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담비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네. 그러나, 나의 살갗을 에는 바람의 속삭임엔 여전히 동장군의 미련이
담겨져 있구려. 아침 바람을 벗삼아 영화를 보고 왔네. 자네에게 언젠가 이야기했던
<브로크백 마운틴>이란 작품일세. 이 작품을 보고 난 한동안 자리를 뜰 수 없었네. 이
영화를 처음 받아들이는 아니 더 솔직히 말해 이 영화를 둘러싼 외형적 표피의 잔상들이
우리의 '편견'과 만날 때 빚어지는 갈등과 번잡한 이야기들에 자칫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진실'들이 사라질까 두려워 했었지. 그러나, 이런 나의 마음은 단순한 기우일 뿐이었다네.
아무리 세찬 폭풍이 휘몰아쳐도 우리는 여전히 숨을 쉬며, 희망을 향해 노를 젓듯이 이
영화는 '역경'과 '고난'이 다가오더라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햇빛'을
이야기하는 이 영화의 미덕은 그 '고요한 속삭임'과 만나 나를 저 아련한 노스탤지어의
형상이 드리워진 '목가'의 동산으로 인도하더군.
'현대'란 사회적 시제에 살고 있는 나에게 강요되는 언어는 '규정'과 '확정'이지. 우린 하나
의 대상에 '생각한다'는 멋진 말로 관계를 형성하며 세상의 아름다움에 동조하고 있다
말하지만, 그러한 '규정'과 '확정'은 어느덧 '포비아'의 장막에 갇혀 '나' 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 사유해버리려는 '안경'만을 고르기에 바빴어.
과연 그게 진정한 '생각'의 가치라고 할 수 있을까. 난 한 때 회의적인 생각에 잠겨 있었지.
잭과 에니스의 사랑을 통해 내가 느낀건 우리가 선망했던 강렬한 사랑이란 것은 엄연히
'붉은' 열정이 동반하는 '육체'의 집착과 '외형'의 밀착이 아닌 멀리 떨어져 있음으로 인해
형성되는 '푸른' 간극의 '정적'이라는 것을.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이야기들은 늘 인간의 가장자리를 맴돌지만 인간의 운명을 감싸는
자연의 섭리 가운데 사랑은 우리에게 '신화'가 되어 더 열망하게 되는 것 같아.
영화를 보며 에니스와 잭의 어깨를 다독여주고 싶은 감정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 가운데
우리는 이 '불가해'한 매력을 여전히 동경하며 살 수 밖에 없는 운명에 놓여져 있다는
사실로 말미암은 것이네.
결국 이 영화를 통해 난 고독이란 것이 마냥 극복해야 하는 가치가 아닌 기꺼이 받아들여
희망을 연대할 수 있다는 걸 느꼈네. '고독'을 통해 세상은 '나'를 떠나는 자와 남아있는
자의 '존재'로 만들지만, 남아있는 자였던 에니스의 눈물로 맺어진 맹세의 침묵은
고독을 진정으로 체화한 자만이 표출할 수 있는 순간이었어.
우린 더욱 고독해질 필요가 있네. 고독의 정수는 나를 외로움의 '감옥'에 가두어 절망과
불행의 늪에 빠지게 하는 것이 아닌 걸 자네도 알지. 그래, 고독을 통해 우린 웃음을 이야기
할 수 있을 걸세. 우린 인생의 긍정성도 맛있는 담소로 채울 수 있을 거야.
이 영화엔 에로스, 아가페, 필리아..우리가 '신화'를 통해 꿈꾸어오던 사랑의 열병들이
다 담겨져 있네. 단지 밥이 안 넘어가고, 멍한 상태로 하루를 억지로 보내는 잔병이 아닌
'그대'라는 이름을 머리속에 떠올리며 세상의 멜로디와 리듬에 용해시킬 수 있는 상사병의
온기는 이 영화의 정서처럼 요란함과 소란스러움을 경계하는 '정적'의 언어로 다가오고
있었어.
'고독'을 감싸며 격정과 서정의 복원을 추구한 이 영화의 본심은 우리의 입을 더욱 무겁게
만드네. 그리고 과잉된 표현, '사랑해'란 한 마디의 남발로 빚어지는 빈 껍데기의 이미지만
붙잡은 '사랑'이라고 착각한 '사랑'이 아닌 서로의 눈빛으로도 그 사람의 일주일 전 염려를
인식하고 넌지시 걱정해줄 수 있는 '사랑'다운 '사랑'으로 한 발자국 전진할 수 있었지.
남아있는 자들이 간직하는 기억에 대한 시선은 한 편으론 어둡고 한 편으론 밝을 수 있어.
그렇지만, 에니스는 그 누구보다 '기억'이란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다리고 또 다릴걸세.
'상실'은 결국 새로운 '충족'을 위한 자연의 초대야. 에니스의 '기억'에 가득히 담긴
사랑의 체취는 인간만이 추구할 수 있는 소중한 흔적이라네.
어쩌면 우리가 이렇게 꿈꿀 수 있고 여전히 바라는 '로맨스'의 존재가 나의 눈을 간지럽히
는 것은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을 오십년 전에 이백년 전에 '사랑'과 '이별'의 씨앗으로
가꾸었던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이 재현된 것인지도 몰라..
우린 이제 격정이 주는 강렬함과 서정이 주는 '사유'의 따사로움을 향해 회귀해야 만
하네.
잭과 에니스의 공유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브로크백 마운틴'처럼..
이 세상 그 어딘가에 남겨진 나의 인연과 나를 생각해주는 '타인'과의 공존을 위해..
오늘도 자네와 나에게 주어진 삶의 운명을 담담하게 받아들여 보세..그리고 조금씩
개척해보자구..
날씨가 아직 춥네..자네에게 이 편지가 추운 마음을 녹일 수 있는 조그만 난로가 되길
바라네..
from. 자네의 친구 크루즈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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