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나 일반 관객의 입장에서, "마냥 착한 영화"는 "마냥 나쁜 영화"보다 오히려 나쁜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인물들이 하나같이 나쁜 속셈을 갖고 나쁜 술수를 쓰고 있으면 "어라 이거 도발적인데"하고 확 빠져들다가도 반면에 인물들이 하나같이 착하고 순하기만 하면 "아 이거 너무 싱겁고 지루하다"면서 반기를 들 때가 많아졌다. <집으로...> 이후 착한 영화가 흥행에 유리할 수 있다는 나름의 공식이 생기면서 나온 많은 "착한 영화"들에게 싫증을 느낀 탓일까.
아니, 어쩌면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인간의 몹쓸 마음으로 생각해보면, 모두가 착하고 부드러운 사람들로 구성된 영화보다는 모두가 악랄하고 약은 사람들로 구성된 영화가 되려 현실적으로 보인다. 이건 인간이 원래 선하다는 "성선설"보다 원래 악하다는 "성악설"에 더 가까운 생각일 것이다. 세상에서 정말 금방 태어난 갓난아기마냥 티없이 맑고 착한 사람은 찾기가 대단히 힘들 것이라는 나름의 전제를 깔아놓고서 말이다. 이 영화 <마이캡틴, 김대출>은, 그래도 지조를 잃지 않는다. 아직 포기할 수 없는 아날로그식 감성으로서, "착한 영화"는 때론 무식하게 착해서라도 그 감성을 전달해야 한다면서 말이다.
도굴계(?)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도굴꾼 대출(정재영)은 수십년간 역시 도굴꾼이었던 아버지 때부터 찾아다녔던 경주의 큰 보물, 황금약사불을 오랜 노력끝에 드디어 찾아낸다. 그러나 그 순간 남자아이들보다 더 활동적인 왈패소녀 지민이(남지현)에게 발각되고, 대출은 일단 불상을 자기 손 안에 가져오지는 않고 임시로 숨겨두기로 한다. 얼마 뒤, 대출은 지민이를 따라 숨겨둔 약사불을 찾아가지만 이게 웬일, 고이 잠들어 있어야 할 약사불은 온데 간데 없다. 그때 마침 나타난 요상한 흡혈귀같이 생긴 소년 병오(김수호). 약사불을 또 다시 훔쳐간 유력한 용의자로 이 흡혈귀 소년 병오가 떠오른다. 병오는 동춘서커스단원인 어머니 애란(장서희)과 함께 특별한 집 없이 떠돌아디는 처지. 대출은 지민이와 병오를 데리고 약사불을 찾기 위해 온갖 아부와 특혜를 다 해다준다. 그러나 아이들은 좀체로 약사불의 행방을 얘기하지 않고, 거기다 오랫동안 대출의 뒤를 봐준 비리형사(이기영)까지 깡패들로 위협해가면서 약사불을 요구하자, 대출은 점점 더 마음이 조급해진다.
원래 사투리가 전체적으로 깔리는 영화는 배우들로 하여금 남다른 연기력을 요구하는 법이다. 연기력이 안되어 있는데 어떻게 맛깔나는 사투리 연기까지 구사할 수 있으랴? 그런 점에서 이 영화 속 배우들의 연기는 주조연 할 것 없이 대단히 맛깔스럽다. 김대출 역을 맡은 정재영은 이번 영화에서 전작 <나의 결혼원정기>와 비슷한 어투의 경주 사투리를 구사했는데, 그러면서도 분위기는 은근히 달랐다. <나의 결혼원정기>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총각의 둥글둥글한 모습이었다면, <마이캡틴, 김대출>에서는 도굴꾼이라는 범죄자 특성상 그런지 무뚝뚝하고 말도 툭툭 내뱉는 약간 모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사투리 특유의 구수하고 정겨운 이미지는 정재영의 베테랑급 사투리 구사력과 함께 맛스럽게 살아났고, 후반부에 가서 하나둘 보여지는 격렬한 감정연기는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연기파 배우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함께 나온 주연급 성인연기자인 애란 역의 장서희는 서울말을 써서 상대적으로 연기가 무난하게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하나 밖에 없는 자식을 둔 홀어머니로서의 애틋한 심정을 그동안의 내공이 부끄럽지 않게 잘 소화해 내었다.
