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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평범한 삶의 나열 나인 라이브즈
kharismania 2006-08-24 오전 11:52:27 1313   [4]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작은 도시안을 벗어나 하나의 국가로 그리고 하나의 세계로 시야를 확대해보면 셀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목소리와 몸짓으로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나가고 있다는 것을 막연하게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 아홉명의 여성이 있다. 이들은 각자 자신의 삶을 살고 있고 그녀들의 삶은 타인의 기준에서 특별할 수도 있겠지만 이세상의 다양성의 시선으로 판단하자면 그많은 삶중에 하나에 불과하며 그냥 그런 삶으로 치부될만한 평범함에 불과하다. 우리는 각자의 삶안에서 특별하다. 타인의 특별함은 큰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각자 자신의 삶이 지루하고 비루해도 스스로에게는 커다란 의미가 되고 하나의 가치로 승격될만한 이유를 지닌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의 소중한 삶이니까.

 

 이영화는 아홉명의 여성이 보내는 삶의 일부분을 떼내어 스크린 위에 펼쳐놓는다. 어쩌면 그것은 그녀들의 생애를 대변할만한 가장 격정적인 순간일수도 있고 그냥 잊고 지나도 좋은 흔해빠진 시간들 중 하나 일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라는 존재 안에서 그 특별할지도 모를 시간들은 공통의 다양성이라는 부제안에서 교묘한 가치를 얻는다. 타인들의 잡동사니같은 삶의 수집을 통해 얻어지는 것은 각자의 삶이 모여서 세상이 완성된다는 것. 이 세상은 이렇게 자질구레한 갖가지 삶들이 모여서 완성되고 이루어진다.

 

 교도소에 수감되어 면회온 딸과의 만족스럽지 못한 재회에 절규하는 산드라(엘피디아 카릴로 역), 임신까지 한 몸으로 옛 애인과 우연히 재회한 다이아나(로빈 라이트 펜 역), 계부에 대한 연민과 증오로 고통받는 홀리(리사 게이 해밀턴 역), 남편과 친구의 새집에 초대받은 순간에도 격양된 감정으로 남편과 싸우게 되는 소니아(홀리 헌터 역), 명문대에 입학할 실력에도 장애가 있는 아버지로 인한 가정형편 탓에 진로를 고민해야 하는 사만다(아만다 사이프리드 역), 전남편의 아내 장례식에 참석해서 전남편의 고백을 받는 로나(에이미 브렌맨 역), 낯선 남자와의 외도를 즐기다가 불현듯 가정을 떠올리는 루스(시씨 스페이섹 역), 유방암으로 유방절제수술을 앞두고 히스테리를 부리는 카밀(캐시 베이커 역), 그리고 어린 딸 마리아(다코타 패닝 역)와 함께 찾아온 공동묘지에서 사연깊은 눈물을 흘리는 매기(글렌 클로즈 역)까지 아홉개의 짧은 사연은 각자의 삶을 짧지만 강렬하게 되짚고 각인시킨다.

 

 또한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직접적인 알고리즘은 없지만 간접적으로 각자의 사연이 얽혀지는 것은 인물간의 모종의 인연이 약하게 연결된다는 것이다. 낯선남자와 바람을 피우는 루스는 사만다의 어머니이고 루스는 그녀가 묵으려 했던 모텔 옆방에서 탈옥했다가 경찰에게 붙들리는 산드라를 목격하고 산드라가 수감된 LA교도소의 교도소장은 홀리의 계부이며 홀리는 카밀이 수술을 하게 되는 병원의 간호사이다. 또한 다이아나가 마트에서 우연히 마주친 과거의 애인은 소니아의 친구인 리사의 남편인 데이미안이며 리사는 로나가 찾아간 전 남편의 장례식에서 그녀에게 전남편의 아내가 자살했음을 귀뜸해준다. 하지만 이는 영화가 지니는 각자의 에피소드를 엮어주는 효과로써 의도된 것이라기 보다는 우리가 거닐고 있는 이 세계의 우연한 긴밀성에 대한 묘사에 가깝다. 그리고 이런 간접적인 소통으로 우리는 하나의 세계를 형성하며 살고 있다는 것. 비록 친밀하지 못해도 우리는 세계라는 하나의 공간안에서 각자의 삶을 영위함으로써 전체적인 흐름을 조성해나가고 있다는 대의적인 진리를 소박하면서도 미세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대사를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이 영화의 대사들은 상당히 문학적이고 아름다운 문체로 가득차 있다. 이는 감독의 바이오그래피를 살펴보자면 정답이 나올 법하다. 로드리고 가르시아는 '백년동안의 고독'으로 노벨 문학상을 거머쥔 콜롬비아의 대문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아들이다. 그런 아버지의 영향력 앞에서 그의 문학적 토양은 성장할만큼의 거름을 충분히 받았을 것이 당연하다. 이 영화가 아니더라도 그의 전작인 '그녀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들'에서도 그런 대사들은 충분히 음미가 가능하다. 

