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3.15 서울극장 시사회 2006.03.18 메가박스
<주>이 글은 다량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내용을 알고 싶지 않으신 분들은 읽는 것을 자제해 주실것을 부탁드립니다.
'기억하라, 기억하라. 11월 5일을..." '워쇼스키 형제'라는 유명인의 이름을 통해 떠올리는 이미지는 이 영화가 <매트릭스>와 같은 스타일리쉬한 액션영화이다. 그러나 사실 이 영화는 많은 리뷰들이 지적하듯 '정치 스릴러'에 가깝다. <매트릭스>에서 액션과 버라이어티한 요소들을 덜어내고, 상징과 은유와 사상을 더했다.
영화는 시작부터 "사람이 아닌 사상을 기억하라"고 말하지만, 끊임없이 쏟아내는 영화에 열중하다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다. 두번째 이 영화를 보면서 다시 그 말을 기억해내고, 처음 영화를 볼때 놓쳤던 수많은 것들을 다시 찾아낼 수 있었다. 'V'는 끝까지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가면뒤에 숨어있는다. '휴고 위빙'의 연기는 놀랍게도, 어느새 그 가면뒤에 화상에 일그러진 'V'가 있을 것이라는 최면에 빠지게 만든다. 그러나 그가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다만 화상때문만은 아니었음이다. 그는 "이 가면뒤의 나는 내가 아니다. 그것은 다만 뼈와 살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를 살해하려다 실패한 상대에게 "이 가면뒤에 있는 것은 다만 살과 뼈뿐만이 아니라 한 인간의 신념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최후에 그의 목소리에 모인 군중들은 모두 같은 가면을 쓰고 있으며 그들이 가면을 벗는 순간 평범한 수많은 인물들이, 희생되고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이 얼굴을 드러낸다. 'V'는 목소리를 낸 대중이다. 뭔가 잘못되었음에도 그냥 두고 방관한 대중이자,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대중이다. 중요한 것은 고뇌하는 것이다.
영화는 '생각하라, 생각하라'말한다. 대중이 바란것은 평화롭고 안전한 일상이었다. 그 소망은 그르지 않았으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모든것은 잘못되고 있었다. 문제는 절대적인 평화를 뛰어난 영웅에 안일한 기대이다. 그것은 뛰어난 어느 한 사람이 이루는 것이 아니다. 대중이 만드는 것이다. 중요한것은 끊임없이 고민하고 의심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세상이 아슬아슬한 외줄위의 평화를 지켜내기 위해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그것을 고민하고 생각하는 대중이다.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영웅의 이미지와 'V'는 많은 면에서 차이가 있다. 그의 목소리는 사실 개인적인 원한에서 촉발한다. 그 역시 개인적인 불행을 겪지 않았다면 그저 침묵했을지도 모른다. '이비'(나탈리 포트만)의 부모 역시 자식의 죽음이라는 개인적인 불행으로 반정부 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방식은 서로 달랐다. '이비'의 부모와 달리 'V'는 폭력적인 테러를 통한 목소리이다. 'V'가 자신과 동일한 가상경험을 하게 한 '이비'가 조금 다른 깨달음을 얻는다. 동일한 경험에도 우리는 자신의 시선에 따라 다른 깨닫음을 얻는다. 이 서로 다른 차이를 통해 영화는 폭력적인 테러를 통한 대중의 설득, 그 이상으로 나아간다.
'V'는 '이비'에게 자신의 사상을 전부 설득하지는 않는다. 그가 '이비'에게 요구하는 것은 두려움을 넘어서 자신의 신념을 직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를 통해 깨달음을 얻은 '이비'는 성장하지만 'V'의 사상에 동조하지는 않는다. (그의 폭력적인 방식에 반대하는 '이비'는 'V'를 떠나 홀로 살아간다.) 그리고 'V'는 바로 그날 11월 5일에 이비에게 레버를 당길 권한을 넘긴다. "내가 만들고 내가 속했던 세계는 오늘이 마지막이다. 이 다음은 너의 세계이다."라는 말과 함께. 'V'는 자신의 방식으로 목소리를 드러냈으나, 그것이 옳은 것만이 아니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후계자'라고 칭할법한 '이비'에게 다음을 자신의 방식으로 이끌어가기를 원한다. 이것은 일반적인 영웅의 후계자와는 조금 다른 형태이다.
