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어울리지 않게 작명하자면 '만우절 대첩'과 같았던 2005년 4월 1일의 두 기대작의 격돌, 그 끝은 흐지부지하게도 공멸의 형태를 취하였으나 <달콤한 인생>의 황정민은 그 해 숱한 남우조연상에 빠짐없이 언급되었고 몇 차례 트로피를 가져가기도 했다. <주먹이 운다>의 류승범 역시 일취월장했다는 평가와 함께 차기작을 기대하게 만들었고, <야수와 미녀>를 통해 그 자신이 극을 이끌 수 있는 뚝심이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이러한 두 배우의 조합은 일찍이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시도된 바 있고, 당시에도 상당한 궁합을 과시한 바 있었다. 더군다나 태생적인 양아치 전문 배우라는 류승범과 누아르에 묘하게 어울림을 완벽하게 증명해 낸 황정민. 보기에도 <사생결단>은 분명 기대감을 증폭시킬 만한 무언가가 있는 영화였다.
사실 황정민이란 배우와 도진광이란 역할을 비교하면 우스꽝스러운 점이 몇 가지 있다. 이를테면 캐릭터의 색채는 <달콤한 인생>의 백사장과 유사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억센 경상도 사투리와 직업적인 면을 고려했을 때 <내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의 나형사와 교집합을 갖고 있으면서도 절대 일직선상에 놓을 수 없는 캐릭터이다. <천군>의 박정우는 어떠한가, 이 자의 고집스런 애국심과 도경장은 애초에 상관관계가 없고, 친형처럼 따르던 선배의 아내와 붙어먹는 도진광은 결코 <너는 내 운명>의 석중이나 <여자, 정혜>의 작가지망생을 떠올릴 수 없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방 선글라스로 얼굴의 반 이상을 가린 채 야비한 미소를 짙게 띄는 도진광의 모습은 결코 어떠한 부조화도 발견할 수 없을만큼 황정민이라는 배우에 의해 깊게 녹아 있다.
영화의 도입부를 타고 흐르는 경쾌한 선율은 엔딩 크레딧에 휘감기는 리쌍의 우수어린 읊조림과 묘한 대치를 이루나 공교롭게도 영화의 짙은 어둠에 완벽히 접속된다. 휘갈겨 쓴 타이틀과 그 경쾌함이 음울함의 단면을 드러내는 부산의 경치를 - 말 그대로 '쥑이는' 경치를 - 스스럼없이 훑어냄으로서 <사생결단>은 일단 <복수는 나의 것>, <달콤한 인생>, <야수>의 뒤를 잇는 한국형 네오-누아르의 계보에 이름을 올릴 만한 자격을 완벽하게 획득한다. 이러한 카메라웍은 영화에 몰입할 수록 빛을 발하는데 이를테면 부산의 야경을 총천연 컬러의 색조로 표현하는 것은 높이 살 만하다. 특히 칭찬할 만한 점은 자연스러운 줌 렌즈의 사용과 과격할 정도로 깊게 다가오는 클로즈업인데, <야수>가 이런 것들을 많이 놓치면서 촬영적인 결함을 드러낼 때 <사생결단>은 이를 가장 거북스럽지 않게 포괄함으로서 단순한 카메라 조작만으로도 감정을 극대화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인물과 배우에 대해서 한 번 더 훑어나가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인물은 단연 김희라가 연기한 상도의 삼촌 이택조라는 인물이다. 인물의 설정 자체로 이미 끔찍하게 하드보일드적인 이택조라는 인물은 특히 영화의 후반부에 가서 스토리라인의 열쇠를 쥔 핵심적 인물로 급부상하게 되는데, 뇌졸중을 앓은 노인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김희라는 대배우답게 비중이 급상승하는 이 인물을 완벽히 그만의 것으로 만들고 있다. <와일드 카드>에서 엄청난 코믹연기로 연극배우의 관록을 증명해 낸 이도경 역시 도진광의 필생의 적수 장철을 맡아 진한 카리스마를 온 몸으로 뿜어낸다. 염산을 맞은 뒤 사진으로만 등장하는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이얼의 존재감 역시 모른 채 지나칠 수 없게 만들며, 몸을 던지는 연기로 그만의 대표작을 마침내 발견해 낸 추자현의 연기 또한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다만 추자현의 경우는 지영의 캐릭터가 이야기 전개에 있어 신비감을 잃는 순간 스크린에는 모습을 보이지만 실질적 가치가 증발해 버리는 탓에 아쉽게 희생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인 사족을 덧붙이자면 상도의 따까리로 등장하는 온주완의 연기는 경험이 일천한 신예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녹록치 않으나 이 역시 스토리라인의 희생자가 아닐까 생각된다.
상도와 도경장이 룸싸롱에서 잔뜩 취한 채 뒤엉켜 멱살잡이하는 장면, 이 장면이 바로 <사생결단>의 메시지를 완벽하게 담아내고 있다. 너 죽고 나 살자! 이것이 두 인물의 공통된 목표점이며, 그 개인의 목표는 또 다르다. 도진광은 삶으로서 삶의 이유를 찾아내는 캐릭터다. 그는 상도에게 맞으며 그 자신의 삶의 이유가 장철을 잡아 이 끔찍한 굴레를 탈출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상도 역시 지금의 기회가 전국구로 딛고 올라가는 발판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들은 자신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상황을 철저하게 이용하려 드는 아이러니한 캐릭터다. 그러나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세상을 이용하려던 악질 중의 악질인 그들은 오히려 세상에 의해 죽음을 맞고, 파멸을 맞는다. 추악한 욕망이 내뿜는 에너지의 종착역은 다름 아닌 파국이다. 스토리라인이 잔가지를 치려다 도리어 가지치기 당한 채 굵은 선으로만 나가는 것이 영화의 찾기 힘든 맹점 중 하나이나, 속고 속이는 더러운 세상을 부산의 뒷골목에 투영시켜 완벽하게 그려낸, 모처럼만의 제대로 된 '센 영화'였다는 점에서 <사생결단>은 그 의미가 새로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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