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3.16 드림 시네마 시사회
<주> 이 글에는 다량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내용을 알고 싶지 않으신 분들은 읽는 것을 자제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빨간 모자'가 할머니 댁을 찾아뵙는다. 그런데 할머니는 묶인 채 벽장속에 갇혀있고, 늑대는 할머니 가면을 쓰고 빨간모자를 맞이한다. 늑대가 빨간 모자를 위협하는 순간 나뭇꾼이 도끼를 들고 집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긴 비명...
여기까지는 '빨간 모자' 이야기를 한번이라도 접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이야기이다. 동화는 나뭇꾼이 빨간 모자를 구해주면서 마무리된다. 그런데 갑자기 경찰이 등장한다.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이 용의자로 취급되며 사건이 어떻게 된 것인지 수사가 시작된다. 갑자기 나타난 개구리 형사 '폴짝이'는 "용의자가 넷이면 이야기도 넷인 법이지."라고 말한다.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이다. 필자처럼 스릴러, 추리물을 즐기는 사람이면 이쯤에서 경탄이 시작된다.
어떠한 이야기에서도 전체가 아닌 부분만을 접하게 되면 그 해석에 오해가 따르기 마련이다. 게다가 여러 사람들이 엮인 사건의 경우는 오해나 우연이 겹쳐 실제와는 다른 조금 미묘한 상황을 만들기 마련이다. 처음 '빨간 모자'의 진술을 듣다보면 살짝 지루해지려고 한다. 어쩌면 이 애니메이션은 동화에 약간의 모험담을 섞은 이야기에 지나지 않은가 하는 의심도 든다.
막상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은 '늑대'의 진술부터이다. 이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 애니메이션이 살짝 숨겨놓은 메시지가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발견한다. 사실은 신문기자 이지만, 늑대라는 선입견과 상황과 우연이 겹치면서 악당으로 오해를 받는다. 요즈음 청소년들의 어투처럼 묻는 질문마다 툭툭 말을 뱉어내는, 그닥 호감이 가지 않는 스타일이긴 하지만, 그는 다만 직업의식이 뛰어난 기자일 뿐이다. (하지만 사실 끈질기고 사생활을 파헤쳐대는 언론과 파파라치들을 '늑대'나 '하이에나'에 비유하곤 하는 발언들이 생각나 조금 씁쓰름한 웃음이 나오긴 한다.)
거기에 나뭇꾼과 할머니의 이야기(정말 최고의 스토리이다.)가 더해진다. 처음에는 그냥 단순한 환상이나 우연으로 보였던 모든 상황들이 사실은 엄밀한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음이 밝혀진다. 이것은 스릴러와 지적 퍼즐을 즐기는 관객들에게 유쾌한 유머코드로 작용한다.
깜찍하게도, 이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각자 그 개성이 뚜렷하다. 주인공에 치중되어 묻히기 쉬운 조역들은 오히려 주연만큼이나 큰 존재감을 지닌다. 사실 이 애니의 주인공이 '빨간모자'뿐인지 확언을 못할 정도이다. 수다쟁이 찍사 다람쥐나, 귀여운 아기돼지 삼형제 경찰, 최고의 노래실력을 자랑하는 산양 아저씨까지 개성넘치는 조연들에 스쳐가는 단역조차 뚜렷한 존재감을 지닌다.
개인적으로 애니메이션의 더빙을 심히 꺼려함에도 이 애니의 더빙은 성공적이라 말하고 싶다. 캐릭터의 성격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개성있는 배우들을 캐스팅해서 한국적인 유머코드를 더했다. 배우들 뿐 아니라 성우들의 더빙도 적절해서 성공적인 더빙의 한 예로 제시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반면, 디즈니나 픽사의 애니메이션에 너무 익숙해져서인지, 음악적인 부분은 아쉬움이 좀 남는다. 이것은 더빙판이라 한국식으로 바꾸어서인지 자막판으로 확인하고싶어진다.
'인어공주'나 '미녀와 야수','니모를 찾아서' 등에서 볼 수 있었던 유쾌한 합창과 깜찍한 안무들이 떠올라, 약간은 썰렁한 듯 보이는 이 애니의 음악이 살짝 서운하긴 하다.
스토리가 진행되는 부분은 긴장감이 넘치고 쉴새없이 웃음이 터지지만, 음악이 시작되면 뭔가 살짝 부족한 느낌은 어쩔 수가 없다.
<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를 시작으로, 한때 동화 비틀기가 트랜드였었다. 처음에는 그 신선함에 사로잡혔으나 언제부터인가 그 비틀기조차 일정한 틀 속에서 반복되는 것에 염증을 느꼈던 필자. 오랬만에 동화 자체를 완전히 비틀어버린 이 애니메이션이 마음에 쏙 들어버렸다.
written by suyeun www.cyworld.com/nightflightc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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