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제프. 32살. 오늘 그는 3주 전부터 인터넷으로만 이야기를 나눠왔던 누군가를 만나는 중이다. 헤일리. 14살. 진 세버그에 관한 책을 가방에 넣고 다니는, 웨일즈 대학의 의학교수인 아버지 강의를 청강하는, 골드프랩의 콘서트를 놓치게 된 걸 못내 서운해 하는 소녀. 제 나이보다 다섯살은 앞서나갈 듯한 정신연령을 가졌으면서도 제프가 "골드프랩 콘서트에 가서 녹화한 MP3 파일을 줄께" 라고 호의를 배풀자 금새 뛸듯이 좋아하는, 어딘가 조금 불안해 보이는 듯한 여자아이.
이 둘이 처음으로 만나는 동네 커피숍의 한쪽 벽에 걸린 광고를 눈여겨 두자. 여자애를 찾는 전단이다. 실종, 도나 마우어. 얘네들이 처음으로 만나 눈길을 주고받는 그 야시꾸리한 분위기에 이끌려서 자칫 소홀히 보았다간 이후 영화 따라가는 데 애 좀 먹는다. 각설하고.
어쩌면 동상이몽을 꿈꾸는지도 모를 이 둘이 처음 만나 언어의 유희를 주고 받는 내내, 이야기가 어느 방향으로 튈지 종잡을 수 없는 답답함에 시달리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다. 유혹해 보고, 달래 보고, 놀려 보고, 망설여 보고. 나를 숭배해 봐요, 라는 대사를 거침없이 내뱉는 이 여자아이와, 그 앞에 무릎을 꿇기를 망설이지 않는 이 남자.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또 어디까지가 거짓일까. 순수를 가장한, 왜곡된 성과 모랄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이들의 위태로운 게임은 마치 예정된 각본처럼 가쁜 호흡을 맞추기에 여념이 없는데.
제프의 집에 도착하고, 스크류 드라이버를 한잔씩 나누어 마시고. 나를 찍으라며 소파에 올라가서 옷을 벗는 헤일리에게 카메라를 들이댄 것을 마지막으로, 제프는 그만 의식을 잃어 버린다.
게임끝. 이제 깨어날 시간이야...
다분히 평면적인 연출이지만, 짧게 끊어지는 장면들과 적절한 카메라 이동이 지루하지 않게 시선을 잡아끌 수 있었던, 상당히 잘 압축된 영화. 신인감독, 데이빗 슬레이드 작품이고. 제프 역으로는 패트릭 윌슨이, 그리고 헤일리 역으로는 엘렌 페이지가 줄연했다. 모두 신예배우들이다. 그러고 보면, 신인감독과 신예배우들이 그것도 무척 신선한 플롯으로 전혀 평범하달 수 없는 작품을 하나 만들어낸 셈이다.
도중에 사이드웨이로 우리에게 친숙한 한국계 캐나다 여배우, 산드라 오의 모습도 아주 잠시 비친다. ^^ 아무튼. 결론적으로는 제프와 헤일리, 둘이서만 출연하다시피 한 이 영화, 스릴러라는 장르에 걸맞는 심리적인 긴장감으로 시종일관 압도한다. 새삼 얘기하는 거지만.. 얘네들 연기, 정말 제대로 한다.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와서. 제프가 던진 그물에 헤일리가 걸려든 걸까. 헤일리가 던진 그물에 제프가 걸린 걸까. 온 몸이 꽁꽁 묶인 채 의식을 회복한 제프, 그리고 아동 성범죄의 댓가를 치루어 주겠다는 헤일리. 증거를 찾겠다며 집구석을 샅샅이 뒤져나가는 여자아이를 바라보면서, 제아무리 난 아동 성범죄자가 아니야, 라고 항변해 보았댔자 속수무책이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조금씩, 사건의 윤곽이 잡혀간다. 다 보여주는 듯 하면서도 기실은 많은 부분을 상상의 영역으로 남겨둔 덕분에, 눈으로 보는것 이상으로 몸서리칠 수 있었던 영화. 종료를 5분 남짓 남겨 놓은 시점에서 나의 알팍한 편견에 조롱섞인 마침표를 찍어 버렸던, 그래서 기어이 그 자리에서 한번을 더 봐야만 했던.. 골치도 아프고, 부담도 참 많이 가져야 했던 영화.
가벼운 영화 아니다, 팝콘 먹으면서 볼 생각은 아예 안하는게 좋겠다...
- 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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