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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풀 마인드(beautiful mind) 박사가 사랑한 수식
kharismania 2006-11-13 오후 6:24:12 999   [1]
누구나 학창시절 수학에 대한 지긋지긋함을 토로한 경험이 있을테다. 수학이라는 과목은 그 난해도만큼이나 모호한 필요성에 불만의 대상이 되곤한다. 도대체 이렇게 끔찍할정도로 힘겹게 정답을 알아내고 나서 남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당장 그 결과물을 눈앞에 떡하니 드러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 그렇게 고심하고 끙끙대며 정답을 발견했을때의 쾌감은 이루말할 수 없고 수학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이들은 대부분 이런 근거를 바탕으로 자신의 호감도를 표하기도 한다. 길이 없을 것만 같던 난해함을 무릎꿇게 했을 때의 쾌감. 마치 수라는 수수께기의 한 고지를 점령한 것만 같은 정복자로써의 쾌감.

 

 수학이라는 학문은 가장 명료한 학문일지도 모르겠다. 알아내기는 쉽지 않지만 정답은 확실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 존재하는 것에 대한 탐구가 바로 수학의 본질이자 의미가 된다. 이미 존재하는 것에 대한 발견. 마치 진리와도 같은 하나의 고결한 가치에 대한 접근. 그것이 바로 수학의 진정한 본질일지도 모른다.

 

 사고로 80분동안만 기억의 유지가 허락된 채 살아가는 박사(테라오 아키라 역)의 새로운 가정부로 출근하는 쿄코(후카츠 에리 역)는 첫만남부터 박사의 기묘한 수의 물음으로 인연을 맺는다. 항상 첫 대면에서 그녀에게 신발사이즈를 묻는 박사는 24라고 대답하는 그녀에게 고결한 수라는 대답을 들려준다. -24는 4의 계승이다는 이유에서 박사는 24를 고결한 수라고 표현한다.(1×2×3×4=24)-

 

 그의 사고는 엉뚱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의 순수한 애정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호감을 부른다. 그는 생각을 할 때도 수와 사랑을 나눈다고 말하고 수에 의미를 부여하며 마치 연인처럼 사랑스럽게 공식을 속삭인다. 그리고 그 공식들은 우리가 달달외우며 지겹게 문제에 대입하던 암호해독의 열쇠가 아니라 마치 순수하고 고고한 진리의 발견과도 같은 청명함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말 그대로 순수에 가까운 박사의 수학에 대한 애정에서 기인한다.

 

 교코의 생일인 2월 20일과 박사가 훈장으로 받은 시게에 새겨진 284번째 수상순번과의 연관성. 220과 284의 연관성은 우애수(友愛數)의 관계라는 것을 증명하는 박사의 모습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벅차오른다. -우애수란 두수가 각자 자신의 약수의 합이 상대되는 수와 동일한 값을 갖게되는 관계의 수를 의미한다. 220의 약수의 합은 284가 되고 284의 약수의 합은 220이 된다는 것- 두 수의 관계를 단순한 수학적 우연으로 치부하면 단지 활자적인 발견에 지나지 않지만 박사의 말처럼 신의 손길로 연을 맺은 숫자라는 의미를 둔다면 광활한 우주로 확장된다. 그는 모든 시작을 수로 출발한다. 숫자를 통해 세상의 의미를 파악하고 의미를 생성한다. 왜냐면 그에게는 수라는 것은 인간이 존재하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진리였기 때문이다. 수는 인간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닌 상징화된 산물이다. 그러므로 수는 애초에 이미 세상이라는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는 하나의 구성원과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마치 진정한 직선은 눈에 보일 수 없고 마음속에서만 내달리듯 말이다. 그가 교코의 어린 아들(사이토 류세 역)에게 루트(√)라는 애칭을 붙여주는 것도 모두가 그런 진리로부터 세상을 이해하는 박사의 철학안에서 성립되는 애정의 발현이다. 모든 수를 받아들이는 관용의 넓은 마음을 가진 루트라는 애칭은 그 어린 아이의 삶을 이끌어주는 지표가 된다.

 

 80분밖에 허용되지 않는 박사의 기억은 이 영화의 희소한 페이소스다. 그가 매일 교코를 처음 대면하며 그녀의 신발 사이즈를 묻는 것도 그녀의 아들이야기에 놀라는 것도 모두 다 웃음을 유발하는 흥미로움으로 받아들여지지만 그 이면에는 지속되지 못하는 그의 기억이 상실하는 추억에 대한 애잔함으로도 작용되며 종종 드러나는 박사의 괴로움으로 모양새를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페이소스의 불을 끄는 것은 교코의 역할이다. 그의 10번째 가정부가 되는 그녀는 박사의 마음을 진심으로 헤아려준 첫번째 가정부이자 그의 유일한 친구가 된다. 80여분이라는 기억동안에 그에게 허락되었던 것은 아무래도 수와의 사랑 -박사 스스로의 말에 따르면- 뿐이었을 것이고 그를 이해해주는 이는 전무후무했을 것이다. 물론 관계가 모호한 미망인- 후에는 밝혀지지만- 만이 그를 이해하고 자신만이 그의 옆에 설 권리가 있다고 말하지만 진실로 박사의 밀폐된 현실을 열어주는 것은 교코다.

