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디리 1관.
배우들 연기도 괜찮고, 내용도 괜찮고, 웃기는 방법도 조금 신선한 냄새가 나서 좋았고, 특히 놀이판 벌이는 부분은 다른 영화에서 찾기 힘든 수확.
그런데 개봉 당시 한동안 여기저기 불태울 뻔했던 그 열기에는 공감 못하겠더군요.
감독이 어떤 사람이고 경력이 어떻게 되었건 간에 씬 넘어갈 때마다 가슴 속에서 껄끄럽더군요. 마치 떡을 미처 다 씹기도 전에 목구멍으로 넘기는 기분이랄까?
특히 후반 가서 일을 한꺼번에 진행시키려니까 영화가 숨을 헐떡이는 소리가 내 귓전을 울리다시피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선지 일을 어서어서 덮어버리려는 냄새도 나고 말이죠.
녹수가 누명 씌우려고 일 꾸미는 건 시작할 때부터 어떻게 끝날지 예상이 갈 정도로 심심하기 짝이 없는 에피소드였고, 경극-사냥-누명-장생 눈 지짐-중종반정&막판 줄타기 로 이어지는 부분은 정말 너무 난데없다 싶을 정도로 영화가 급박하게 돌아가서 짜증날 정도였네요. 그런데도 처선이나 장생의 대사가 중간중간 길게 가는 부분이 있어서 템포 조절이 제대로 안 되는 것 같더군요.
내가 보통 아무리 후진 영화여도 누가 죽으면 가슴이 뭉클해지기 마련인데 육갑이 죽을 땐 별 느낌이 없었어요. 배우들이 열심히 연기한단 느낌은 받았음에도 그 장면을 그려내는 게 뭔가 묵직한 감동을 건네주질 못하는 느낌이랄까요.
배우들 연기는 다 좋았는데 말이죠. 감우성-정진영-유해진 라인은 웃기고 뭉클하게 하고 좋았단 말이에요. 뭐, 유해진 포함한 육칠팔은 나오는 부분마다 재밌었어요. 강성연도 몸에서부터 요부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게 뭔가 다져진 느낌이 났고요. 그런데 이준기는, 그렇게 불어치던 바람에 비해 이거 힘이 너무 약한 거 아닌가 싶더군요. 예, 물론 신인이라고 염려한 것에 비하면 엄청난 수확이겠지만 왕남 관련 감상 올라올 때마다 이준기 얘기만 넘쳐나는 건... 이건 좀 아니다 싶더군요. 이준기가 노력은 한 것 같았어요. 그의 표정과 몸은 여성스런 냄새도 풍기려고 노력했어요(후반 가면 갈수록 얼굴은 점점 딴청을 피웠지만). 그런데 문제는 목소리. 목소리가 그리 와닿지가 않더군요.
책 읽는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좀 더 노력해봐 수준에 가까웠어요.
왜 올해 개봉했던 수많은 영화 중 유독 이 영화만 두번 봤네 세번 봤네 네번 봤네 하는 글이 그리도 많이 올라왔을까 싶은 생각도 들더군요. 이 영화가 이야기를 해결해 나가는 방식은 뭐 뻔히 보이는 수준이고 그렇다고 흘러가는 게 매끄럽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남는 건 결국 조선의 모습과 캐릭터의 매력, 화면의 때깔(근데 이 점은 의상 같은 거 빼면 별로...) 그 정도인데...
제 생각은 좀 이래요. 조선의 모습이나 다룬 캐릭터들에 관심 많던 분들이 이 영화를 보고 감명을 받은 상태에서 (이런 상태에선 적어도 한 번쯤은 더 볼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을 보기는 여러 모로 고민할 문제인 것 같아요.)
그 고민을 깨부숴준 게 바로 수많은 팬분들 아닌가 싶네요. 여러 모로 분위기를 탄 게 아닐까...
이 영화를 세네 번 볼 정도면 차라리 이 영화의 이야기를 먼저 다룬 '이'를 한 번 보는 편이 낫지 않았나 싶어요. 솔직히 전 그 '이'의 존재 때문에 영화가 노력해야 될 부분은 그만큼 줄었지 않나 싶기도 해요. 본 사람 얘기 들어보면 그리 다른 것도 없으니 영화가 더 못한 수준이었으면 거의 날로 먹었다는 소리 듣는 거죠 뭐.
저도 재미있게 봤어요.
하지만 이것도 '웰컴 투 동막골'처럼 약간 인기가 과장된 감이 없지 않아 있네요.
-제 친구가 깍두기 빨간 게 옥의티라고 했는데, 전 미처 그것까진 못봤네요. -인형극에 대해 말이 많던데, 감독이 급하게 넣은 만큼 인형극 장면만 나오면 그 앞뒤랑 따로 노는 느낌이 나더군요. 인형극 마무리도 대체로 어정쩡하고. -인간들 영화 보는 태도 개차반. 대체적으로 수군거리면서 보더라고요. 대체로 여러 번 보는 사람인 듯 싶더군요. 역시 관람층은 여성이 압도적. 제 앞 커플은 남자가 두세 번 째로 보는 것 같고 여자는 처음 보는지 여자가 끊임없이 뭘 물어보고 남자가 친절히 설명해주는데 몸 수구려서 둘 귀 사이에 입 대고 '조용히 좀 하쇼'라고 하려다 귀찮기도 하고 상대 말자 싶기도 해서 그냥 봤네요. -엔딩 크레딧이 생각보다 짧아서, 허무함까지 느껴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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