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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km8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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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08 오후 8:1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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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10대일 적에, 어른들은 우리들을 딱 두 가지 틀 안에 넣어둔다. "애" 혹은 "어른". 학교에서는 아직 우리는 생각이 덜 자란 애라서 스스로를 절제할 능력이 안된다고 두발을 단속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자칫 행동 하나 잘못 했다간 "이제 다 큰 어른이나 다름없는 녀석이 정신 못차리고" 이런 소리를 듣기 일쑤다. 한쪽에선 여전히 머리에 피도 안마른 애 취급을 받고, 한쪽에서는 이젠 어른 다 됐다고 어른 취급을 받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그런데 이런 우리의 10대 시절을 확실히 정의하는 단어가 엄연히 존재한다. "주변인". 어쩌면 좀 서글프게 들릴 수도 있지만, 10대의 우리는 애도 아니고 어른도 아니다. 애 취급 받던 시절은 벗어났으나 아직 어른 취급 받을 만한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한, 그 중간점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대개 우리의 10대 시절인 것이다. 영화 <린다 린다 린다>는 이렇게 "애"와 "어른"의 사이에 위치해 그 주변을 맴도는, 그러나 그만큼 신선한 어떤 무기를 갖고 있는 10대 시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바사키 고교의 2004년 봄 축제를 며칠 앞둔 어느날, 드러머 쿄코(마에다 아키)를 비롯한 여고생 밴드부원들은 축제 라이브 공연에 나가려고 하지만 멤버들의 탈퇴와 부상 등으로 인해 그 계획에 계속 차질이 생긴다. 결국 쿄코와 키보드 담당 케이(카시이 유우), 베이시스트 노조미(세키네 시오리) 세 멤버만 남게 되는데, 이 멤버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노래가 없을까 찾아보던 중 우연히 그들의 귀에 제대로 꽂힌 노래는 전설적인 밴드 "블루하트"의 "린다 린다"라는 노래. 이들은 이 노래로 라이브에 나갈 것을 결심하고 보컬을 맡을 사람을 찾는데, 그들 앞을 지나가는 사람을 멤버로 영입하자고 하고는 영입한 사람은 한국에서 온 교환학생 손(배두나). 정말 얼떨결에 멤버로 영입된지라 그녀의 노래 실력은 전혀 정제되지 않은 천연 그대로의 노래 실력. 공연까지는 고작 3일 밖에 안남았는데, 이들은 과연 라이브에서 제대로 공연을 펼칠 수 있을까?
처음에 난 이 영화를 배두나가 나오는 일본영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 혹시나 또 배두나가 적은 비중으로 나오거나, 또는 다른 일본 배우들과 잘 섞이지 않고 어색하게 보이지는 않을까 살짝 걱정도 하긴 했다. 그런데 이게 왠일, 배두나는 당당히 주연이며 엔딩 크레딧에서도 배두나의 이름이 가장 첫번째로 나온다. 거기다 그녀의 연기는 다른 세 멤버들과도 전혀 무리없이 잘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영화 속에서도 한국에서 온 교환학생 역할인지라 일본어는 서툴 수 밖에 없는데, 그래서 일본어 대사는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엉뚱하고 발랄한 이미지는 여전히 스크린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몇 단어 안되는 일본어 실력으로 남의 남자 친구 관계를 꼬치꼬치 캐묻고, 가끔 감정이 벅차오를 때면 사정없이 한국말을 날려 살짝 이해불가능하게 만드는 모습까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경쾌한 여고생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배두나와 어울린 다른 여배우들, 가장 무난한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좋아하는 남학생 앞에서 수줍음은 숨길 수 없는 쿄코 역의 마에다 아키, 화를 잘 내고 그러면 대번에 냉정해지지만 알고보면 성격 좋고 털털한 케이 역의 카시이 유우, 과묵하고 얌전한 한 편 요리에 있어선 실력을 막론하고 상식이 빠삭한 노조미 역의 세키네 시오리 모두 자신만의 캐릭터를 잘 살리면서도 한 밴드의 멤버들로서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영화를 보기 이전에 <스윙걸즈>를 봤었는데, 여고생과 밴드라는 소재 면에서 이 영화가 <스윙걸즈>와 비슷한 점이 없진 않다. 그런데 <스윙걸즈>가 독특한 유머와 판타지적인 재미를 곁들여 10대 여고생들의 대책없는 발랄함을 수놓았다면, 이 영화는 이와는 좀 다르게 10대의 나날들을 조명한다. 좀 더 현실적이고, 좀 더 진지하게 말이다.
