머뭇거린다.
하늘이 보인다. 이상하게도 하늘이 끼어든다. 하늘이 굳이 끼어들지 않아도 될 씬에 하늘이 보인다. 소녀와 소년은 지루하고 묵묵할 정도로 속내를 꺼내보이지 않는다. 서로 은연중의 낌새를 교감하면서도 그 불확실한 기류안에 불을 지르지 않는다. 마치 발화점만 맞춰주면 확 타오를 것 같은데 둘 중 어느 하나도 감정의 성냥개비를 들고 머뭇거린다. 그래서 하늘이 보인다. 답답할만큼 우둔한 감정의 제자리걸음처럼 썡뚱맞게 끼어드는 하늘풍경의 모습은 영화속에 겉도는 감정처럼 장면장면을 겉돈다. 새파란 설레임이다가도 나락같은 빗방울로 돌변하기도 한다. 그렇게 사랑이라는 감정이 각자의 마음에서 농익어 가는동안 감정의 기복은 알 수 없게 마음을 할퀴고 띄운다.
사실 그렇다. 그시절의 사랑이야 그 시절안에 남겨지는 추억이거나 오랫동안 기억을 타고 전승되는 전설로 남겨질 법한 일 아닌가. 그래서인지 몰라도 17살의 유(미야자키 아오이 역)와 요스케(에이타 역)는 그 순간의 사랑에 머뭇거린다. 물론 그런 속내를 표하거나 어떤 이유를 항변하지도 않는다. 그건 당사자들만이 알 수 있는 제스쳐이고 그들만이 풀어낼 수 있는 미스테리니까. 물론 타인의 중매가 촉매작용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당사자들의 몫이다.
지체되는 감정은 때론 엇나간 결론으로 빚어지기도 한다. 요스케가 항상 연주하는 기타 멜로디는 유의 콧노래로 전염되고 이는 유의 언니(오야마다 사유리 역)의 귓가를 맴돈다. 그 멜로디에 관심을 보이는 언니에게 유는 자신의 마음을 양보한다. 기타멜로디는 일종의 마음과도 같다. 단지 그곳에서 기타를 연주하기 때문에 유는 항상 그곳에 머물렀을 수도 있고 유가 항상 찾아오기 때문에 요스케는 항상 그곳에서 연주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감을 확인하는 작업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쉽지가 않다. 더군다나 갈피를 잃은 예감은 오해로 진화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긋난 오해는 운명의 굴레처럼 오해의 수단을 삭제시킨다. 유스케를 만나러 가는 유의 언니의 사고는 요스케의 말처럼 마치 일부로 깨어나지 않는 사람처럼 자생적인 사건처럼 여겨진다. 그만큼 상황이 둘의 사이를 연결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17년이 흐르고 유스케(니시지마 히데토시 역)는 음악을 통해 먹고 살고 싶다고 했던 어린 시절의 꿈이 희미하게나마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음악이라는 넓은 세계의 한구석에서나마 살아가고 있다며 스스로를 위안한다. 17년전 자신이 품었던 애틋한 감정은 이제 예감조차 떠오르지 않는 듯 하면서도 희미한 각인을 남긴다. 하지만 17년전의 교감이 둘의 운명의 고리에 작은 실타래를 엮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떄론 우연과 필연의 구분이 어떤 경계선으로 나뉘는지 모호하게 여겨질 때가 있다. 유(나가사쿠 히로미 역)와 요스케는 우연과 필연의 경계에 선 만남앞에 미소를 띄운다.
여전히 둘은 말을 아낀다. 마치 17년전 자신들의 마음속에 강하게 운을 띄운 기타멜로디 처럼 반복되는 감정의 외침쯤이야 과거의 기억 어느 구석에 쳐박아 둔 먼지쌓인 흔적인 것양 웃지만 그 애틋했던 기억이 저도 모르게 불쑥 머리를 들이미는 순간은 당황스러울 따름이다. 말대신 전한 유의 입맞춤에 달아나버리던 유스케의 17년전 기억은 자신의 감정앞에 어리숙했다는 사실을 17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영화는 지금까지 우연을 빙자한 필연으로 둘의 상황을 엮어내지만 결과적으로 마지막 순간에 둘의 사이에 짖궂은 훼방을 놓는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이 영화가 듣고 싶었던 그 한마디를 끌어내는 가장 큰 역할을 한다. 그리도 힘들었던 한마디는 17년의 유예기간을 두고서야 토해내듯 흘러나온다.
사랑이 어렵다면 그것은 그 사랑이 지독하게 절실하고 진실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쉽고 가볍게 관계를 맺고 끊는 이들에게 이 영화는 그만큼 낯설고 이해할 수 없는 정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관객의 마음을 졸이듯 감정앞에서 맴도는 남녀의 모습은 그만큼 절실하고 애틋해보인다. 지루할정도로 정적이고 소음을 배제하는 영화는 두 남녀의 감정이 속내를 숨기고 진행해나가지 못하는 용기없음을 질책하지 않고 묵묵히 응시한다.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상황을 몰아가지도 않고 그저 시간을 기다린다. 그네들의 설익은 사랑이 농익는 시간까지. 다소 지루하고 힘겨운 시간일지라도 그 한마디를 얻기 위해 영화는 17년의 시간을 견뎌낸다. 그건 그 하기 힘든 그 한마디가 그만큼의 값어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완성만큼 아름다운 것이 세상에 얼마나 있겠는가. 사랑이 움트는 설레임만큼이나 열매가 맺히는 순간의 벅차오름도 아름답다. 좋아해(好きだ). 그한마디에 맺힌 은은하고 섬세한 우주같은 사랑을 이 영화는 붉힌 낯만큼이나 순수하게 나직히 고백하는 것이다. 그 한마디가 나오기까지 그 힘들었던 순간에 대한 위로처럼 그리고 그에 대한 보상처럼.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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