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처음엔 <라디오 스타>보다는 타짜를 볼까 했었다.
추석연휴도 길고.. 하도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길래 기쁘고 설레는 마음에
영화를 하나 보기는 봐야겠다 싶었지만.. 사실은 타짜가 가장 마음이 끌렸었다.
그런데 이게 왠걸?
평소 영화에는 통 관심이 없으시던 우리 엄마, 아빠가 라디오스타를 어느새 보고오셔서는
얼른 언니와 함께 가서 보라면서 돈까지 쥐어주시는게 아닌가?
엄마, 아빠가 마지막으로 보신 영화가 동막골이었던가....?
아무튼 거의 1년만에 영화를 보고 오셔서는 (마치 젊은 시절처럼)
즐겁게 영화 이야기를 나누며 맥주를 마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대체 어떤 영화길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라디오스타를 보게 되었다.
뭐, 사실은 라디오스타가 워낙에 미리 시사회를 본 관객의 평이 좋았고,
평론가들에게도 워낙에 후한 점수와 찬사를 받았고,
이금희 아나운서를 비롯한 많은 연예인들이 극찬을 하길래.. 좋은 영화라는 건 알고있었다.
하지만 안성이, 박중훈 주연에 퇴물 록가수의 이야기라니.. 좀 올드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게다가 이준익 감독도 황산벌이나 왕의 남자처럼 약간은 스케일이 큰 (적어도 라디오스타 보다는)
영화를 성공시킨 감독이기에 도대체 어떻게 만들었을런지 걱정도 있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라디오스타는 그야말로 올드한 느낌의 장점을 십분 활용한 참 똑똑한 영화였다.
이준익 감독이 참 특출한 사람이긴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퇴물록가수 최곤과 매니저 박민수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람을 떠올릴것 같다.
다름아닌 러브액츄얼리의 한물간 록가수와 그의 매니저 말이다.
러브액츄얼리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에피소드로 키이라 나이틀리에게 고백하는 남자를 꼽는 사람이 많지만
나는 소설가의 에피소드와 함께 이 록가수의 에피소드가 참 좋았다.
러브 액츄얼리 내에서도 가장 많은 웃음을 유발했던 에피소드라고나 할까?
라디오스타는 오래된 두 사람의 우정을 논한다는 점에서는 그 에피소드와 비슷하지만
러브액츄얼리의 에피소드보다는 좀 더 소박하고 따뜻하며 사람냄새가 난다.
흘러가버린 인기와 명예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존심만 남은 최곤의 냉소와 독기..
그리고 그런 최곤을 한없이 쓰다듬고 감싸안는 매니저 박민수..
상당히 진부한 소재일 수도 있지만 참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그리고 진실되게 만들어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감독이 재능이 탁월하다는 점이 첫번째일것이고,
안성기, 박중훈 두 배우가 워낙에 연기를 잘했다는 점이 두번째일것이며,
노브레인을 비롯한 조연들 모두가 너무나 영화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는점이 세번째일것이다.
한국영화에서 소위 웃기거나 재미있다는 영화들의 스타일이 대부분 웃기다가 울리는 것이다.
앞에는 엉망인 플롯을 보완하는 상황적 개그로 관객을 실컷 웃겨놓고 꼭 마지막에는 억지로라도
눈물을 빼야 직성이 풀리는지 .. 가족애등의 보편적 감성을 마구마구 강요한다.
그런영화들은 막상 볼때는 워낙에 보편적인 감성을 사정없이 자극하기 때문에 웃고 울지만..
극장을 나서면서는 괜한 체력소모를 한것같은 생각에 어쩐지 찝찝하기 마련이다.
라디오스타는 그렇지 않다.
라디오스타는 여타의 감동을 주고자 맘먹은 영화와는 다르다.
절대 억지로 감동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실컷 웃기다가 울리는 영화는 발에 채일만큼 많지만
웃으면서 울게하고, 울면서 웃게하는 영화는 라디오스타뿐일게다.
"이영화를 보기전에 이영화를 논하지 말라" 는 어느 평론가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나도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라디오스타를 권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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