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되었다. 그리고 극장가에는 어김없이 여름맞이 납량특선 호러물들이 스물스물 걸리고 있다. 올 여름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고소영의 스크린 컴백작이라는 완벽한 홍보효과를 등에 업은 아파트를 필두로 국내 영화계도 여름맞이에 분주해보인다. 그리고 지금 이야기하는 이 영화 역시 여름손님에 대한 접대준비를 해야할 것 같다.
이 영화는 얼핏 '장화, 홍련'의 실루엣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이는 영화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제목 그 자체로부터 연상되는 작용성만을 염두에 두었을 때의 이야기다. '아랑' 설화는 '장화, 홍련'의 모태가 되는 해원 설화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제목은 입담으로 전해오는 설화를 현대로 끌어온 영화라는 점에서 두 영화의 이미지 접근도를 인식하게 한다.
사실 공포영화, 그것도 호러라는 장르를 기반으로 하는 영화는 등골이 오싹한 으스스한 소름끼침 그 자체를 관객에게 전달하려 한다. 인간을 괴롭히는 귀신의 핏기없는 창백한 얼굴만으로도 관객은 묘종의 공포를 느끼는 것. 하지만 영화관에서 보는 호러영화가 전설의 고향 수준을 유지해도 된다는 안일함에 빠진다면 그건 관객에 대한 우롱이 된다.
이 영화는 일단 호러물의 색채를 음침하게 살려놓은 뒤 그 노골적인 방향을 범죄 스릴러로 선회시키는 듯 보인다. 그러나 다시 호러적인 뉘앙스를 노골적으로 풍기며 이 영화가 추구하는 공포의 코드가 지닌 모양새를 모호하게 만든다. 클리셰와 같은 귀신의 등장과 압박에서 관객은 순간순간 놀라게 되고 일단 정점을 밝히지 않은 채 결과물을 토해내는 이야기 속에서 모호함의 방점을 찍는다.
이 영화가 추구하는 것은 단순한 장르적 공포스러움일지도 모르지만 그보다 더욱 중점을 둔 것은 스토리텔링을 뒤집는 반전이다. 사실 이 영화의 반전이 다른 반전류 영화를 기죽일 정도의 대단함으로 칭송될 필요는 없겠으나 적어도 동류의 이야기를 다룬 평작들 가운데서는 나름대로 진부한 틀을 벗어난 독특함이라고 인식된다.
호러물의 이미지를 뒤집어 쓰고있으나 결과물은 스릴러에 가까운 면모를 지닌다는 것. 시나리오 자체가 지닌 단면적인 이야기 흐름은 그 자체로만 살펴보았을 때 괜찮은 물건이 된다. 문제는 그 물건을 가지고 진짜 괜찮은 물건을 만들어냈느냐는 것이다.
배우들의 연기에는 딴지를 걸고 싶지 않다. 문제는 배우들이 때리는 대사가 정제되지 못했음에 있다. 모든 대사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서 나오는 대사들은 그 상황의 감정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대사가 아니었다고 본다. 특히나 최후반부 소금창고 씬에서의 대사는 호흡이 장황하게 길고 긴장감이 약해서 영화의 마지막 클라이막스가 되어야 할 부분이 오히려 지루함을 주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남는다. 감정의 주입을 방해하는 느슨하고 상투적인 대사 남발은 영화를 늘어지게 만드는 요인이다.
또한 두개의 방점을 찍고 있는 이 영화의 중의적 장르포용이 하나의 귀결점으로 모색되지 못한 채 서로 겉도는 것. 특히 영화가 원천적으로 내미는 정공적인 공포가 진부하다는 것은 이영화가 취하는 장르 자체에 대한 위기감으로 느껴진다. 기존 영화에서 보여줄 것을 다 보여주었던 공포적인 코드, 즉 링의 사다코같은 귀신과 주온 등의 어린아이같은 모양새는 우려먹을대로 우려먹은 소재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 영화가 두뇌회전을 요구하는 범죄스릴러의 방점까지 차용한 것은 그런 빈약한 정공법을 보충하기 위한 수작일지도 모르지만 기본적인 모티브가 살아나지 못하는 판국에서의 대리만족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것은 무색한 일이 될 법하다.
그리고 영화가 말하려고 하는 이슈, 즉 성적인 약자로써의 여자의 비애감과 죽음으로 고조되는 모성애 등의 어필은 미진한 영화의 분위기 고조에 힘을 실어주지 못하고 오히려 영화의 집중력을 흩어놓는 결과를 초래한다.
기존의 공포물에 닳고 닳은 관객에게는 지루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포물에 익숙치 않은 이들에게는 나름대로 보여줄만한 꺼리가 되어줄 법도 하다.
산만함에 빛을 가려 제 이야기를 굵직하게 내놓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장르적인 혼용에 대한 시도는 눈여겨볼만하다. 전형적인 공포물에 더해진 두뇌회전적 추리의 가미는 영화의 우직한 일방성에 섬세함을 더했다. 다만 그 일방성에 추진력이 부족했음에 섬세함 역시나 빛을 잃는 것 같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했다. 이 영화는 그런 상투적인 고전입담을 스크린에 재현한다. 진부하지만 눈여겨볼만한 면모는 있다. 그것은 더 나은 결과물로의 가능성에 대한 아쉬움, 혹은 상투성의 답습 너머로 시도된 새로움으로 엇갈릴수 있다. 판단은 관객이 하는 것이니까. 확실한 건 공포영화가 무섭지 않으면 제맛을 내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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