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패왕별희를 본 것은 99년, 대학교 1학년 때였다. 워낙 영화를 좋아했었기에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을 한 작품이었던 패왕별희를 꼭 한번 보고 싶어 하는 맘이 있었고, 꽤나 큰 기대감으로 영화를 보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영화의 상영시간이 꽤나 길고, 격동하는 중국의 시대를 배경으로 만든 작품인지라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다. 당시엔 남자임에도 여성으로서 살아가야하는 장국영의 슬픈 현실에 동정심을 느끼며 영화를 보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문화대혁명을 비롯해 숱한 역사적 사건에 휘말리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면밀히 관찰하며 영화를 보았다.
특히나 문화대혁명 부분은 아마도 감독 첸 카이거가 가장 강조하고 싶어 하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극심한 혼란의 시대였던 문화대혁명을 직접 겪었던 감독(첸 카이거는 1952년생)으로서도 결코 유쾌한 기억이 아니었음은 충분히 알 수 있다. 지금도 중국 사람들은 문화대혁명의 영향으로 남의 일에 지극히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고 한다.
얼마 전 인터넷에선 중국에서 일어난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살인사건에 대한 기사가 올라와 있었다. 내용인즉 부모와 함께 버스를 타고 가던 한 여학생이 덩치 큰 버스 안내원과 사소한 시비가 붙었다. 이에 격분한 버스 안내원이 여학생의 목을 졸랐지만 나이 들어 쇠약한 부모는 그녀를 막을 힘이 없었고 버스 안에 타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은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그 소녀는 목숨을 읽었다고 한다. 영화에서도 보여지 듯 이 문화대혁명은 구 문물, 구 문화 타파라는 명목으로 수많은 죄 없는 사람들을 밀고하여 희생시킨다. 30년이 지났음에도 그 영향으로 아직도 중국인들은 남의 일에 결코 관여하지 않는 극심한 무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중국인은 아직도 그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화대혁명은 1966년 5월부터 1976년 10월까지 약 10년간 모택동과 4인방에 이해 이루어진 이념투쟁 및 권력쟁탈 운동이다. 대약진 운동의 실패로 권력일선에서 물러나있던 모택동이 소위 개혁파인 유소기, 등소평의 정책에 불만을 품고 이들을 제거하기 위해 일으킨 권력 투쟁적 성격이 짙은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이 운동은 홍위병이라 불리는 젊은이들이 주축이 되었고, 근 10년간 극심한 혼란과 정체현상을 불러일으킨다. 이 기간 동안 희생자만 공식적 집계로 3,500만 명이고, 간접적 추측으로는 9,000만 명에까지 이른다고 한다. 중일전쟁 당시보다 더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것이다. 외부의 침략에 의해서도 아니고, 내전에 의해서도 아닌 지도층의 선동에 의해서 일어난 운동으로 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는 것은 너무도 아이러니한 이해되지 않는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당시 모택동은 유소기, 등소평 등의 소위 개혁, 수정주의파를 뿌리 뽑기 위해 정치적 숙청을 단행하고 과거 수 천 년 동안 모든 착취계급이 남겨놓은 낡은 사상, 문화, 풍속을 일소한다는 명분하에 각종 유물, 유적 등의 문화재를 파괴한다. 이 시
대는 문화사적으로도 완전한 암흑기에 해당된다.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경극복장과 장신구들을 모두 불 태우고, 경극에 대한 뼈저린 자아비판을 하는 것도 이 이유 때문이다. 이 영화뿐만이 아니라 중국의 문화대혁명에 대해 다룬 모든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이 엄청난 문화재의 소실과 광기에 들려 사람들에게 자아비판을 강요하는 홍위병의 모습이다. 외부세계에서 보기에 너무도 어이없고 황당스러운 광거어린 행동이 중국내에서 버젓이 일어난 것을 보면 당시 일반 중국인들이 겪은 상처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특히나 영화에서도 그려졌듯이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수십 년 우정을 저버리고, 부모, 형제의 인륜마저 저버린 채 밀고하는 모습은 한 권력자의 잘못된 착오로 얼마나 많은 민중이 도탄에 빠질 수 있는지를 극명히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그 일의 시비를 올바로 판단할 수 있지만 집단적인 광기에 빠질 경우 사람의 이성이 얼마나 마비되고, 그로 인해 얼마나 잘못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는지를 문화대혁명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이 일어났을 당시 약 1,000명의 사상자가 났다고 한다. 그리고 그 사건은 약 한 달이 채 못 되는 기간 동안 일어났지만 그 지역 사람들의 가슴 속 상처는 아직도 여물지 않고 있다. 문화대혁명은 공식적 희생자만 3,500만 명이고, 무려 10년이란 기간 동안 진행되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그 상흔이 아물기까지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중국인은 우리와 다른 말을 쓰고 생활습관과 문화, 역사도 다른 민족이다. 그러나 잘못된 권력자로 인해 고통 받는 민중들의 모습을 우리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아니, 모든 나라의 민족이 다 같을 것이다. 문화대혁명이 이념적으로 수정주의에 반발하는 극좌파의 권력 투쟁이라니, 국제적으로 소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중국의 자국책 이었느니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국가의 가장 큰 기본이 국민인 것처럼 중국인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준 문화대혁명은 잘못된 운동이며 이러한 과오를 다신 되풀이 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국가의 지도자는 국민을 잘 먹고, 잘 살게 해야 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이고 큰 책무이다. 문화대혁명으로 경제난을 가중시키고 중국인에게 가장 중요한 먹을 것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한 채 권력투쟁에만 열을 올린 모택동은 이 부분에서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다.
패왕별희는 문화대혁명으로 고통 받는 중국인의 모습을 실감나게 그려냄으로서 내게 문화대혁명의 참혹한 모습과 고통 받는 중국인의 아픔과 상처를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또한 역사책 속 활자로 단순 나열된 사건들을 생동감 있게 그려내어 가슴에 진정으로 와 닿게 해주었다. 영화의 순 기능중 하나가 감상자로 하여금 교훈과 깨달음을 주는 것을 으뜸으로 친다면 패왕별희는 그중에서도 첫손가락으로 꼽힐 만큼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또한 단순한 깨달음을 이 글을 통해 정리하여 오랜 기억으로 남길 수 있게 된 것도 크나 큰 행운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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