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1.06 씨티극장
<주>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다량 포함되어있습니다. 영화의 스토리를 알고 싶지 않으신 분들은 제발 읽는 것을 자제해 줄것을 부탁드립니다.
요새 킹콩 난리들이다.
이만큼 좋은 평을 얻기도 쉽지 않은 것 같다. 왜일까?
사실 난 재미있게 영화를 보긴 했지만, "이후로 더 이상의 영화는 없다."라든지 "영화의 완성"같은 느낌은 들지 않는다.
왜일까?
다른 영화의 경우는, 일단 보고나면 바로 리뷰를 쓸 수 있었던 것에 비해.. 킹콩은 이제서야 간신히 맘을 먹었다.
이틀 정도를 한참을 생각했다.
정말 궁금하다. 왜 이 영화에 열광하는 것일까?
사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보통의 재미있는 블록버스터'이다.
실감나는 공룡을 보자면 <쥬라기 공원>에서 다 써먹었고, 훌륭한 CG나 특수효과를 말하자면 피터잭슨의 전작에서도 이미 보여졌던 것들이다.
영화의 줄거리도 지극히 단순하다. 게다가 어린시절 <킹콩>을 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어지간하면 어디선가 들어서라도 알고 있는 스토리이다.
그런데 왜?
며칠간 고민한 끝에 내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어느 섬에 혼자 은둔하던 근육질 오빠가 있었다..ㅡ.ㅡ;
살짜쿵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나름 매일 공룡이나 거대 박쥐들과 액션을 즐기면서 야채생식으로 정신수양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 오빠에겐 약간 여성적인 취미가 있었으니 그것은 인형놀이... 이 섬에 사는 원주민들은 이 오빠의 이 취미에 인형을 제공하는 것으로 좀 봐달라고 빌어가며 살아간다.
어느날, 이 원주민들이 참 이쁜 인형을 보냈다.
그동안 시커멓고 똑같은 인형들만 보다가 하얗고 노란 머리카락 인형이 특이하고 신기하다.
그래서... 늘 하던 스타일대로 거칠게 좀 놀아볼라고 그랬더니, 이게 반항도 하고 은근히 재롱도 떤다. 그래서 좀 이뻐라 해 줬더니 이게 나한테 신경질을 낸다.
성질같으면 확 부숴버리겠는데 요런 특이한게 아까워서 부수지도 못하고, 결국 와이프랑 싸우다 집안살림 부수는 남편처럼 애꿎은 주변에 주먹질 해대다가 머리 좀 식히려고 바람쐬러 나갔다.
근데 이게 그새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다가, 어디서 소리를 질러댄다.
그냥 내버려둘까 하다가 맘 약한 오빠가 도와주러 간다.
살짝 몸풀면 될 줄 알았더니, 이 넘의 공룡들이 기를 쓰고 덤빈다.
감히 내꺼에 손을 대다니.. 주둥이를 찢어버렸다.
신경질 내던게 갑자기 애교를 부린다. 이쁜척을 한다.
처음 경치보러 데려갈때는 겁먹지 않을까 했더니, 이게 고소공포증은 없는지 이쁘다고 좋아라한다.
머.. 좀 화나긴 했었지만, 그냥 봐주기로 한다.
나한테 기대서 잠든게 이쁘기도 하다.
그냥 얘랑 계속 이러고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큰맘먹고 인형에서 마누라로 승격시키기로 했다.
근데 이게 뒤통수를 쳤다. 힘들때 도와주고 절 지켜준 날 두고, 딴놈하고 도망을 친다. 눈이 뒤집혀서 쫒아갔는데... 그만 당했다.
젠장.. 방심하는게 아니었는데....
이상한데 묶여서 인형들이 사는 동네로 왔다. 이것들이 감히 날 구경하고 난리들이다.
근데 내 마누라가 안보인다. 일단 찾아야겠다.
미친듯이 찾아 헤메는데... 마누라가 지 발로 찾아왔다.
화가 나서 미칠 뻔 했는데... 이걸 가만히 안두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얼굴을 보니 화가 풀린다.
