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면서 멍하니, 아, 사랑은 대단한 거구나, 하고 생각했다. 요즘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던 참이다(꼭 연인들만의 사랑뿐만 아니라 가족애라든지 우정 뭐 그런 것들 까지). 그 생각 끝에는 항상 말하고 싶어 마음이 저리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 맘에 네 방이 얼마나 따뜻한지. 꿈에서라도 만나면 얼마나 반가운지, 네 존재만으로 매일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마띨드는 그 감정을 조용히 실행해 옮긴 강한 여자다. 이 영화의 여자들은 모두 강하다. 모두들 자신의 사랑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애정을 가지고 있다.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다. 보면서, 어 저거구나, 스스로를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랬다.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면 누구에게 들킬세라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 감추고 혼자 괴로워했다. 부끄러워서 얼굴이 빨개지고 말도 더듬고 화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사랑하는 여자들의 얼굴은 참 믿음직스럽다. 그래서 머릿속에 깊이 새겨둔다. 나도 이제는 부끄러워하지 않으리라고.
또한 이 영화는 전쟁영화다. 이 영화를 보면서 중간 중간 눈물을 흘렸는데 그 부분들이 모두 전쟁 때문에 일어나는 비극적인 상황 때문이었다. 나는 유독 전쟁에 약하다.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 자꾸만 상상하게 되고 내가 그 전쟁통 한가운데 떨어진 것처럼 숨이 탁탁 막혀 온다. 그래서 전쟁영화를 잘 보지 않는다. 너무 괴롭고 슬퍼져서 몸도 정신도 황폐해지기 때문이다. 가끔 평화롭고 일상적인 날, 하늘에 갑자기 전투기들이 깔리고 바로 옆에 미사일이 떨어지는 꿈을 꾸기도 한다. 전쟁에서 살아 돌아오는 군인은 이미 그것 하나만으로도 다시 태어난 것이라고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얼마나 생각했는지. 이 영화의 전쟁묘사가 여타 다른 전쟁영화들처럼 끔찍한 건 아니지만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전쟁의 슬픔을 되새기게 한다.
게다가 이 영화는 추리영화다. 마띨드는 마네끄를 찾기 위해 추리에 추리를 거듭한다. 5명의 병사들이 남긴 유품을 근거로 하여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추적해간다. 개인적으로 멋있었던 장면은 카페에서 등 뒤에 앉았던 여자가 그녀에게만 보내는 암호로 카페 칠판에 적혀있던 글자들을 지우고 앞에 3개의 M자만 남겨 놓는 장면(세 개의 M은 마띨드와 마네끄의 암호다). 처음엔 인물들 이름이 헷갈려서 따라가기 벅찼는데 후반부 들어가서는 얼추 이해가 되었다(아 요즘은 뭐가 뭔지 모르겠는 영화가 너무 많아...).
이 영화의 화면색은 줄곧 약간 붉은 갈색톤과 전쟁터의 어두운 초록색으로 일관된다. 그 색이 처음엔 불편했는데 보다보니 굉장히 친숙하게 느껴진다. 투톤의 영화. 그래. 이 영화는 전쟁영화이면서 멜로영화다.
사족...영화를 보고 있은 지 30분쯤 됐는데 옆에 앉은 여자가 자기 친구한테 "너 이런 영화인 줄 알았냐?" 하고 묻더라.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이런 영화'란 어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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