정작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연기를 보여준 이들은 아역 배우들이다. 4차원적인 사고방식을 소유했으면서도 사실은 가슴 아픈 사연이 많은 소년 역할을 잘 해낸 병오 역의 김수호 군의 연기도 좋았지만, 참 기특한 연기를 보여줬다 싶었던 배우는 지민이 역의 남지현 양이었다. 또랑또랑한 목소리와 찰떡궁합으로 어우러진 사투리 연기가 어찌나 쫄깃하던지. 아역배우들 중에 사투리 연기를 이렇게 감칠맛 나게 한 배우도 참 드물지 않나 싶다. 때론 그 큰 목소리로 큰 울음을 터뜨리면서 동심의 마음에 상처가 나는 걸 애절하게 표현하다가도, 어느새 시도 때도 없이 "자수! 자수!"하면서 여느 어린 아이들처럼 공짜 좋아하는 기색을 유감없이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다가 또 자기가 가족처럼 아끼는 믹스견 "여보야"를 할아버지가 개소주집에 보낼라치면 신발 벗겨지는 것도 개의치 않고 바닥에 들어앉아서 "안된다~!!!"하며 하소연하기도 하는 등 결코 소극적일 수 없는, 대범한 연기를 영화 내내 보여주었다. 사실 이 영화가 은근히 좀 어두운 소재들이 있긴 한데, 그 와중에도 내내 활기찬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 배우의 공이 상당히 크지 않았나 싶다. 이외에도 지민이의 할아버지 역을 맡은 이도경의 연기 또한 비중은 크지 않았으나 나올 때마다 배꼽을 움켜쥐게 했다. "할아버지"하면 쉽게 떠오르는 조용하고 자상한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이, 집에 찾아온 대출을 선생님인 줄 알고 온갖 아양을 떠시고, 집안에서 애완견으로 기르는 "여보야"를 개소주로 해먹지 못해 안달인 코믹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 상당히 재미있었다.
아, 또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연기를 선보인 배우가 있었으니 바로 극중 지민이의 열혈 애완견인 "여보야"로 나온 믹스견이다. 사실 개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가 결코 아니니 유독 두드러지게 사람 마음을 움직인다거나 하는 튀는 연기를 보여주진 않지만, 언제나 지민이 옆에 붙어다니면서 선보이는 그 표정 연기가 예사가 아니었다. 아니나다를까, 그저 그런 분위기의 장면에서도 어느 순간 지민이 옆에 있는 여보야의 표정으로 눈을 옮겨보면 까닭없이 웃음이 큭큭 나오는 것이 아닌가. 전단지에 보니 건강원으로 실려가던 걸 가까스로 구해 촬영에 임한 견공이었다는데, 그래서 그런가 눈빛 하나하나에 왠지 고된 삶에서 우러나오는 현명한 분위기같은 것이 우러나오는 듯했다. 그냥 촐싹대는 개의 눈빛이 아니라.("웃기시네!"하는 분들 물론 계시겠지만 정말 이렇게 느꼈다.;;)
어느 평에서 본 대로, 이 영화에는 감동을 자아내려는 복고적 소재들이 참 많이 나온다. 이제는 화려하고 즐겁기 보다는 어딘가 쓸쓸하고 처량한 이미지를 불러일으키는 서커스단, 홀어머니와 그 아래에서 홀로 자라고 있는 외아들 등 지금 생각하면 약간 닭살도 돋을 만한 진부한 소재들이기는 하다. 영화 후반부 클라이맥스 부분에 가서 (스포일러가 될까봐 무슨 장면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갑자기 비극적인 분위기로 넘어가서는 비장한 음악과 분위기와 함께 최대한 오래, 최대한 무게를 잡으면서 억지로 감동을 자아내려는 면이 너무 강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부담으로까지 다가온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는 무시못할 뚜렷한 지조가 있다. 이 영화에서 "어른"과 "아이"는 참으로 대립되는 항들이다. 제작 초기에 나왔던 "도굴꾼이 순수한 아이들에게 감화된다"는 대강의 줄거리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아이들을 어른보다 정서적으로 오히려 더 높은 위치에 둔다. "아이는 어른의 어머니"라는 뻔한 격언도 있듯, 어른은 아이들에게서 배울 것이 많다는 어조를 유지한다. 그리고 실제 영화 속에서 그런 어조는 아이들의 행동과 어른들의 행동의 대립을 통해 꽤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영화 속에는 그렇게 본받을 만한 어른은 많이 나오지 않는다. 헌신적으로 아들을 보살피는 병오 엄마 애란 정도가 나쁘지 않은 어른의 모습이지, 사실 주인공인 김대출마저도 범법 행위를 저지르는 도굴꾼 아닌가. 