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온은 오프닝부터 엔딩까지 친구의 신화를 꿈꾸는 감독의 자신감으로 충만되어 있는 영화다. 자신감 자체는 나쁘지 않다. 문제는 자신감이 자기 최면으로 변하는 것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지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앞 일을 누가 장담할 수 있을 것인가? 더군다나 도박판이라고도 불리우는 영화판에서 함부로 대박 혹은 쪽박을 예측할 수는 없는 것이고 국민적 대박 영화 감독의 자신감을 어느 누가 견제할 수 있었을 것인가. 그러나 문제는 너무 많은 걸 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복싱 경기의 박진감도 살려야지 김득구의 인간적 고뇌도 담아야지 관장의 가오도 잡아 줘야지 친구의 우정도 재연해야지 약혼녀와의 애틋한 사랑도 끼워 넣어야지 가족의 끈끈한 정도 느끼게 해 줘야지 불우한 어린 시절도 보여줘야지 80년대 정서로 노스텔지어도 자극해야지 마지막으로 바다도 한번 보여 줘야지...지금 생각나는 것만 해도 이 정도다. 사실 이중 몇개만 제대로 해 줬어도 훌륭한 영화가 될 수 있다. 경기의 박진감만 잘 살렸어도 록키3편보단 훌륭할 수 있었고 인간적 고뇌만 잘 살렸어도 성난 황소보단 나았을 테고 친구의 우정만 잘 표현했다면 적어도 키즈 리턴 정도는 나왔을 것이다. 이 모든 걸 다 해줬다면 그렇다면 그건 & #039;허리케인 조& #039;다. 모두들 무릎 꿇고 젊음의 에너지가 하얗게 재가 될 때까지 온 몸으로 감동을 완전 연소 시키며 울어야 된다. 박진감을 살리기엔 경기 장면이 너무도 단순했고 인간적 고뇌를 담기엔 드라마가 산만했고 관장의 가오는 살았지만 사실 그리 중요한 건 아니고 친구의 우정을 느끼기엔 좀 난데 없다는 느낌이었고 애틋한 사랑을 끼워 넣기엔 감정의 틈이 없었고 가족의 정을 느끼기엔 배우들의 연기가 당황스러웠고 불우한 어린 시절은 맞는 것만 봐서 필이 안 꽂히고 80년대 정서는 살았지만 뭐 그리 중요한 건 아니고 (사실 80년대...어땠는지 별로 안 궁금하다.) 마지막 장면에 바다를 보여주는 건 기타노 타케시 한 명으로도 족하다고 생각한다. 곽경택 감독님 좋아한다. 재기 발랄해야 한다는 자의식 없이 인간의 감정으로 충만된 단편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 영창 이야기도 좋았고 저예산 well-made 장편 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억수탕을 보면서는 한 없이 다양한 영화에 대한 꿈을 꿀 수 있어서 좋았다. 대박도 좋고 한국적 정서도 좋지만 그런 영화는 많이 하셨으니까 이제부턴 & #039;영창 이야기& #039;나 & #039;억수탕& #039; 같은 영화를 다시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