너무 보고 싶었다. 사랑이 죄다...
오랫만에 만난 마누라랑 시간 좀 보내려고 했더니, 인형들이 멀 쏴대고 난리들이다. 그것들도 피할겸, 추억도 되살릴겸 경치 보려고 스카이라운지로 갔다. 그런데... 이것들이 생각보다 쎄다.
결국 마누라만 남겨두고 말았다.
그래도 아직도 걱정이다. 나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할텐데...
영화에대해서 곱씹다가 생각난 것은,
이것은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하지만 곁에서 지켜본 적이 있는 어떤 이야기를 닮았다는 것이다.
남동생의 첫사랑~!
그 녀석이 첫사랑에 빠지기 전까지, 그녀석은 나름 행복했다.
뭐 별로 세련되지도 못하고, 레슬링 비디오나 빌려다보고, 친구들하고 축구하면서 놀아도 그것만으로도 행복하게 잘 살았다.
이성에 조금씩 눈을 뜨면서 관심을 가지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영화나 TV속에 나오던 연예인들이었고, 별로 그녀석이랑 상관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주위에 여자애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별로 눈에 들어오거나 관심을 가져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그 녀석이 참 이쁜 여자애를 알게됐다.
처음에는 그냥 호기심이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무지 신경쓰이기 시작한다.
다른 여자 애들하고 뭔가 다르다. 뭔가 세련되고 '여자' 냄새도 난다. 그애하고 비교하니, 다른 여자 애들은 다 유치해보인다.
그 아이 괴롭히는 녀석들한테 화가나서 두들겨 패준다. 그 아이가 가끔 내게 쌀쌀맞거나 짜증을 부리면 어쩔 줄 모르겠다.
근데 문제는 그래도 이제는 그 애가 좋은 것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동생 녀석이 그 아이랑 잘 되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 나이의 여자아이들이 으례 그러하듯이, 자기보다 나이 많은 오빠들에게 매료되었다.
그냥 그렇게 첫사랑을 경험한 녀석은, 지금은 26살 먹은 보통 20대가 되어서 살아간다.
이제 그녀석이 사랑을 해도, 그때와는 조금 다를 것이다.
그때처럼 마음을 다 드러내지도 않을 것이고, 나름 밀고 당기기도 하고 무작정 잘해주기만 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 영화는 어쩌면, 첫사랑에 대한 추억 영화가 아닐까?
흔히 남자들이 술 한잔하면 어렵게 듣게 되는 첫사랑 이야기와 무척 닮았다. 그네들은 참 순진하게 맘을 다 내보이고, 곧이곧대로 사랑했었다. 그런데 그네들을 사랑하는 줄 알았던 누나들은 나이 많은 애인을 만나고, 여자아이들은 그들이 '세련되지 못하다.','여자를 모른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대부분의 멜로 영화가 여자들의 언어로 쓰여진 사랑 이야기라면 이 영화는 남자들의 이야기로 쓰여진 사랑 이야기 일 것이다.
이렇게 영화를 이해하고서 다시 생각해보면,
영화 감독 '칼 던햄'(잭 블랙: Jack Black)은 세상에 물들어 완전히 소년성을 읽어버린 어른을 상징한다.
어느 순간 순수함을 잃어버린 그는, 다만 그의 목표와 야망에 집착한다. '소년성'의 세계를 상징하는 해골섬은 그에게는 다만 이용할 수 있는 대상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 그가 마지막에 남긴 유명한 대사. "미녀가 그를 죽인거요."(Beauty killed the beast.)는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그가 자신이 잊고있던 '소년성'을 다시 기억해냈다는 의미와 더불어, 자신을 소년성의 세계에서 끌어낸 첫사랑에 대한 아린 상처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반면 작가 '잭 드리스콜'(애드리안 브로디: Adrian Brody)는 '소년성'을 완전히 잃지 않은, 지켜가려고 노력하는 어른을 상징한다.
그는 잘못된 상황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한다. (그닥 효과적이지는 못하지만... )
그리고 '소년'이 아닌 어른이기에 자신이 몸에 익힌 '문명적이고 세련된' 방식으로 '앤'과 사랑에 빠진다. 그는 여자에게 다가서는 법을 알고, 여자들의 방식을 이해한다.
