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중학교때 한참 좋아했던 장르가 무협입니다. 무협소설로 시작 해서 무협영화 심지어는 무협물 시리즈까지 빌려다가 밤새서 볼 정 도였거든요. 무협물 속에 나타나는 세계는 제 이상향이었습니다. 의리와 명예가 있고 사람이 축지법을 쓰고 현란한 칼싸움에... 한 번쯤 이렇게 살아보면 얼마나 좋을까하며 주인공들을 노려보곤 했 죠. (뭐..6--;; 암습이나 잘못 걸려서 고수에게 엄청 두들겨 맞는 경우는 제외입니다.) 세월이 흘렀다고 해도 무협에 대한 제 사랑은 식은 게 아니기 때문에 [무사]를 놓칠 수야 없는 일이었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살아남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 다. 사신단 호위를 맡아 명나라로 긴 길을 나선 최정은 얼토당토않 은 간첩혐의를 받고 귀양길로 나서는 일행을 구할 힘이 없음을 통 탄합니다. 적어도 원기병에 의해 자신들을 압송하던 명나라 군사들 이 다 죽기 전까지는요. 최정은 이제 조국인 고려로 돌아가기 위해 강압적으로 일행을 이끕니다. 그 과정에서 부사인 이지헌이 죽고 그의 노비인 여솔은 그에게 적대감을 보입니다. 하지만 집으로 돌 아가기 위해서라면 그쯤은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었던 그였습니다. 객잔에서 원에 잡혀가던 명나라 공주 부용을 만나지만 않았더라면 그랬겠죠. 부용공주만 구출한다면 금의환향은 따논 공상인데 그걸 지나칠 수가 없었던 최정은 공주를 구출해내지만 일행의 고난은 이 제부터 진짜로 시작됩니다.
전 최정이 너무 불쌍했습니다. 최정을 보고 나쁘다는 생각을 많이 들 하던데...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뿐입니다. 훌륭한 장군이었던 아버지를 능가하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이름에 먹칠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부담감, 젊은 나이에 일행을 잘 이끌어야 한다 는 책임감, 명예를 얻어 돌아가고 싶다는 공명심.... 사람이라면 누 구나 가질 수 있는 감정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한 선택을 전 도저 히 비난할 수가 없더군요. 자신이 가지고 싶었던 요소를 하나씩 가 지고 있는 진립과 여솔 그리고 가남이라는 존재가 그의 콤플렉스를 더 자극했기에 결국 목숨을 건 도박을 선택하게 된 것이니까요. 그 의 선택은 그 시절 젊은 귀족으로서 할 수 있는 당연한 선택이었는 지도 모릅니다. 전 그런 그의 절망감이 느껴져서 최정이 무척이나 안쓰러웠습니다. 욕심에서 깨어났을 땐 이미 모든 게 너무 늦어버 렸으니까요.
안 좋은 의견 때문에 마음에 준비를 하고 가서 봤기 때문인지 전 생각보다는 괜찮았습니다. 6^^;;;; 배우는 물론이고 스탭들이 얼마 나 고생을 했을지 절절히 묻어나는 영화더군요. 기왕이면 고생한 이상으로 영화가 나왔으면 좋았겠지만 세상일이란 게 맘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 여기까지 비슷하게 온 것만 해도 다행이었 습니다. 하지만 역시 현대물만 찍던 김성수 감독의 욕심이 과했던 건 확실합니다. 인물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의 갈래를 조금 줄이고 할 수 있는 만큼의 이야기만 했어야 하는데 아까워하며 과감하게 버리지 못한 게 아쉽네요. 특히나 극의 중심에 서 있는 최정, 부 용, 여솔의 캐릭터가 흔들리니까 극 전체가 흔들렸습니다. 오히려 람불화, 진립, 가남 등의 조역 캐릭터가 더 확고하더군요. 또 하 나... 그냥 우리나라 영화음악가를 쓰는 게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 이 있습니다. 음악은 좋았지만 왠지 영화와는 뭔가 겉도는 느낌을 많이 주었거든요. 제 선입견일까요?? --;;;
길은 원래 떠나는 길보다 돌아오는 길이 더 멀고 험한 법입니다. 산도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오는 것이 더 힘들잖아요. 그걸 아는 사 람만이 길을 떠날 자격이 있는 것이죠. 아마도 그걸 제일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 진립이 아니었을까요. [무사] 역시 그렇습니다. 관 객에게 돌아오기 위해 떠난 길인데... 완전히 돌아오진 못한 것 같 네요. 이제는 시도가 좋았다는 것 이상을 요구할 시기가 되었으니 까요. 듣자하니 영화 [친구]에 대한 백서가 만들어진다더군요. 전 오히려 진짜 백서가 만들어져야 하는 영화는 [무사]가 아닌가 싶습 니다. 앞으로 우리 영화가 더 발전할 거라고 믿는다면 오늘의 실수 와 판단착오를 다음에 물려주면 안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