 

 수학에 대한 순수한 애정만이 매일의 박사를 지탱한다. 박사는 아침마다 눈을 떴을 때 양복에 매달린 메모쪽지들 -박사는 자신이 기억해야 할 것들을 쪽지에 메모해서 자신의 양복에 매달아놓는다.- 을 보며 한숨을 쉬거나 애상함에 눈물을 흘릴 것이다. 하지만 교코와 루트는 그의 삶에 위안이 된다. 그가 좋아하는 야구는 루트와 그를 연결하는 하나의 교집합이다. 그리고 그 교집합은 두 사람을 엮고 그 영역을 확장한다. 루트는 박사가 지닌 수의 애정을 자신도 이어받는다. 그것은 그의 능력에 대한 경외심이라기 보다는 박사라는 인물에 대한 감흥에서 비롯된 하나의 공통 관심사로의 확대에 가깝다. 자신에게 명명된 루트라는 이름을 아이는 사랑한다. 이는 박사를 진실로 좋아하는 아이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며 두 사람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박사는 마치 수라는 하나의 진리를 통해 인생을 통달한 성인과도 같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세상이라는 거점안에서 그는 미숙아에 가깝다. 누군가가 돌봐줘야 되고 다른 이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스스로 무언가를 해나갈 수 없다. 상실되어 가는 기억속에서 지탱할 수 있는건 멈춰버린 과거에 대한 끊임없는 반복적 회상뿐이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처지는 누군가의 각별한 배려와 진심어린 이해만이 도울 수 있는 길이다. 박사와 교코의 만남은 마치 우애수처럼 각별하다. 마치 신의 손길로 연을 맺은 220과 284의 관계는 두사람의 관계만큼 각별하다. 그것은 단순히 남과 여라는 이성적인 호감을 떠나 인간과 인간이 진심으로 소통했을 떄 발생하는 감동의 싸이클과도 같다. 마치 영원히 내달리는 직선처럼 혹은 tan의 곡선처럼 두 사람의 관계는 현실의 잣대로 측정할 수 없는 고결한 가치와 같다.

 

 선생이 된 루트(요시오카 히데타카 역)의 회상담으로 풀어지는 그의 흐믓한 수업을 방청하는 관객은 모두 다 지긋지긋한 수학 시간의 추억을 그립게 떠올리게 될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우리는 수학에 대한 애정을 지녀본 기억이 없을 것이다. 단지 한점이라도 더 얻기 위해 울며겨자먹기로 수학을 강요당하거나 짊어졌을 뿐이다. 완전수(完全數)로써의 28이라는 숫자의 의미를 생각해보기보다는 그 개념만을 받아들였을 뿐이다. -완전수는 자신을 제외한 스스로의 약수의 합이 자신이 되는 수다. 28의 약수는 1, 2, 4, 7, 14, 28 여기서 28을 제외하고 나머지 수를 더하면 다시 28이 나온다. 그리고 재미있는 건 완전수는 1부터 차례대로 수를 더하면 완전수에 다다르는 지점을 만나게 된다. 1+2+3+4+5+6+7=28- 그 현묘한 이치가 단순히 책장에 적혀진 문제를 떠나 이 세상에 어떻게 자리잡고 있는가에 대해서 음미하면 수학은 하나의 아름다운 리듬이 되고 아름다운 싯구가 되기도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눈에 보이는 세계를 지탱하고 있기에 우리는 마음으로 세상을 보아야 한다는 박사의 말처럼 우리는 눈이 아닌 마음으로 세상을 받치고 있는 것들의 수고를 인정해줘야 한다. 적어도 우리는 이 세상에 가득찬 대기를 마시고 뱉으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박사가 사랑했던 수식은 아무런 관련성이 없는, 어떠한 규칙도 없고 끝도 없는 초월수 e와 π, 거기에 실체가 없는 가상의 수인 허수 i 로 이루어진 수에 인간이 1을 더하면 0, 즉 아무 것도 없는 상태 무(無)가 된다는 오일러의 공식이다. 박사는 자신의 기억에 봉인해두었던 e^πi=-1의 기억을 버리고 e^πi+1=0이라는 새로운 공식을 그 여백에 채운다. 매일매일 주어지는 80여분의 시간을 소멸이 아닌 생성으로 살아가겠다 다짐한다. 현실에서 끊기지 않을 수 없는 직선을 마음속에 간직하듯 그는 매일매일을 새롭게 살아가겠다면 다짐한다.
 
 진실에 먼저 다가가기 보다도 아름다운 증명이 앞서야 된다고 말하는 박사의 모습은 속물과도 같은 현실 문명의 이기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학문이라는 하나의 목적이 효용성의 가치로만 여겨지는 오늘날의 각박한 현실에서 박사의 말은 현실을 간과하는 어리석음으로 치부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의 근원이 수라고 여겼던 피타고라스처럼 과거의 철학자들은 동시에 수학자이기도 했다. 학문은 결국 진리이기 때문에 모든 학문은 철학과 연을 맺는다. 단순히 수학의 발견이 현실의 응용의 목적이 아닌 진실에 다가서는 탐구의 목적이 되어야 함이 어쩌면 인간의 현명함이 발생시키는 올바른 방식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소수(素數)와도 같이 꺠끗한 이 영화의 아름다운 가르침이자 관객이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박사의 아름다운 마음(beautiful mind)이다. 공업수학(Calculus)의 매클로닌 급수로 증명할 수 있다는 오일러의 공식이 현세적 가치이상의 아름다운 감동적 기호로 대입되는 체험이야말로 값을 매길 수 없는 이 영화의 아름다운 가치이기도 하다.
                              -written by kharismania-

(총 1명 참여)
karamajov
이번 님의 리뷰는 완전히 흡수는 안되네요. 소화되다가 뭔가 앙금같은게 걸렸어요. 그래도 여전히 통찰력있는글임은 부인할 수 없군요. 추천   
2007-01-14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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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사랑한 수식(2005, The Professor and His Beloved Equation / 博士の愛した數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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