그는 역시 '앤'(나오미 왓츠:Naomi Watts)를 사랑하지만, 킹콩을 질투하지는 않는다. 그는 소년기를 거친 어른이기에 그 시절의 사랑이 이루어지기 힘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있다.
결국, 킹콩이 죽는 순간 (소년성이 파괴되는 순간) 앤은 그의 곁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앤'이 킹콩에게 느끼는 감정 역시 '사랑'이기는 하지만 '잭'과의 사랑과는 약간은 다른 것임을 알고 있는 것이다.
감독 '피터 잭슨'(Peter Jackson)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주변을 돌면서 킹콩을 공격하는 비행기의 탑승자로 카메오 출연을 했다고 한다.
그 자신이 자신의 창작물을 죽이는 것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필자는 개인적으로 '감독이 자신의 소년성을 파괴하는 것'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감독이 자신의 '소년기'를 그리워하며 <킹콩>이라는 창조물을 다시 세상에 되돌렸지만, 어른들의 세상에서 '소년기'적인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영화 속의 '칼'의 캐릭터는 아마 자신에 대한 자조적인 시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자신의 영화를 완성시키기 위해 주위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속이기도 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밀어 넣는 그의 열정은 간절하고 어쩌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칼'은 또한 순수의 세계를 위협하는 파괴자이자, 자신의 목적을 위해 친구를 이용하는 악독함을 지닌 인물이다.
친구인 '잭'이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사람이다."라고 그를 표현한 것은, 자신이 영화를 사랑하여 감독이 되었으나 현실과 타협하여 조금은 색깔이 달라지기도하는 자신의 영화에 대한 속내를 드러낸 것은 아닌지.
'잭'의 캐릭터는 상업 영화에서 초연한, 흥행의 여부를 떠나 자기가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을 상징할 수도 있겠다.
그가 돈이 되는 영화를 마다하고 연극에 집착하는 것이 바로 그런 의미였을 것이다.
그러나 배가 출발하는 순간 내리지 못한 '잭'에게 "네가 정말 원했다면 배에서 뛰어내렸겠지."라고 '칼'이 말하는 것은 어쩌면 상업영화 감독으로써의 비꼼은 아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가 해골섬에 도달하기까지의 긴 여정을 필요로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소년성'과 대비되는 현실의 세계(어른들의 세계)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음과 동시에, 감독 자신의 '이상'과 '현실'의 갈등을 보여주기 위한 두 세계의 대비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감독 자신이 총질을 해서 킹콩을 죽임으로써, 다시 자신의 동경의 대상이자 배척해야 할 대상인 '소년성'을 죽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 영화 <킹콩>에 특히 남성들이 열광하는 이유가 아닐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의 순수함을 애써 부인하면서도 거기에 대한 동경을 버릴 수 없으니 말이다. '소년기'에 대한 이 이중적인 감정이 은연중에 깔려있는 이 이야기에 당신이 열광하는 이유.
이제서야 알 것 같다.
그리고,
<데드 얼라이브>나 <고무 인간의 최후>같은 영화들로 기괴하고 독특한 매니아 감독의 길을 가던 그.
그가 대중적인 상업 영화 감독으로써 변신한 자신에 대해, 어쩌면 조금은 냉소적인 미소를 보낸듯한 이 영화에 대해 열광은 할 수 없으나 박수를 보낸다.
and so on.
표를 구하기가 너무 힘이들어...(요사이는 방학에 수능을 마친 학생들이 너무 많아서.. 영화 티켓, 공연 티켓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결국 아담한 스크린의 시티극장에서 영화를 보구야 말았다.
화면이 작아서 더 몰입하기 힘들었던 걸까..
이런 영화는 대형 화면에서 봐줘야 실감나는 것을..ㅠ.ㅠ
<킹콩>이 아니라.. '미디엄 콩'이나 '스몰 콩'을 보고 온 것 같다..
ㅡ.ㅡ;
written by suyeun
www.cyworld.com/nightflightca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