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아줌마, 아이들 넷이 주렁주렁 달렸다. 다음달이면 남편이 죽은 형이 남긴 빚갚기에서 손을 턴다는 기쁨에 들떠 있다. 그런데 남편이 다니던 증권회사에서 잘리고 말았다. "작전"에 동참하지 않은 '시대착오적 정직성'이 죄목이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이 보증섰던 친구가 부도 후 잠적했다. 한달내로 1억원을 마련하지 못하면 어렵사리 장만한 18평 아파트마저 날리고 일가족이 거리로 나앉을 처지다. 백방으로 뛰어보지만 1억원을 구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런데 길이 생겼다. 대학때 자신을 쫓아다니던 선배가 하룻밤 잠자리를 같이 하면 돈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애를 넷이나 두고 가슴은 처지고 슬며시 배도 나온 아줌마에게 말이다. <베사메무초>는 모처럼 만나는 30대 중년들을 위한 어른 영화다. 단란한 가정에서 소박한 행복을 누리던 주인공들은 차근차근 놓여지는 치명적 덫을 밟으며 궁지에 몰린다. 그들에게 닥친 난관은 자칫 구질구질해거나 눈물바람조로 치우치기 쉬울 함정을 과장 없는 묘사로 피해나간다. 영희와 철수로 나오는 이미숙, 전광렬 커플은 중견배우다운 진지한 연기로 공감을 끌어낸다. 아이들을 위해 교육보험만은 깨지 않으려 몸부림치거나 가족을 위해 수치감을 무릅쓰는 "모성"은 눈시울을 적신다. 부부에게 내려진 구원의 동앗줄은 가혹하긴 하다. 부유층 여인으로부터 잠자리와 1억원을 제안받기도 했던 남편은 그러나 선배와 자고난 아내가 괴로움을 털어놓자 "왜 말을 하느냐"며 다그친다. 자신이 초래한 그 무거운 짐을 혼자지지 않았음을 탓하는 이기심의 극치다. 하지만 무엇이 그리도 문제란 말인가. 첫 아이를 천식으로 잃고, 둘째 아이마저 천식에 시달리는 그들이 지하방으로부터 쫓겨나게 생긴 마당에 여인의 "선택"이 정녕 돌을 던질 일이던가. 극한 상황에서의 선택, 부부간의 신뢰의 문제, 자본주의 앞에서 흔들리는 도덕, 인간의 이기심 같은 여러 가지 흥미로운 질문거리들 앞에서 <베사메무초>는 그저 정조에 집착하는 전통정서에만 집중한다. 숱한 매력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그저 '갈등에서 건진 우리 가족'쯤의 평범한 가족 드라마에 머무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