 

 또한 그의 영화에 출연하는 여성 배우들의 화려한 캐스팅 역시 눈여겨볼만한 대목인데 이는 감독이 만들어낸 시나리오의 힘이 배우들을 직접 촬영장으로 안내하게 하는 지표 역할을 한다는 것. 이영화의 기획 자체는 감독의 문학적인 역량 자체만으로도 절반은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이 글렌 글로즈, 캐시 베이커, 다코타 패닝, 홀리 헌터 등의 멋진 배우들을 직접 촬영장으로 인도하게 만든 기적의 원천이다.

 

 또한 그의 영화는 수많은 여성을 다루고 있음에도 페미니즘적이지 않다. 오히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상기시킬 법한 상황을 만들지만 그런 발상 자체를 묵인하게 만들 듯이 그의 영화는 다분히 일상적이고 소소하다. 물론 상황은 평범하지 않고 때론 격정적일지 몰라도 인물들의 태도는 의연하고 때론 놀랄 정도로 차분하다. 말 그대로 그의 영화는 여성이야기라기 보다는 여자들을 통해 바라보는 이 세상의 다양성이다. 그리고 그만큼 그의 영화는 튀지 않는 특별함의 가치를 얻으며 번뜩이는 영감보다는 깊이있는 성찰을 끌어내는 미덕을 지닌다.

 

 이 영화에서 또 한가지 주목할만한 것은 클라이막스로 치고 올라가는 순간에 느닷없이 찍혀버리는 마침표다. 각자의 에피소드는 약 12분여의 시간을 할애받았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은 단 한컷의 롱테이크로 제작되어 시간에 비해 긴 시간적 느낌을 얻는다. 하지만 무언가 매듭짓는 말이 필요할 법한 상황에서 영화는 다음 이야기는 말문을 닫고 다음 에피소드로 발을 옮겨버린다. 이는 관객에게는 황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어쩌면 이는 가장 평범하게 관객과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출이다. 그 후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산드라는 다음 면회를 위해 한달을 어떻게 기다렸을까, 혹은 그녀는 독방에 갇힌 채 어떤 생각을 했을까. 다이아나는 재회한 옛 애인을 다시 만났을까. 홀리는 과연 그녀가 꺼내 든 리볼버를 당겼을까. 당겼다면 누구에게. 소니아는 과연 남편과 잘 지내고 있을까. 사만다는 가족을 위해 자신이 소망하는 대학을 포기했을까. 전 남편의 재혼한 아내 장례식에서 그와의 섹스를 거부하지 못한 로나는 과연 다시 그를 받아들였을까. 외도를 피해 집을 향한 루스는 후회하지 않았을까. 수술 뒤 카밀의 삶은 어떘을까. 마리아를 두고 뒤돌아서는 매기는 어떤 삶의 회한을 품고 있을까.

 

 이 모든 물음표의 방점이 이 영화를 통해 보여지는 삶의 찰나를 통한 완성되지 못한 비확실성의 공간이다. 사실 삶에 확실한 것은 없다. 굳히 내일까지가 아니더라도 몇초뒤의 상황도 우리는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건 영화속의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각본에 짜여진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겠지만 영화 자체가 허구가 아닌 우리의 삶이라는 가정하에서는 다음 컷에서의 상황 역시 알 수 없는 삶의 일부로 스며든다. 우리 인생 역시 짧은 한 순간의 씬과 컷으로 이루어진 집합체이다. 하나의 인생은 희노애락의 칼날로 편집하면 수많은 조각으로 나눠지고 그 조각들이 엉겨붙어 하나의 삶은 완성된다. 우리가 보는 것은 그 일부다.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그 일부를 확인하고 더 나아가지 않고 말을 아끼는 9명의 다음 순간을 단절되듯 뗴어내는 것이다. 마치 그 순간에 모든 상황이 멈춰버린 듯이. 혹은 내가 그곳에서 시선을 돌려버린듯이.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교제하지만 그것보다도 많은 사람을 쉽게 지나치고 잊는다. 길고 값진 인연들도 있지만 짧고 부질없는 인연들은 수도 없이 많다. 우리는 그렇게 세상과 소통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스쳐보내듯 지나치며 살아간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긴밀한 인연들을 통해 상처와 행복을 공유하고 나누며 살아간다. 그리고 짧은 순간의 서로에 대한 필요성을 위해 만나게 되는 짧은 인연들은 그만큼의 필요만을 나눈채 서로의 삶에서 퇴장한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솔직한 단면이자 명백한 교류의 흔적이 아닐까. 무언가 특별한 인연만을 고집하기에 이 세상은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음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평범한 군상들의 모습이자 특별한 제스쳐가 아닐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너무나도 평범한 자신들의 집합체다. 그래서 세상은 그만큼 특별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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