그가 자신의 다음 대에 남기는 것은 '생각하라'는 메시지와 문화이다. <메트릭스>에서 종교적인 관념과 존재에 대한 관념에 대한 고찰이 드러났다면, <브이 포 벤데타>에서는 문화의 관념을 더한다. 과거 로마시대 폭군들이 대중의 눈을 가리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은 콜로세움의 죽음의 검투경기였다. 그 잔인하고 원색적인 볼거리는 대중의 생각하는 힘을 무뎌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영화속 세계에서는 미디어의 통제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통제적으로 제공되는 미디어와 원색적인 오락프로그램들은 대중들의 사고를 마비시킨다. 불안에 대한 원인을 소수자와 이방인, 타 종교에 돌리며 음악,영화,서적등의 모든 문화를 통제한다. (이것은 중국의 '문화혁명' 당시 사라졌던 모든 예술작품들을 떠올리게 한다.)
일반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르다고 인지되는 사상들은 존재한다. 여전히 인종차별을 선동하는 KKK단이나, 히틀러의 사상, 공산주의 등등, 다수가 배척하는 사상은 불쾌하다. 그러나 그러한 사상 또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다양성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다양성과 그에 관한 자유로운 비판은 사회를 발전하고 성장하게 하는 힘이다. 우리가 이러한 부적절한 요소들을 모두 제거한다면, 세상이 평화로워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반면에 긍정적이나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소수 의견 또한 배제될 수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건강한 사회란, 모든 부정적인 사상들을 제거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그 부정적인 사상 속에서 긍정적인 요소를 얻기도 하고, 비판하며 개선해나가며 이루어지는 것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는 선택하는 것은 성장의 중요한 과정이다. 진정 사회를 성장하게 하는 것은 다양한 사상속에서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의지'일 것이다.
'이비'를 깨닫음으로 이끈 '발레리'(나타샤 위트만)의 편지는 감동적이다. 대중을 무력하게 만드는 '공포'에 맞서 "이제 내가 죽어도 내 신념은 남을거에요."는 그녀의 한마디는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다. 점점 편협해져 가는 지금의 현실에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영화속 세상이 미래를 배경으로 한 가상적인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세상과 자꾸 오버랩 되는 느낌은 무엇일까.
점점 강렬한 이미지와 쾌감에 의존한 미디어가 발전하고 대중은 생각해야 하는 피곤한 메시지에 냉정해진다. 편안하고 가벼운 문화 또한 중요하다. 하지만 그러한 나른함과 편리한 해답에만 익숙해져서 비판과 고뇌는 사라져간다. 이제 영화를 보며 가치관을 만들고, 책을 읽으며 사상을 토론하는 모습들은 사라져간다. 게임의 가상 현실과 행복한 영화들, 달콤한 거짓은 고통스러운 진실을 외면하게 한다. 엉망진창인 정치를 욕하고 정치인들을 비난할 지언정, 바꾸려는 노력은 피곤하다. 정부가 국가의 안위를 언급하고 평화가 위태로움을, '공포'를 들고 일어서면 침묵한다.
'V'는 묻는다. "달콤한 진실과 고통스러운 거짓, 어느쪽을 원해?"
불친절하게도 영화는 끝까지 답을 주지 않는다. 'V'는 자신의 방식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고 '이비'에게 이 다음을 맡긴다. 그리고 '이비'가 어떤 세상을 만들어갈지는, 광장에 모인 대중이 어떤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하는지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말한다. 나를 기억하지 말라. 신념을 기억하라.
생각하라, 생각하라. 영화는 말한다.
written by suyeun www.cyworld.com/nightflightc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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