이외에 형사라는 어른도 실은 도굴꾼 뒤를 봐주면서 깡패들 써가면서 자기 이득이나 챙기는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어른이고, 지민이 할아버지도 지민이가 그렇게 아끼는 여보야를 허구헌날 건강원에 팔아넘겨 개소주나 해먹을 생각만 한다. 이런 상황에서, 지민이와 병오는 단지 국보급 보물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어른들로부터 협박받고 쫓기니 억울할 만도 하다. 정작 바람직하지 못한 건 어른들인데, 오히려 바람직한 아이들이 범죄자마냥 쫓기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아이들은, 어쩌면 아이이기에 가능할 멋진 모습들을 보여준다. 여보야가 몇 차례 씩 건강원에 팔릴 위기 속에서 지민이는 특유의 여걸 기질을 살려서 그때그때마다 날렵하게 잘도 대처하고, 국보급 보물이 자기 손 안에 있어도 그걸로 거하게 돈이나 벌어볼까 하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몸이 허약해 놀기도 힘든 아이이든 말든, 수상한 낌새가 있는 불친절한 아저씨이든 말든 상관없이 아이들은 일단 친해지고 싶어하고 가까워지고 싶어한다. 뭐 요즘 세상이 하도 흉흉해서인지, 아무리 시골이라도 저렇게 순진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있겠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물론 보시는 분에 따라 있을 거고 나 역시 조금은 있었다. 그러나 그만큼 왠지 찾아보기 힘들 것 같은 아이들, 영화 속에서 그렇게 많은 갈등을 일으키는 황금약사불만큼이나 보물같은 아이들이었기에 한결 예뻐보이고, 사랑스러워보였다.
보물이라는 물건을 갖고(물론 국보급이니 가치야 말로 표현할 수 없겠지만) 영화 속 어른들은 참 아이들 보기 부끄러운 모습들을 많이 보여준다. 형사라는 분이 깡패 시켜다가 보물 내놓으라고 협박을 하질 않나, 보물이 절실한 대출은 순진한 아이들더러 "깜방", "자수"와 같은 다소 어두운 단어들을 가르쳐가면서 사실을 캐내려 하질 않나. 아이들 앞에 데려다 놓고 보여주는 모습들이 참 말이 아니다. 이런 어른들 앞에서, 아이들은 참 눈부실 정도로 순수한 모습을 보여준다. 어른들 더러 세상은 그런 식으로 사는 게 아니라는 듯이 몸소 실천해가면서 말이다. 금전적 욕망이나 비열한 술수같은 건 꿈꿀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이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오로지 따뜻한 관계이자 사랑, 우정이다. 그 비싼 보물도 아이들에겐 돈다발로 보이기보다 그저 친구가 된 아저씨와 더 많이 얘기하고 더 같이 있을 수 있는 수단일 뿐이고, 팔려간 애완견을 찾기 위해서라면 맨발로 천리만리든 뛰어갈 준비가 되어 있다. 그저 나와 상대방 간의 소통, 친해지고 가까워질 수 있다면 무엇도 바랄 게 없는 아이들의 이런 모습은 인간관계에 대한 이런 절실한 애정도 없이 물질부터 밝히는 어른들에게 지금 이 세상이 이런 어른들 때문에 험악한 게 아니냐며 웃으면서 꾸짖는 듯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도굴꾼이라는 범법자의 처지에 있긴 하지만 어쩌면 대출이 그나마 제일 아이들과 함께 웃을 가치가 있는 인물이 아닐까 싶다. 적어도 그가 보물을 탐낸 건, 돈때문만은 아니었으니까.
이렇게 이 영화는 다소 복고적이고 전형적이긴 하지만, 그 어떤 욕심도 없이 사람들과 애정을 나누는 것만을 원할 뿐인 순수한 아이들을 통해서 인간에게 있어서 서로 간의 소통, 애정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길 줄 아는 "아이같은 순수함"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다소 낡은 감성일 순 있어도, 하도 험악해서 누구 하나 믿을 수 없다는 게 진리인 양 되어버린 이 세상에서 절대 그 가치를 잃을 수는 없을 감성이다. 너무 대책없이 착하고 순진하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항상 냉정한 시각만 유지하면서 가감없이 바라보기엔 세상은 우리 생각보다 너무 험한 구석이 많다. 적어도 아직 데울 심장이 남아 있고 그 심장을 힘껏 데우고 싶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대한 이런 바보스러우만치 낙천적인 애정, 아날로그일지라도 그만큼 구수한 웃음이 남아 있는 감성을 아직은 놓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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