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오프닝. 한 남자가 무언가에 쫓기듯 다급하게 사무실로 들어온 후에 노트에 기록을 하기 시작한다. 그는 누구이며 독백을 통해서 들려오는 그 내용은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 그리고 지금의 상황에는 대체 어떤 원인이 숨겨져 있을까. 영화 <나비효과>는 이런 암시적 장치와 함께 플래시백의 반복을 통해서 주인공 자신과 주변인들 사이에 얽혀 있는 일련의 사건들, 즉 끔찍한 과거의 악몽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바뀌어야만 하는 운명을 위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향해 치닫는 주인공 혹은 우리 인간의 욕망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대체적으로 자신이 선택하지 못한 또 다른 길에 대한 일말의 호기심 때문에 그 길로 들어서는 일은 때론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삶을 인도하기도 하지만, 결과야 어찌 되었든 그건 대단히 유혹적이다. 누구나 거기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듯이 영화 속 주인공 에반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정신병원에 갇혀 있는 아버지, 자신을 돌볼 시간이 별로 없는 엄마, 그런 환경 속에서 자란 그에게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은 유일한 즐거움이지만, 오히려 여러 사건들이 그의 어린 시절을 순탄치 않게 만들어버린다. 게다가 단편의 기억들을 잃어버리는 병까지 앓고 있다. 기억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서 매순간들의 상황을 기록했던 그 일기는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작은 단초를 우연히 제공하지만, 카오스 이론에 의거한 영화의 제목이 말해주듯 기꺼이 그 길로 들어선 그를 점점 걷잡을 수 없는 혼돈의 세계로 내팽개쳐 버린다. <나비효과>는 소재나 형식면에서 그다지 새로울 건 없지만 누구나 한 번쯤 유혹을 느껴봤을 운명의 선택, 혹은 순리를 거스르는 인간의 오만함에 관해 '잃어버린 기억'을 모티브로 해서 꽤나 의욕적으로 풀어나간다. 그러나 비교적 짜임새 있는 이야기의 구성은 가장 중요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후반으로 갈수록 챕터간의 개연성이 모호해지면서 그 정교함을 보여주지 못한다. 또한 뒤바뀐 운명의 공간은 교도소 부분을 지나면서 이 영화가 나름대로 의도한 메시지를 조금씩 잃어가고,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됐다는 식의 결말 즈음에 이르러서는 확연하게 드러난다. 결국 오프닝에서의 암시적 장치는 별다른 효과를 이끌어내지 못했던 셈이고 매력적인 소재에 기대를 했던 만큼 플롯이나 내러티브의 구조는 별다른 조합을 이루어내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일상이 괴롭고 삶이 처절한 자신에게 기회만 주어진다면 현실의 운명을 거스르고자 하는 준비는 누구에게나 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회가 거역한 운명에 대한 단죄로 돌아온다면? 결말이야 어찌 되었든 이 영화가 그걸 말하고 싶었다면 여러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볼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는 셈이다. 개인적으로는 그 마저도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