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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일생은 없다. 노스 컨츄리
kharismania 2006-04-30 오후 4:14:36 1469   [4]

 여자라서 행복해요. 모 가전제품 CF에서 등장한 이 카피는 여자라는 성(性)적 브랜드의 가치를 고취시킨 듯한 문구였다. 하지만 어쩌면 여자는 그저 좋은 가정용품만 있으면 된다는 식의 가정주부로써의 이미지안에 스스로를 고립시켜버린 것은 아닌가하는 불쾌함도 느껴졌다.

 

 만약 아담과 이브가 에덴에 머물렀다면 그곳에서도 남녀차별로 인한 갈등이 있었을까? 살아있는 대다수의 생명체는 암과 수로 나뉜다. 물론 하등생명체 중 자웅동체의 일원성(性)을 지닌 생물도 있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 진화를 겪은 생물체는 암과 수의 성적 구분을 가진다.

 

 어쨌든 인간도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적 구분을 지닌다. 사실 남성과 여성이라는 구분에서의 우위는 현재 남성이 상위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물론 여성상위시대라는 시대적 소망하에서 여성의 신장이 권위되었으며 현재진행중이라지만 여전히 남성의 우위가 사회적으로 높은 점유률을 등에 업고 힘을 유지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영화를 보지 않았다해도 영화에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다면 이 영화의 뜬소문하나쯤은 접수했을 것이고 이 영화가 어떤 뉘앙스를 보여줄 것인지 정도는 대략 짐작했을 것이다. 물론 이 영화가 인권을 위한 투쟁을 보여주는 영화는 아니다. 어쨌든 적어도 이 영화를 찾는 관객들이 사회적 약자로써의 불평등에 적극적으로 투쟁하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쯤은 알고 보리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사실 이런 영화는 선동적인 강렬함을 지닐 공산이 크다. 불합리하고 억압적인 상황을 타파하는 궐기의 목소리를 스크린에 가득 채워 관객을 흥분시키고 분노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생각보다 조심스럽다.

 

 Inspired by the true story. 이 영화는 사실을 바탕으로 각색된 영화다. 클라라 빙햄과 로라 리디 갠슬러가 공동 저술한 '집단 소송: 성희롱법을 바꾼 로이스 젠슨과 랜드마크 사건(Class Action: The Story of Lois Jensen and the Landmark Case That Changed Sexual Harassment Law)'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사회적인 약자로써 불평등에 침묵하던 여성의 처우에 대해 한 여성이 토해낸 불의에 대한 항의적 목소리가 인정받게 된 첫 사례에 대한 실화를 극화한 것이다.

 

 이 영화는 한 여성을 묘사한다. 조시(샤를리즈 테론 역)는 솔직히 평범한 한 집안의 여성이 아니다. 남편 뒷바라지 하며 자식교육에 힘쓰는 평범한 현모양처만은 아닌 것이다.. 물론 그녀가 현모양처가 아닌것은 사회적인 활동에 염원을 둔 진취적 캐리어우먼을 꿈꾸었기 때문이 아니다. 단지 폭력을 일삼는 남편의 슬하를 벗어나 자신이 꿈꾸던 가정을 꾸리고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어머니이자 여자이기에 그녀는 자신의 소망을 이루게 해줄 사회적 밥줄을 찾을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여자로써는 힘들지만 고액의 봉급이 지급되는 여성광부의 여정을 택하게 된다.

 

 사실 광부란 직업을 여성과 결부시킨다는 생각 자체에 필자본인 역시 편견이 끼어드는 것은 인정한다.-필자가 남자라서일지 여성에 대한 우려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분칠한 여성의 정돈된 얼굴에 막 광산을 나온 광부들의 검댕가득한 새까만 얼굴을 대입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어쨌든 영화는 미네소타 북부의 탄광촌을 배경으로 소수의 여성 광부들이 다수의 남성 광부들에 의해 농락당하는 과정을 조명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여성들이 겪는 폭력적인 불평등에 대해서 표면적인 분노만을 끌어낸다면 그것은 조금 곤란하다. 이 영화의 모든 상황이 사회와 맞닿아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날의 여성들이 과거의 여성들에 비해서 좀 더 나은 사회적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오히려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남성에 비해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단지 이 영화가 여성들의 분노를 끌어내기 위해 제작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조시의 투쟁이 영화의 중심축에 자리잡지만 그 투쟁이 지니는 심리적 근원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녀가 그 투쟁을 성사시키기까지의 독단적인 고립감은 분명 남성들에 의한 비열한 숫자적 압박이었지만 여성들 스스로의 외면도 컸다는 것이다. 이는 단지 여성 대 남성의 대결에서만 취해지는 구도가 아니다. 약자와 강자라는 구도적 측면에서 관찰해야 될 문제에 가깝다는 것이다. 약자가 자기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일단 다수의 결의가 필요하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하나의 영웅이 아니라 다수의 대중이라고 했다. 영화에서도 언급되듯 약자는 뭉쳐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 흩어지면 강자에게 잡아먹히게 되니까. 이 영화는 다수의 약자가 뭉쳤을 때의 힘을 역설한다. 백짓장도 맞들어야 낫다고 했듯이 말이다.

