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기는 이렇다
전설이 아닌 청춘이 어디있겠는가? 쇠락해 버린 청춘의 뒤안길에 선 성현(이천희)과 경로(MC몽)는 청춘을 곱씹으며 무기력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그들에게 "전설" 박정권(박건형)이 돌아오고, 다시 뭉친 "노터치파"는 자신들의 빛나는 청춘과 전설을 지키기 위해 세상을 향해 정권을 내지른다.
이 영화는 21세기판 <비트>라고 부를만하다. 감히 말하길 <뚝방전설>은 <비트>보다 한 단계 진화해 있다. 지나치다 싶을만큼 "가오"잡는 <비트>가 그야말로 20세기 스타일이라면. 그보다 훨씬 쿨하고 귀여운 <뚝방전설>은 21세기 스타일이다.
요즘들어 쇼오락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최홍만을 볼 때마다 나는 궁금하다. 저 거대한 남자도 자기를 때리겠다고 덤비는 상대 선수 앞에 설 때는 두렵지 않을까?
18대 1의 전설 (비트는 17대 1이었나?) 박정권 역시 한 명의 소년이었을 뿐이다. 그가 홀로 감당하기에는 세상은 너무나 비정하고 험하다. <비트>의 민과는 달리 그는 두렵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그의 나약함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무서울 때에는 무섭다고 이야기하자. 그러면 분명 친구들이 달려와 줄 것이다.
영화는 비트에 대한 오마주를 아끼지 않는다. 노터치파가 비디오방에 모여 보는 영화가 <비트>임은 물론이고, 영화의 편집 역시 닮아있다. 가령 실내에서 누군가를 뻥 걷어차면, 아스팔트 위에서 나동그라지는, 시간을 뛰어넘는, 이른 바 "비트 스타일"의 편집을 영화는 적절히 활용한다. <비트>를 추억하는 이들에게는 좋은 선물이 될 듯하다.
배우의 발견
이천희
모델 출신 배우들이 그 비쥬얼을 무기로 우후죽순 대중 앞에 나설 때, 대중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착실하게 필모그래피를 채워온 이 남자가 드디어 <뚝방전설>에서 빛을 내뿜었다. 그의 역할 기성현과 마찬가지로 영화 속 그는 튀지 않으면서도 묵직하게 이야기를 이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박건형이 아닌 이천희라할만하다. 자칫 남성 판타지물에 머물기 십상인 이 영화에서 그는 진실성있고 차분한 연기를 선보임으로 영화에 현실성을 불어넣는다.
MC 몽
<원탁의 천사>에서 하하가 발군의 연기를 선보였다면 <뚝방전설>에는 MC몽이 있다. 평소 대중에게 비춰지는 그의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역할이지만, 뭐 어떠랴. 그는 맞춤옷을 입은 듯한 연기를 선보인다. 이천희가 영화에 현실성을 불어넣었다면 MC몽은 영화가 폭력 일변도로 흐르는 것을 막고 웃음을 선사한다.
역시 유지태
무릎을 탁 치지 않을 수 없다. <동감>에서의 유지태를 기억하는 나에게는 일종의 충격이었다. 가족도 친구도 추억도 없는, 홀로 "비열한 세상"을 대변해야하는 다소 비현실적이고 기형적인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유지태는 이 역할에 피를 돌게하고 숨을 불어넣는다. 그 어느 배우도 유지태를 대신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다만 그의 "포스"가 너무나 강렬해, 다른 배우의 열연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린다는 단점이 있다. 심지어 오달수 조차 기억에 남지 않는다.
전설이 끝나면 그 자리에는 무엇이 남을까? 가족도 친구도 추억도 없는 이치수가 세운 아파트가 그 자리에 들어서고, 우리는 어른이 되면 그만인 걸까? 그들의 빛나는 전설이 끝난 그 자리에는 소중한 추억이 남는다. 학교 문을 나설 그 때에도 어른이 되지 못했던 그들은 자신의 추억을 지키기 위해 비열한 세상에 주먹을 내지르며 비로소 어른이 될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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