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똑같이 동시에 번쩍, 하고 사랑하게 되는 일이 흔할까?
누군가는 혼자서 먼저 시작할 것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고 더 먼저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다.
그리고 아마 그가 더 행복할 것이다.
사랑받는다는 것은 축복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기적이다.
그런 기적속으로 발을 들여 사랑에 목말라 하고 기다리고 바라보고 앞서고 상처받고 설레고 그리워하는 그 아름다운 것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면,
그 기적을 허락한 상대에게 축복을 알려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실재로 행복은 미래에도 현재에도 모르고 오로지 과거형에서만 허락된다고 한다. 행복할 때 행복을 듬뿍 느끼는 사람은 드물다는 말이다.
사랑받는 행복을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다 느낄 수 있도록.
사랑받는 축복을 누구보다 풍부하게 누리고 있음을, 바로 지금 이 순간 이 곳에서.
모든 것이 지나고 나며 더 절실하고 더 안타깝고 더 아름다워 보인다.
놓친 자신이 원망스럽기 때문이고, 귀뜸도 해주지 않고 지나가서 밉고, 마음껏 누리지 못 해서 슬프다.
잡을 수 있다면 힘껏 잡아야 한다. 잡아 놓고 나면 모른 척 할지도 모르고 그래서 또다시 놓칠지도 모르고 잡고 나면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은 힘껏 끌어당겨 안아야 한다. 내가 원한다면.
떠난 것을 가슴에 안고 애닳아 하는 것은 자기위안이며 변명이다.
그저 아름답게 만들어놓기만 하면 무슨 소용인가?
시체를 끌어 안고 아무리 아름다움 꽃으로 덮어놓아도 살아있는 생기를 당할 수 없다.
힘껏 끌어당겨서 안아야 한다. 지금 사랑한다면.
사랑은 놓치지 마라.
어디에나 사랑은 있고 누구나 사랑을 하고 모두들 절실하고 한번쯤 아파도 보고 울어도 보고 세상을 다 얻어 보기도 했을 것이다.
스물이든 서른이든 쉰이든 여자든 남자든 말이다.
최선을 다해 사랑한다는 것은 누군가가 판단할 문제는 아니다. 어쩌면 멋진 사랑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해서 흔들리는 사람들이 있다. 사랑스러운 배우들이 그런 사람들은 우리 앞에 보여준다.
나는 몰랐던 사람인지 물러섰던 사람인지 뛰어들었던 사람있지 각자가 판단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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