영화는 시작 부분부터 나름의 진지한 구석을 슬쩍 보여준다. "애 처지에서 벗어났다고 무조건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여학생의 나레이션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발랄함, 경쾌함을 넘어서 시기적으로 살짝 어중간한 위치에 놓여있는 소녀들의 마음 상태를 비춘다. 스스로 밴드를 조직하고 꾸려나간다는 점에서 이 소녀들은 확실히 애 처지에서는 벗어났다. 그런데 그들이 밴드를 이끌어나가는 방식은 독특하고 때론 충동적으로까지 보이기도 한다.(보컬이라는 핵심 멤버를 그저 "그들 앞을 맨 처음 지나가는 사람"으로 뽑는다니 원;;) 이런 점은 사회화로 가다듬어지고 정제된 성인의 모습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무모하지만 도발적이고 대담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어른들이 준비하는 체계적인 밴드였다면 오디션을 여러번 거쳐 실력이 검증된 사람을 멤버로 뽑았을 것을, 그들은 실력이고 뭐고 따질 것 없이 당장에 아무 사람이나 들여놓았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막상 실력을 보고 좌절하거나 실망하지도 않는다. 뭐 연습하면 되지, 그 뿐이다.
이런 10대들의 정제되지 않은 면면은 이렇게 밴드를 꾸려가는 부분 이외에도 여러 부분에서 관찰된다. 손에게 사랑을 고백한다고 한국말까지 배워서 서투른 사랑 고백을 하는 남학생 마키의 모습은 뭔가 준비를 단단히 한 듯 싶지만 여전히 서투르고 어색해서 상대방을 휘어잡는 면이 부족하다. 영화 시작 부분부터도 그렇고 중간 중간에도 축제를 홍보하는 영상이나 중계하는 영상을 만드는 학생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의 모습 역시 우리가 흔히 보는 TV 프로그램들을 나름 따라해보려고 하지만 여전히 어느 한 구석은 어색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일본어가 여전히 서투른 손은 노래방에서도 대화의 장애를 겪어 웃지 못할 해프닝을 일으키지만 그래도 노래 연습은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영화는 아이 티에서 벗어나 이제는 스스로 뭘 좀 해보려고 하지만, 확실히 형식에 맞춰지고 오차도 별로 없는 어른들의 모습들과는 다른, 뭔가 흠도 보이고 어설픈 구석도 많지만 그래서 좀 더 신선해 보이는 10대들의 일상을 하나하나 밟아간다.
밴드 멤버들이 고작 3일이라는 시간동안 노래를 배워가고, 실력을 익혀가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손은 처음에는 정말 지지리도 노래를 못하는데 사실 맨 마지막 공연 장면에서도 정말 일취월장 했다고 할 만큼 실력이 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노래를 확실히 익힌 것같긴 하지만, 여전히 그냥 보통 사람이 노래방에서 심심풀이로 노래 부르는 정도의 평범한 실력. 그러나 이들은 이에 포기하지 않는다. 공연 시간에 살짝 늦어도 그들은 괜찮고, 노래 실력이 지극히 평범하고 미지근하더라도 관객들을 사로잡을 열정만 있다면 그것쯤이야 개의치 않는다. 나아가 이들은 단순히 노래를 완벽하게 연주하는 것만을 목표로 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친구(그 친구가 설사 다른 나라에서 왔고 다른 언어에 익숙하다 해도)를 사귀어가고, 친구들과 함께 하는 재미를 알아가는 것도 하나의 수확으로 여기고 있으니 이 어찌 기특하다 하지 않을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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