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우리는 누군가에게 응징을 가하고 싶어지는 순간을 맞이한다. 오늘날 민주주의 헌법의 심판이 아닌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고대 함무라비 법전의 논리에 따라 물질적인 응징으로서 직접적인 울분의 해갈을 만끽하고픈 구타유발자들을 발견하곤 하는 것이다. 그럴 떄마다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지만 주먹을 날리기에는 자신의 물리적인 힘, 혹은 권위적인 힘이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울분을 삼켜야 하는 비운을 직감한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악을 응징하는 영화속 영웅캐릭터에게 환호를 보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대리만족의 감정. 그것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신창원을 일시적으로나마 영웅으로 미화시키고 조세영을 대도로 둔갑시킨 실제적 사례와도 맞물린다.
어쩄든 이 사회를 좀 먹는 악, 다시 말해서 이 영화에서 지칭하는 예의없는 것들에게 비수를 꽂는 킬러의 이야기는 이런 이유만으로도 관객에게 비뚤어진 대리만족의 욕구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줄 법하다.
상영관의 조명 대신 스크린이 밝아지며 영화의 포문을 여는 것은 난데없는 투우 장면이다. 그리고 이윽고 줌 아웃되는 투우장면은 TV의 브라운관의 좁은 영역을 거쳐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킬라(신하균 역)의 시선으로 전환된다. 투우를 동경하는 킬라. 화려함을 꿈꾸는 그림자. 그리고 그의 벽에 붙은 인체해부도. 좁은 방구석의 남루한 풍경. 마치 홍콩 느와르의 침침한 정서로 환기되는 공간의 노출과 정체가 모호한 인물의 제스처와 나레이션으로 이 영화는 출발한다.
어쩄든 킬라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본의아니게 킬러들의 세계에 입문하지만 죄없는 사람들을 돈떄문에 죽여야 한다는 사실에 갈등하고 자신의 룰을 정한다. 이 영화의 제목인 '예의없는 것들'에 관한 건수만을 처리하기로. 그리고 그는 세상이 불필요로 하는 사회악을 제거한다는 스스로의 명분에 입각하여 자신의 직업적 죄책감을 희석시킨다.
이 영화의 감정적 주류를 이루는 것은 무지한 이들의 진중함이다. 기형도 시인의 '입속의 검은 잎'을 멋대로 해석하는 킬라의 어리석음은 나름대로의 철학을 지닌다. 그리고 그 주변에 맴도는 인물들 역시 그런 코드의 동질성을 지닌다. 무지한 자의 짧은 주관에서 비롯되는 개별적 시선의 깊이는 개성적인 우주관을 펼쳐보인다. 그리고 이는 때론 해학적인 웃음을 주고 의미심장한 감성을 주입하기도 한다.
또한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가 제시하는 웃음의 코드인데 노골적으로 들이미는 웃음의 제안이 아닌 상황 속에서 유출되는 인물들의 대처방식에 대한 묘미에 있다. 또한 직접적으로 던져지는 대사에는 속세적인 천박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이는 일상을 관통하는 영화의 즐거움이자 고루함이 묻어나는 서민적인 냄새이다. 비속하지만 일상적인, 즉 우리가 거세하는 비속적 일상을 이영화는 고스란히 수면위로 띄운다.
그리고 중요한 건 영화의 타이밍. 사실 이 영화는 블랙코미디의 풍자성도 은연중에 눈에 띄고 결말은 느와르적인 비극성으로 발을 옮기기도 한다. 또한 19금의 적나라한 베드씬과 아련한 로맨스의 감정이 흐르기도 한다. 그리고 영화의 주가 되는 킬라의 활약은 액션물의 전형적인 모양새이다. 그리고 이렇게 장르의 시공간을 넘나드는 이 영화가 어중간한 형세를 띄지않는 것은 타이밍의 적절함에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킬라라는 캐릭터의 드라마 안에서 개연성을 부여받는다. 그가 내뱉는 나레이션은 그만의 독백이자 인물 대신 관객과 소통하는 방백이다. 결국 이 영화는 킬라라는 캐릭터로부터 발생되는 개인적 사담의 파장에 대한 파문의 고리를 물고 늘어지는 이야기라는 것. 그리고 그런 사담은 영화의 장르적 돌파구에 심각성을 부여할 이유를 적절히 배제하고 적당한 웃음과 눈물로 채워지는 간편함을 모색할 수 있게 만드는 건널목이 된다.
4인조 팀의 일원으로써 '킬러들의 수다'에 한 목소리를 보탰던 신하균은 킬라로 되돌아 왔다. 그는 혀가 짧다. 거의 장애수준에 가깝게 혀가 짧은 그는 오히려 비정상인의 길을 선택한다. 마치 묵언수행을 하는 스님처럼 입을 닫은 채 세상과 의사소통을 단절하고 살아간다. 대신 영화가 선택한 것은 그의 마음을 나레이션으로 직접적인 노출을 강행한다는 것이다. 마치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소설을 읽듯이 이 영화를 보는 관객은 킬라의 감정을 추측해내는 작업의 불편함 대신 나레이션을 통해 귀담아 듣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나레이션이 책임지지 못하는 생동감을 해결하는 것은 킬라의 제스쳐와 표정이다. 대사한마디 없이 감정표현을 적절하게 끌어내는 신하균의 연기가 상당히 눈여겨볼 만 하다. 다만 타 킬라들이 비중 부재로 인한 어필 부족의 인상은 조금 아쉽다. 물론 원톱 중심의 이야기에 따른 당연함일지라도 매력적인 캐릭터를 주변에 적당히 배치하여 좀 더 이야기에 가지를 칠 수도 있지 않았을까하는 물음표 하나쯤은 찍어도 무방하지 않을까.
또한 이영화에서 눈에 띄는 인물은 끈적거리는 마담 역을 맡은 홍일점 윤지혜이다. 나름대로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는 그녀는 자신의 오묘한 이미지를 극대화하며 섹시하면서도 우울한 감성을 지닌 캐릭터를 연기한다. 또한 극후반의 비극적 정서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열연을 보인다.
어쩄든 세상에는 여전히 예의없는 것들이 존재한다. 물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킬라같은 바른 킬러는 없다. 아니, 존재한다해도 우리가 알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를 보며 대리만족의 희열이나마 꿈꾸는 것 아닐까. 우리가 꿈꾸지 못하는 인생을 스크린으로 투영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이 영화는 대리만족용 영웅담은 아니다. 한 개인의 사적인 인생사가 펼쳐지는 인간극장에 가깝다. 그러나 그 개인사가 타인의 시선에 와전된 욕구해소에 쓰여진다해도 이의를 제기할수는 없다. 관객이 영화를 관람하는 순간의 감정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입장료를 지불한 관객의 권리이기 떄문이다. 어쩌면 그것이 이 영화의 의도인지도 모르겠지만.
-written by kharismani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