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가끔 옷장에 들어가곤 했었다. 왠지 기분이 이상할 때 어릴 적의 내가 스스로를 달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 그것이었다. 슬픈 것도 화난 것도 기쁜 것도 아닌 그 이상야릇한 기분을 끌어안고 조그만 나는 엄마와 아빠의 겨울코트며 양복 등이 주루룩 걸린 시커먼 장롱 속에 들어가 무릎을 모으고 앉아 두 팔 위에 얼굴을 얹어 두고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은은한 좀약냄새가 나를 조금 졸리게 했고 귀를 틀어막고 있는 것처럼 귀가 멍했다. 나는 겁이 많은 편이었는데 그 컴컴한 옷장 속에서는 한번도 무섭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랬는데, 언제부터 옷장 속에 들어가지 않게 된 걸까. 언제부터 나는 옷장이 아닌 바깥으로 더 바깥으로 나를 밀어내며 한껏 나를 드러내고 살았을까.
만약 지금 내가 옷장 속에 들어갔다가 눈 덮인 나니아를 발견한다 해도 나는 아무것도 못 본 것처럼 조용히 몸을 돌려 급한 걸음으로 옷장 속을 빠져나오지 않을까. 새로운 세계에 맞닥뜨려야 한다는 공포심을 동반한 스트레스로 말이다. 판타지는 원하는 사람에게만 펼쳐지는 세계인 것이다. 아이들이 그곳에서 영웅이 되는 동안 성인이 된 나는 유년기의 기억을 상실한 채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가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나는 안타까워하거나 절망하지는 않는다. 지금의 나는 그냥 지금의 나로서 행복하기 때문에. 애써 판타지를 그리워하지 않아도 지금의 나는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감동이므로. 이 영화는 <반지의 제왕>같이 성인을 위한 판타지영화가 아니다. 논리적 비약이 심한 아이들을 위한 판타지영화다. <반지의 제왕>같은 스케일을 원한다면 기대를 반쯤 접고 봐야 할 것이다. 그래도 오랜만에 마음 편하게 영화를 봤다. 온갖 음모와 반전이 설치는 영화들 사이에서 확실한 권선징악과 해피엔딩을 보장 받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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