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보고 즐거우면 된다. 모두가 찜찜하다고 이야기하는 <도그빌>도 내가 봐서 즐거우면 그건 ‘즐거운 영화’다. 우찌 이런 당연한 말을. 왜냐하면 난 이 영화를 잔뜩 편애할 생각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이유 모두 배우들(캬아아아~~), 그들 때문이다. 누군가 왠지 울적할 때 소주잔을 기울이고 싶다면, 나는 못 마시는 이슬이는 저리 밀어두고 류승범, 황정민이 나오는 영화들을 파노라마로 보겠다. 그러겠다.
스크린쿼터? 몸값 비싼 배우들이 평소에는 정말이지 연기 할 때 빼고는 볼 수 없었던 가련한 차림과 비장한 표정으로 광화문 한가운데서 시위하지 않아도 영화에서 연기 이 정도만 해 주면 우리 영화, 여름엔 찜질방, 겨울엔 시베리아 되는 지붕만 있는 극장 구석탱이에서라도 본다. 열 마디 말보다 행동이라는 말, 알아요?
그래서 우리 사랑스러운 배우들은 영화 내내 어찌나 내 가슴을 설레게 하고 스크래치를 내고 훌떡 훌떡 뒤집어 놓았는지 나는 영화의 이야기 구조가 아무리 엉성한 그물 같아도 그 그물에 내 마음, 잡혀 주련다. 싱싱한 내 마음 회쳐 드세요.
영화는 한 배우를 편애하지 않고 의리를 지킨다. 으음. 느와르는 카메라도 느와르 정서인거야? 두 대의 카메라가 배우를 하나씩 잡고 한 편의 표정도, 행동도, 말투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특히 좋아했던 부분은 유난히 얼굴을 크게 잡는 씬이 많았던 것이다. 그냥 아무 감정 없는 클로즈업이 아니라 미묘한 각도와 얼굴에 드리우는 음영, 표정 하나까지 그 자체로 숨을 쉬는, 그런데 그게 완벽히 계산된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리 되었다는 자연스러움. 영화가 예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건가 보다. 예쁜 소품, 예쁜 배우 하나 없어도 영화는 이뻤다. 이 영화가 전반부의 재기발랄함과 유쾌상쾌통쾌함을 끝까지 유지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으아 너무 안타깝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할 이름이 있을 것이라 예상된다. 추자연. 류승범과 황정민은 그래도 조금 멋있게 보이기나 하지 추자연이 연기한 마약중독자는 철저히 망가지는 역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철저히 망가졌다. 라디오에서 들었는데 그녀는 이 역을 오디션으로 따 냈단다. 몸에 벌레가 기어가는 금단상태의 연기를 하고 단번에 캐스팅 되었다고 한다. 그녀의 역할이 별로 크지는 않아서 많이 인상에 남지는 않았지만, 여배우는 망가졌고 허무한 얼굴에 흘러내리던 그림자는 참 예뻤다.
추자연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 영화의 장점이 또 하나 생각났다. 아마도 다른 영화였다면 분명 류승범과 추자연이 운명적 사랑에 빠져 허우적대다 결정적인 순간에 남자가 죽거나 여자가 죽으며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관객에게 느와르형사물을 본 건지 느와르연애물을 본 건지 헷갈리게 했을 것을, 이 영화는 두 사람의 관계를 굉장히 건조하게 그려낸다. 급하게 맺은 딱 한번의 관계와 “죽지만 말아라”라고 이를 악 물고 내뱉던 여자의 한마디로.
아픈 몸으로 땀 뻘뻘 흘리며 극장까지 장장 40분을 걸어가 영화 15분전에 티켓을 손에 쥐고 H열 20번 맨 오른쪽 구석에 앉아 영화를 보는데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꽉 들어찬 관객들 반응도 되게 좋았고, 덩달아 나도 기분이 막 좋아지고.
이 영화, 잘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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