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적 관습은 안정적이면서도 도태적이다. 기대이상의 무언가가 되지 못한다는 점과 나쁘지 않을 정도의 흥미로움의 사이에서 안주하는 것은 들이대는 잣대의 기준관에 따라 극과 극의 평가적 위치를 선점할 수 있다.
사실 이 영화는 과거 몇몇 영화의 잔상을 떠올리게 한다. 누명을 쓰고 도주하여 자신의 결백을 밝혀내는 과정은 해리슨 포드의 '도망자'를 떠올리게 하고 백악관의 보안경관으로써 대통령의 암살음모를 막아내는 과정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사선에서'를 얼핏 떠오르게 한다. 특히나 마이클 더글라스나 키퍼 서덜랜드, 킴 베이싱어까지 할리웃의 중년배우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이 영화는 딱 그정도까지다. 기대 이상도 기대 이하도 없다. 숨막히는 스릴러나 서스펜스를 기대하는 이들에게는 실망감을 안겨줄 수도 있고 추격전의 긴박감을 원한 이들에게도 아쉬움을 남겨줄 법하다. 사실 이런 장르의 영화가 지닐 수 있는 강점은 긴장감의 강약이 어느정도의 파장을 보여줄 수 있는가에 있다. 관객의 심리를 몰아세울 수 있는 긴장감을 길게 지속시키지는 못해도 한 순간 구석으로 몰아넣듯이 날을 세우기만 해도 어느정도 성공한 셈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시종일관 지속되는 이야기상의 흐름은 존재하지만 감정적인 긴박감은 살아나지 못한다. 사실 이 영화는 관객들의 긴장을 조일만한 코드들이 밀집해있다. 음모, 배신, 도주, 추격. 총격. 그리고 은밀한 스캔들까지. 하지만 이런 다양한 무기를 지니고도 관객에게 제대로 된 서스펜스 하나 심어주지 못하는 영화의 모양새는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또한 이영화의 큰 공백은 매력적인 악당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대통령 암살을 기도하는 무리는 존재하지만 그 무리의 정체성은 희박하다. 그들이 과거 KGB의 잔당들이라는 사실이외에 대통령 암살의 명분은 미미하다. 마치 영화의 스토리상 소모될 수 밖에 없는 존재로써의 악당은 이 영화가 내세우는 음모의 스케일조차도 미미한 무게감을 느끼게 한다. 또한 음모의 가운데에서 고민하는 추격자와 도망자 사이의 심리적인 구도에 더욱 입체감을 낼 수 있었음이 간과되었다는 것도 아쉽다.
물론 이영화는 다양한 코드를 바탕으로 정석적인 플레이를 펼친다. 특히나 대통령을 경호하는 요원들의 철두철미한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이영화를 통한 색다른 재미이다. 또한 정석적인 이야기로부터 느껴지는 안주되는 재미가 이 영화가 지닌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인상이다. 또한 대통령의 암살이라는 코드는 초반 레이건 대통령 저격 사건과 오버랩되며 실제적인 리얼리티와도 상충되는 것만 같다. 최근 국제정세를 살펴보아도 그리 비현실적인 이야기만은 아니다.
비범하진 않지만 고만고만한 모양새가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기대이상의 무언가는 아니더라도 기대이하의 폄하까지도 아니다. 하지만 분명 노장들의 고군분투가 무색한 것은 사실이다. 과거의 복고성향의 정석 플레이가 먹히기 위해서는 탄탄한 구조물을 세웠어야 했다. 지난 날의 질감이 느껴지는 이 영화의 향수를 통해 남겨지는 것은 미치지 못하는 아쉬움이다. 눈으로 좇는 영화도 중요하지만 마음으로 느껴지는 영화도 중요하다. 외관은 뚜렷하지만 내면은 미흡해보인다. 그것이 이영화로부터 느껴지는 반쪽의 재미이자 증발된 서스펜스의 아쉬움이다.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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