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난, 생각보다 오래 살지 않아서, 그런건 잘 모르겠다.
흥했던 자가, 망했을 때의 그 좌절감 같은거.
아, 그래.
월급 받으면서 직장 잘 다니다가 맘에 안든다고 때려치고 나온거.
그거에 빗대면 딱이겠구나.
굳이, 그런 경험이 없다고 하더라도, 누구나 상상속으로 얼마든지 느낄 수 있는 그런 상황.
그런 상황을 겪는 88년도 가수왕 최 곤의 이야기가 '왕의 남자' 이준익 감독으로 하여금
영화로 만들어졌단다.
오늘도 어슬렁, 어슬렁 종로로 가서 마지막 상영되는 '라디오스타' 를 보고 왔다.
정말, 간만에 별 4개 나왔다.
2.
88년도 가수왕 최 곤(박중훈)은, 인생의 맨 꼭대기에서 바닥까지 경험하고 있다.
수많은 팬을 몰고 다니며,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던 그가 폭행, 마약 등등의 사건을 거치면서
별볼일 없는 왕년의 인기가수로 전락해버렸지만, 그는 아직도 가수왕의 꿈속을 잘 벗어나지 못한다.
그에게는 분신과도 같은 20년동안 최곤 하나만을 바라보고 있는 매니저 박민수(안성기)가 있다.
인생의 바닥까지 내려온 그에게, 이제 남은거라곤 왕년의 명성과 매니저.
그의 매니저는, 최곤을 위해 무슨일이든 한다.
강원도 영월의 라디오 DJ로 좌천되어, 아무 의미없이 DJ를 하던 그에게, 여러가지 사건에 의해 라디오 DJ는 그에게, 단순한 DJ 이상이 되어버린다.
앞길이 보이기 시작한 그에게, 매니저가 걸림돌이 될 즘, 민수는 최곤을 떠나게 되고,
그는 비로소 매니저의 중요성을 느끼고, 그와 다시 조우하게 된다.
3.
근데, 이 스토리, 생각보다 많이 감동적이다.
너무나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배우들의 연기와 그밖에 상황들로 하여금 관객들은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되며, 진정한 휴먼 스토리가 완성된다.
적절한 장면, 적절한 연기, 적절한 눈물, 적절한 결말까지.
한 사람만을 위해 헌신하는 매니저 박민수를 보며, 인간의 정, 의리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고,
철딱서니 없고 예전 명성을 잊지 못하는 최곤이, 진정 자신을 지켜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깨달아가면서 보여주는 모습들.
이거, 완전히 감동을 받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
4.
'왕의 남자' 감독 이준익은 가히, 영화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다.
왕의 남자처럼 스케일이 크지도, 수많은 엑스트라를 동원하지도, 화려한 볼거리가 없어도,
영화의 장면을 구성하는 능력이나, 사람을 웃기고 울릴 줄 아는 사람이다.
역시, 명감독은 - 비록 두편의 영화로 감독의 능력을 평가하긴 성급하다지만 - 다르다.
최근, 영화를 참 많이 보고 있지만, 별 두개, 한개를 왔다갔다 하다가, 간만에 별 네개를 줄 수 있는 영화를 보게 되어 정말 좋았다.
5.
잘 만든 영화는, 보고 나서도 그 여운이 잔잔하게 내 머리속을 휘감는다.
정말, 일본의 '최종병기 그녀' 란 영화를 보고 부르르 치를 떨며, 도대체 감독과 배우는 무슨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는거에 비한다면, '라디오스타'는, 이 영화에서 얻을 수 있는것, 영화를 보는 재미가 무엇인지, 전자의 영화와 가히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재미를 주었다.
이번 추석, 기대되는 한국 영화들이 몇편 있다.
그중, '라디오스타' 정도면, 기대했던 영화중에 하나가 되기에 충분하다.
6.
'별은, 스스로 빛나는 것은 하나도 없데. 다 빛을 받아서 자신이 그렇게 빛날 수 있는거야.
어디갔어, 빨리 와서 나를 빛내주라고'
이 말이 참 오랫동안 머리에 남는다.
나에겐, 나를 비춰서 빛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사람을 빨리 찾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