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 사람들을 위한 영화가 있다. 특히나 공포물에 신경이 곤두서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인 이들에게 슬래셔무비나 고어물을 추천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될테다. 끔찍할 정도로 잔인한 장면을 통해 시각적으로 투입되는 공포스러움을 극대화시키는 이부류의 영화는 아무래도 즐길 수 있는 자격을 지닌 이들을 위한 배려만 같다.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같이 이유도 없고 영문도 없는 일방적인 학살의 장을 늘어놓는 영화들은 단지 갑작스럽게 출몰해버린 끔찍한 상황이 몰아가는 긴장감과 잔인무도한 칼부림의 향연을 목격할 뿐이다. 소위 말하는 B급정서의 공포물에서 발견되곤 하는 노골적인 잔인함은 수위의 기준을 두지 않는다. 재미있는 건 이런 류의 영화들이 실화로부터 착안된다는 점이다.
이 영화 역시 시작부터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되었다는 전제로 관객에게 으름장을 놓는다. 어느 작가의 미친 발상으로 착각하지 말라는 것. 실제 인간이 행한 사실의 재현담이라는 것(This story is based on true event)을 관객에게 주의깊게 어필하며 매년 호주안에서만 3만명의 실종자중 90%만이 한달만에 발견되고 나머지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추가로 곁들인다.
영국 출신의 리즈(카산드라 매그내스 역)와 크리스티(케스티 모라시 역)는 시드니 출신의 벤(나단 필립스 역)과 함께 호주의 서부로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울프 크릭에 도착해 만끽하는 여행지에서의 즐거움은 끔찍한 지옥으로 돌변한다. 낯선 곳에서 만난 낯선 사람의 호의가 끔찍한 의도를 품은 거짓임을 깨닫게 되었을때 그들은 자신들의 비극이 이미 시작된 후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일단 이런 류의 영화는 시작부터 불길한 조짐에 대한 대비를 하게 만든다. -솔직히 이런 영화를 분위기 파악도 하지 않은채 볼 관객은 없다는 전제하에- 언젠가 벌어질 끔찍한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객석에 흐른다. 이 영화는 생각보다 텀이 길다. 금방이라도 누군가 불쑥 튀어나와 칼부림을 할 것만 같지만 실상 영화의 런닝타임이 40분가량 소모되도록 경계심만을 지속시키게 한다. 오히려 긴장감이 무색하게 호주의 자연풍광이 스크린을 통해 서정적으로 연출된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는 젊은이들의 유쾌하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무렵 예정된 비극은 고개를 들이민다.
사실 이 영화는 자신의 형제뻘 영화에 비해 수위가 높은 편이 아니다. 치가 떨릴 정도로 잔인한 수위의 영화들에 비해 이 영화는 꽤나 점잖다고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눈으로 각인되는 외관적 잔인함보다도 불안감을 확장시키는 긴장감의 술래잡기가 묘미로 다가온다. 무엇보다도 영화속의 살인마 믹 테일러(존 자럿 역)의 캐릭터가 만들어내는 섬뜩함은 가히 일품이다. 천연덕스럽게 혹은 즐기듯이 인질들을 사냥하듯 몰아가는 그의 모습은 영화의 긴장감을 극대화시킨다. 무엇보다도 영화가 몰아가는 불쾌함이 엔딩 크레딧 너머로도 지연되는 효과는 장르자체가 지닐 수 있는 최상의 유효함이다.
낯선 곳에서 만난 낯선 사람. 그 낯설음이라는 정서 자체로부터 느껴지는 불쾌한 고립감을 공포로 연결시키는 정서는 낯선 곳으로 여행하고자 했던 관객을 돌아서게 만들 것만 같다. 물론 영화속 인물들의 가공된 이야기일뿐이지만 그 주인공이 본인이 된다고 생각해보면 썩 기분좋은 일은 아니다.
어쩄든 결국 이런 영화에 대해 말을 해야되는 필자의 입장에서 고려되는 대상은 결국 이런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관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류의 영화는 극한으로 치닫는 괴로울 정도로 참혹한 장면으로부터 쥐어지는 불쾌함을 재미로 극복할 수 있는 관객을 위한 것임에 틀림없다. 결국 영화에 만족하는 것과 만족하지 않음의 구별은 그 장르에 안착할 수 있는 자질이 있느냐의 구분부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만약 이런 류의 영화를 즐기는 관객이라면 분명 털이 곤두서는 불쾌한 스릴에 만족할 만하다.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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