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신하균은 예의바른 연기자였다.
혀 짧은 킬라(신하균)는 혀 짧은 소리가 쪽팔려서 아예 말을 하지 않고 산다. 항상 밤이나 낮이나, 맑은 날이나 흐린날이나 가죽잠바에 선그라스를 끼고다니며 오만가지 폼을 다 재고 다닌다. 심지어 팬티까지 가죽. 그가 킬러를 하는 이유는 혀 수술을 해서 말을 하기 위해서다. 그러기 위해선 1억이 필요하다. 무작정 의뢰받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 싫어서 그는 예의없는 것들만 골라서 일을 한다. 그런 어느날 그에게 어느 술집의 그녀(윤지혜)가 다가온다. 그녀는 무작정 그에게 들이댄다. 과연 그녀는 뭘 믿고 그에게 그러는 것인가. 그는 그의 동료 발레(김민준)와 함께 시장 상권의 이득을 독차지 하려는 자를 의뢰 받는다. 하지만 둘은 다른 사람들 죽이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이제 역으로 그가 추격을 받게 되는데...
솔직히 신하균이라는 이름 석자만 믿고 보게 된 영화다. 감독이름도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고, 윤지혜라는 이름도 생소한 이름이었다. 그나마 김민준은 익숙한 이름 이었으나 (그에겐 미안하지만)연기면에선 별로 기대하지 않는 배우다. 하지만 역시 신하균이라는 이름은 믿음이 가는 이름이었다. 영화도 영화자체로 괜찮았지만 역시 신하균의 연기는 지대로였다. '복수는 나의 것'에 이은 그의 또한번의 벙어리 아닌 벙어리 연기, '킬러들의 수다'에 이은(그땐 말이 많았다) 또 한번의 킬러 연기. 이 영화로 인해 신하균의 신뢰성은 더 높아졌다.
영화에서 신하균의 대사는 세단어 정도지만 영화 내내 그의 독백이 그의 생각을 말해준다. 그 독백은 그의 솔직한 생각들을 말해주기 떄문에 어느정도 영화의 이해나 그의 성격과 영화의 재미를 더해준다. 혀 짧은 소리가 싫어 아예 말을 하지 않는 그는 안그래도 말 많은 세상에 나름대로 반항을 하는 듯하다. 말 많은 자로 대변되는 사회의 '예의없는 것들'을 말 없는 킬라가 처단하면서 오히려 말 없는 자가 더 무섭다는 것을 보여준다. 킬라의 독백처럼 작은 고추가 더 매운법이다.
영화는 코미디 적인 부분이 상당히 많다. 일처리에는 능숙하지만 그 외의 상황에 대해서는 상당히 어리숙해 보이는 킬라, 또 그와 비슷한 그의 동료들, 그리고 형사등의 별로 비중없는 조연들은 코믹적인 부분에 상당히 보탬이 된다. 상황도 흘러가는 내용 속에 상당히 잔잔하게 녹아 있게 나타난다. 어정쩡한 상황속의 웃음이 아니라 웃어도 될만한 상황에서의 웃음이라 어색하지 않아 좋다.
사실 신하균의 연기만으로 상당히 즐거운 영화다. 그러니 이 영화에서 신하균을 뺀다면 그리 볼 것 없는 영화다. 홍일점 윤지혜도 묘한 매력을 발산하면서 좋았지만 그외의 조연들은 그리 큰 비중도 없고, 상황의 흐름도 약간씩 걸리는 부분이 있다. 그나마 조연중 비중도 크고 씬도 많았던 김민준은 배역의 스타일도 있겠지만 그의 억양이 전혀 없는 대사에 많은 어색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에 킬러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킬러의 세계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 그들의 생활을 알길이 없다. 그러면서 킬러 소재의 영화들은 자주 보이곤 하는데 사실 그 대부분이 별로 사실성은 없어보였다. 그것은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킬러는 약간은 엉뚱하고 코믹하게 그렸다는 것이 다른 킬러 영화들과의 차이점이라고 할까. 영화의 성격에 맞게 잘 설정한 컨셉이다.
개봉 이틀째 금요일 오후였음에도 300여석의 좌석중 약 3분의 1정도만 채워졌다는 건 좀 아쉽다. 영화 초반의 찐한 베드신과 피와 살인이 많아 19금 등급을 받아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어느새 영화 흥행에 상당히 중요하게 된 감독의 네임밸류도 영향이 있는 듯하다. 신하균 한명만 믿고 보기엔 그렇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신하균을 믿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보기를 권장한다. 영화 자체가 신하균을 위한 영화 이니까.
P.S 분명 킬라가 살던 집은 205호 였는데 다음에 나올땐 202호로 변했다. 이사가는 장면도 안나온 상태고 이사간다는 말도 없던 상태에서 어떻게 호수가 바뀌었을까. 혹시 잘린장면이 있는 걸까... 영화내내 계속 궁금했다. 아는 사람은 대답해 주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