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004 필름포럼, 가을이
아이슬란드 영화를 보았다. 그 곳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눈이 무진장 많고 이젠 추위에 익숙해질 만한데도 여전히 추워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선입견으로 보일 만큼 그들은 다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허무함이 아른거렸다. 그것은 나이든 사람들보다 젊은이들에게 더욱 또렷해졌다. 젊은이들은 성급하게 허무함을 두러내고 또 분출했다. 그래봤자 거대한 빙산 밑에서 옹기종기 보여 사는 작은 마을의 ‘한낱 인간’일 뿐이지만. 영화가 중간 중간 커다란 빙산 밑에 오글오글 모여 있는 작은 집들의 불빛을 보여 줄 때마다 나는 ‘한낱 인간’의 허무한 몸짓을 떠올렸다.
노이는 그런 인간들 중에서도 더욱 많은 헛짓거리를 하는 말썽쟁이 젊은아이였다. 제대로 하는 것, 열심히 하는 것 하나 없는 노이는 사실 알고 보니 천재였다. 하지만 영화에서 그가 천재라는 것은 잠깐 드러날 뿐 전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영화의 흐름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다. 구지 노이를 천재라는 설정으로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노이의 행보에도, 영화의 내용에도 전혀 아무런 중요성을 띠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저 무섭도록 하얗고 거대한 빙산때문이겠지, 하고 생각했다. 눈사태가 일어나자 마침 지하의 자신만의 은신처에 들어가 언제나처럼 침잠해있던 노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망했다. 노이가 아무리 천재여도 어마어마한 눈덩이가 마을을 덮치고 사람을 파묻어 버리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희망이 없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간 후 극장의 불이 켜지자 나는 같이 동행한 옆자리의 이종사촌 가을이에게 막막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희망이 없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노이가 항상 들여다보던, 가고 싶어했던, 요술카메라 속의 하와이 해변의 물결치는 장면으로 끝이 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 조각의 희망도 찾을 수 없었다. 눈 밖에 없는 섬 아이슬란드이건 맑은 햇빛 청아한 물빛의 하와이 해변이건 우리는 ‘한낱 인간’으로서 삶을 살아내고 있으니까.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눈 덮힌 들판에서 허무함을 뒤집어 쓰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듯, 하와이의 주민들은 시종일관 모든 것을 백일하에 드러내는 저 햇빛이 지루해서 죽을 지경일지도 모른다.
결국 중요했던 건, 중요한 건 실제적으로 나를 감싸고 있는 바깥 우주가 아니라 내 안의 우주란 걸, 노이는 그나마 나라는 존재를 증명해주던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깨달았을까 못 깨달았을까.
나는 아무래도 자신할 수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