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에서 : 인간과 신들의 사이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아주 우연한 기회에 보게 된 영화다. 한 두줄의 글 이외에는 사전 정보도 없이 보게된 만큼 철저히 보기에 일관하게 되었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인만큼 그 자체로 보고 느낄 수 있는 영화다.
사이에서의 볼거리
인간과 신들의 사이에서 사는 사람들의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
-방송에서 볼 수 없는 것을 그리다.
대개 다큐멘터리나 르포, VJ 물의 경우 연출자의 의도에 따라 많이 좌우된다. 공중파 방송이라면 최근 사회에 이슈가 되고 있는 이야기들이나 신기한 소재를 다룬다.
무속인에 대해 다룰 때 역시 방송이라면 그들의 생활 하나하나를 샅샅이 뒤져 자신이 원하는 부분을 취한다고 본다. 그런 만큼 방송에 쓰일만한 자극적이고 눈이 갈만한 모습이 더 중심이 된다.
이 영화의 경우, 다큐멘터리인만큼 기본적으로 방송과는 다른 시선을 보인다. 방송이 보이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화면보다는 그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것이 미덕이라 할 수 있다.
방송하기에 너무 평범해서 그냥 지나칠지도 모르는 것들, 자신의 의도와는 안 어울릴지도 모르는 것들, 그들에게 객관적으로 다가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린다.
정해진 운명에 대한 그들의 선택과 인생
이 영화에는 몇몇의 인물이 나온다. 자시을 잃고 무속의 길로 들어선 무당인 해경, 무병으로 무당의 길을 들어서려는 28살의 인희, 30년간 무병으로 고생하다 자신의 업을 받아들인 명희, 8살인 어린 나이에 무병인 동빈,
이들 네 사람은 저마다 각기 다른 사연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업에 따라 각기 다른 선택을 한다. 여기에는 그들의 인생과 선택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그려진 만큼 철저히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보여지는데 중점을 둔다. 이것이 이 영화의 진정한 매력이라고 본다.
영화 속 해경은 이들과 모두 연관이 되어 그들에게 선택에 따른 기회를 보여하는 역할을 한다. 등장 인물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을 어떻게 해결하는가 하는 점 역시 눈여겨 볼만 하다.
사이에서의 아쉬움 소재 상의 거리감, 이질감
항상 힘들 때 사람들이 의지하는 곳중 한 곳이 바로 이 곳이 아닐까 한다. 그렇지만, 정작 사람들이 관심이 있어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그들의 있는 그대로의 삶은 너무나 딴 세상이기에 그 거리감 만큼은 다가가기에는 미묘한 거리와 시각이 존재한다고 본다.
사이에서를 보고
인간과 신 사이에서 사는 사람들, 그들 역시 사람이다.
사람은 어떤 면에서 주어진 업을 달고 태어난다. 이들은 그 업을 받지 아니하면 안될만큼 커다란 운명의 굴레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혹자는 그걸 벗어나는 방법으로 여러가지 이갸기를 하기도 하지만, 결국 그들에게 있어 이 업은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인가 보다.
이들은 그 갈림길에서
인간의 길이냐,
무속인의 길이냐의 선택을 한다. 그것이 어떤 시기에 오든 말든 그것은 중요치 않은 것이다. 자신에게 피할 수 없는 숙명 그 자체이니까.
하지만, 그들은 그 길에서 다시 선택을 한다.
자신의 인생은 바로 자신이기에 결정 역시 자기 자신이 한다. 변치 않는 건 그들 역시 사람이기 때문이다.
무속인의 모습에서 배우들을 떠올리다. 이들이 행하는 것들을 보면서, 한편으로 배우들이 영화 속의 연기를 하는 모습이 참 많이 닮아 보이는 것 같았다.
무속인이 신을 받아들여서 행하는 것이라면, 배우는 캐릭터의 모습을 받아들여 행하는 것인 만큼, 그래서인지 참 많이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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