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화 <무사>가 꽤 잘 빠진 영화라고 생각한다. 가끔씩 영상과 불협화음을 이루는 뜬금없는 음악이 실소를 짓게도 하지만,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작곡자 사기스 시로는 일본인임에도 오케스트레이션에 국악까지 접목시켜서 꽤 성의있는 OST를 만들어 냈고 엉성한 플롯에 주책없이 봉창 두드리는 대사가 가끔씩 튀 나오기는 하지만, 그래도 영화 <무사>는 돈 처발란다는 것이 표가 날 정도로는 만들었다.
최소한 <비천무>나 <단전비연수> 같은 쉣덩어리는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포장은 그럴듯하게 했지만, 결국 <무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알량한 휴머니즘이라는 것이다. (승려와 성리학자간의 갈등이나 그 시대의 계급 문제를 아무런 대안도 없이 투철한 통찰력도 없이 그저 줏어 들은 지식 쪼가리를 씹어 뱉듯이 토해 놓은 건 논외로 하자.)
휴머니즘... 물론 좋다. 휴머니즘과 같은 주제는 아마도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인류의 화두가 될 것이다. 그런데 그 휴머니즘을 포장하는 방식이 우리가 예전에 그리고 아직도 헐리웃 블록버스터에서 주리줄창 봐 오고 있는 관습을 그대로 차용했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단 한 명의 인명도 소중히 여기고 아녀자와 노약자를 최우선으로 보호하고 숨이 곧 넘어갈지언정 적에게 굴복하지 않고... 그러나 그 넘들이 주구장창 영화를 통해서 내세우는 휴머니즘이 언제나 자국민들에게만 적용된다는 것이 그 영화들을 신물하게 한다.
그렇게 신물이 나 버린 관습적 휴머니즘으로 영화 <무사>는 포장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무사>를 혹평하는 이유가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직도 헐리웃 블록 버스터에서 화려한 볼거리와 유머러스한 로맨스와 따뜻한 인간애로 한 감동 먹고 있는 사람들에게 영화 <무사>는 친근하게 다가오겠지만, 그것이 얼마나 진부 지리멸렬한 것이라는 걸 깨닫고 있는 사람에게 영화 <무사>는 어금니가 딱딱 마주칠 정도로 신경질 나는 영화가 돼버리는 것이다.
한국 영화 사상 최고의 제작비를 들여서 그 수 백배에 달하는 제작비를 들인 헐리웃 블록 버스터 못지 않은 볼거리를 만들었으니 그게 어디냐고 주접 떠는 넘들이 가끔 있는데, 그거 조또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헐리웃 블록 버스터 못지 않은 영화 만들 그 한국 영화 사상 최고의 제작비로 헐리웃 블록 버스터 따위는 흉내도 낼 수 없는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은 것을 왜 한탄하지 않느냔 말이다.
단지 몇 년만 있으면 퇴물로 전락해 버릴 영화를 만들어 놓고, '우리 이제 여기까지 왔어!'라고 흐뭇해 하는 꼴이란 눈 뜨고 봐 줄 수 없으리만큼 참담하다. 믿지 못하겠거든 <쉬리>를 다시 함 보라. <쉬리>를 지금 다시 보고 나서도 뿌듯해 한다면이야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