 

 어쨌든 모든 상황은 조시라는 여성으로부터 출발한다. 정당한 변화를 요구하는 여성이 불만투성이 여자로 몰락하고 웃음거리가 되어버리는 과정은 비열하면서도 울분을 삭히게 한다. 사회적인 체제, 즉 남성적 권위로 짙게 물들어버린 사회에서 홍일점으로써 그 권위적 색채위에 한점을 찍어내려는 그녀는 사회적 이방인이며 체제적 불순자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녀의 의견은 묵살되고 그녀의 항의는 개선이 아닌 보복으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오히려 자신과 진배없는 여성 동료들로부터 지지 대신 불평을 듣고 외면당한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이다. 그녀는 홀로 남성들의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여성들의 외면을 돌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또한 그녀의 공적 투쟁이 부각되었다면 이 영화는 단순한 공격성을 지닌 영화로 머물렀겠지만 그녀가 시작부터 정의감에 사무쳐 일을 벌이는 선구자가 아니었음에서 이 영화는 사실감을 얻고 좀더 관객의 마음으로 접근한다. 어머니로써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가정을 위해 일을 해야만 하는 그녀의 개인적인 사연은 단순히 그녀를 선천적인 투쟁가 기질로 오해시키는 것이 아닌 사회적 체제안에서 눈뜨는 개인적 정의감을 인식시킨다.

 

 다만 영화의 귀결점이 좀 더 치열했음이 아닌 감상적이었음에 작은 아쉬움을 느낀다. 그녀로부터 출발한 작은 항쟁이 타인에 의해 마침표를 찍는 듯한 인상도 아쉽다. 그녀의 치열했던 작은 전쟁은 그녀의 아버지와 그녀를 변호하는 빌(우디 해럴슨 역)에 의해 감정적 동조를 얻는다. 결과적으로 여성의 사회적 위치 확보를 가능케한 건 여성 스스로의 힘보다는 또다른 남성의 조력이라는 뉘앙스는 자그마한 유감을 남긴다.

 

 여자와 남자는 서로의 차이로 인해 의지하게 되지만 그 차이로 인해 갈등의 골을 파기도 한다. 이 영화는 그런 갈등의 골을 노골적으로 묘사하며 그 깊은 골 한가운데서 사투를 벌이는 한 여성의 신념을 투박하면서도 감성적으로 끌어낸다. 남성과 여성에 대한 성역할은 21세기가 되어도 여전히 꼬릿표처럼 따라붙는다. 물론 생각이 많이 열리고 사고방식이 유들해진 오늘날이라지만 성(性)에 대한 고정관념은 시대성의 변화에 비해 풍화되는 속도가 더디다.

 

 인류역사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사회적인 우위를 점하게 된 것은 수렵이 아닌 사냥과 농경의 생활문화가 자리잡고 공존이 아닌 정복의 역사가 출범하면서부터였다. 말 그대로 발전을 위한 집단적 폭력이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남성의 신체적 우위가 사회적 강자로써의 위치와 연결된 것이다. 그리고 그이후로 오늘까지 그 위치는 비율적인 변화만이 있을 뿐 역전된 적없이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변화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는 가만히 앉아서 쥐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영화는 그런 변화의 시작을 꿈꾼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여성의 승리도 중요하지만 그런 승리를 이끌어가는 한 여성의 고군분투는 침묵하던 수많은 여성을 부끄럽게 만들며 스스로 포기하던 가치를 되새기게 만든다. 물론 시대가 많이 지나 유효기간이 상실된 옛 이야기처럼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 이야기가 지닌 본질적인 핵심은 관객의 뇌리에 각인될만하다.

 

 '몬스터'에 이어 예쁜 외모에 대한 미련이 없음을 다시 한번 보여준 샤를리즈 테론의 연기는 그다지 흠잡을 곳이 없었다. 또한 뉴질랜드의 여성감독 니키카로는 전작 '웨일 라이더'에서 외치던 여성의 목소리를 좀 더 현실감있게 높였다. 두 여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도 이 영화에 흥미를 지닐 수 있는 요건이 될 법하다.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의 운명론적 삶을 반박하고 싶은 이들이라면 이 영화에 주목할만하다.-'여자의 일생'의 자연주의적인 작품적 가치를 폄하하는 말이 아니라 내용 그자체를 언급한 것이다.- 변화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묵인과 인내는 사회를 유지시키는 듯 하지만 도태시키는 것과 진배없다. 때론 투쟁과 항변이라는 과격함이 고여가는 부조리를 정화시킬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이 영화로부터 입증되는 실례가 아닐까.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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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 컨츄리(2005, North Country / Class Action)
제작사 : Warner Bros. / 배급사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수입사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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