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일반 상식과 좀 맞지 않게, 좀 뒤쳐지는 듯하고 자기 멋대로인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더러 "세상물정을 모른다"고 곧잘 얘기한다. 아마도 "세상물정을 안다"는 것을 긍정적인 의미의 말로 전제한 상태에서 하는 말일 것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세부적인 과정들을 속속들이 다 이해하고, 거기에 맞게 자신의 행동도 유동적으로 변화시키며 살아가는 삶은 어떻게 보면 대단히 지혜롭고 효율적인 삶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세상에 영합하지 않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대로 나간다고 해서 "사회화가 덜 된 짐승" 소리를 듣는 것은 꽤 불쾌한 일이다. 다수의 논리에 따라가지 않고, 남들이 "예"할 때 "아니오"하는 사람을 무작정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놈"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우리의 이상적인 생각이라는 "심지가 곧은 사람이군"하고 생각하겠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이렇게 남들과 다른 방식의 길을 택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지 않다. 이 영화 <야수>는 이렇게 자기만의 방식을 추구하다 스스로, 혹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짐승"이 되어버린 두 남자의 끝이 보이는 여정을 보여주는 영화다.
겉모습에서부터 대단히 차이가 나는 두 주인공이 있다. 막나가는 형사 장도영(권상우)과 잘나가는 검사 오진우(유지태)가 그들이다. 장도영은 특유의 강단과 패기로 한번 쫓는 범인은 끝까지 잡는 악바리지만, 그 패기가 지나친 나머지 온갖 말썽으로 떠들썩한 인물이기도 하다. 반면 오진우는 세련된 외모에다가 대범한 성격까지 갖춰, 남들이 모두 두려워 하는 거물급 범죄자들을 잡아들이며 젊은 나이에 스타검사(대신에 그만큼 악명도 높은 검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인물이다. 어느날, 장도영은 오랜만에 교도소에서 출소한 배다른 동생 이동직(이중문)을 만나는데, 혈육을 만난 기쁨도 잠시, 이동직은 형이 보는 앞에서 의문의 패거리들에게 끔찍하게 살해당한다. 장도영은 동생에 대한 복수심에 그 살인의 배후에 있는 무리들을 찾아가는데, 알고보니 그들은 암흑가의 거물인 유강진(손병호)의 아래에 있는 이들이었다. 유강진은 오진우에 의해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풀려나면서 정계진출을 꿈꾸고 있는, 야심차고 냉혹한 인물이다. 오진우는 유강진의 라이벌 두목인 박용식이 살해된 사건을 계기로 다시 유강진의 뒤를 캐기 시작한다. 서로 다른 수사 과정에서 만나게 된 장도영과 오진우는 모종의 계약을 맺고 함께 수사를 하기 시작하는데, 불행하게도 그들이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록 더 깊고 참혹한 함정이 앞에 도사리고 있었다.
영화는 대체로 상당히 전형적이다. 남성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느와르 장르답게, 서로 다른 성격을 지녔지만 악바리 근성만은 닮은 두 주인공, 이들을 위협하는 거대 조직의 대결이라는 내용부터가 그렇게 딱 보기에 참신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이렇게 참신한 면은 별로 없는 이 영화가 막상 보니 꽤 괜찮은 영화였다는 사실은, 기왕에 참신하지 않은 거 기존의 특징들을 최대한 강화시키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자는 이 영화의 제작 목표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우선 배우들의 연기를 살펴보면, 권상우의 연기가 유독 눈에 띈다. 사실 이 배우가 그동안 맡아온 역할들이 <말죽거리 잔혹사>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만만한 역할들이었다. 생각이 얕은 문제아나 순수한 신부 등 뭔가 딱 뇌리에 남는 연기력을 보여주기에는 좀 부족한 역할이었던 게 사실인데, 이 영화에서 그는 정말 그가 말한대로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보여주려 애쓴 모습이 곳곳에서 보였다. 덕분에 너무 힘준 연기가 아니었나 싶은 아쉬움도 있지만, 단순히 외모나 몸매로만 알려졌었던 이 배우가 이렇게 연기력 면에서도 노력을 하니 뭔가 보이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남들한테 고분고분 대하질 못하고 매사에 반항하는 모습에선 기존의 악동, 장난꾸러기 이미지가 투영되면서도, 가족의 죽음 등 비극을 여러 차례 겪으면서 보여주는 감정의 폭발은 보다 진중하고 제대로 작정한 듯한 반항아의 모습이었다. 특히 어머니의 죽음(스포일러 아님)을 맞고, 화장을 하러 들어가는 관을 바라보며 눈물콧물 뒤범벅되어 울부짖는 그의 모습은, "진짜 제대로 작정하고 보여주는 연기같다"는 인상이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번 영화를 통해 연기력면에서도 성장한 만큼, 앞으로도 이미지보다는 연기력이 부각될 수 있는 역할들을 많이 맡았으면 한다. 아, 참고로 솔직히 얼굴은 좀 너무 태운 게 아닌가 싶었다. 조금만 덜 태워도 됐을 듯 싶은데...;;
유지태의 연기도 나무랄 데 없다. 다만 권상우가 맡은 장도영에 비해, 유지태가 맡은 오진우의 성격이 냉철하고 이성적인 검사라는, 지극히 전형적이면서도 절제되어야 하는 성격이라 뭔가 폭발적인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지만, 그래도 오진우가 풍기는 대담하면서도 냉철한 검사의 이미지를 뿜어내기에 충분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특히나 재판장 안에서 판결 결과에 분노하며 긴 대사를 내뱉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꾸준히 이성을 지키며 원리원칙대로 가던 검사가 세상의 부조리함 때문에 머리끝까지 쌓인 화가 폭발하는 순간이었다고나 할까. 그런 애절한 분노가 잘 녹아 있었다.
그러나 이 두 배우말고도 절대 그냥 넘어가면 안되는 배우가 있으니, 바로 악당 유강진 역의 배우 손병호 씨다. 이 배우는 악역을 맡았으나 영화 내내 결코 음흉한 표정을 짓지 않는다. 그런데 웃는 표정에서도 느껴지는 악당으로서의 악마적 카리스마가 실로 "장난이 아니다". 계약을 거부하는 사람의 손가락을 거침없이 가위로 자르고 자신을 떠나겠다는 친구마저도 무참히 살해하는 냉혈한임에도 불구하고 행동 하나하나는 조심스럽고 말투 또한 욕설을 한마디도 하지 않는 고상한 분위기라, 악행이 보여지는 순간순간의 살기가 더욱 소름끼치게 다가온다. <파이란>, <알포인트>, <효자동 이발사> 등에서 보여진 악역스런 이미지의 모습이, 이번 영화 <야수>에서는 그야말로 잔가지는 쳐내고 절제대로 응축된 핵심만 모여서 악역의 "결정체"를 이루었다고나 할까. 암튼 등장하는 순간 관객들도 절로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그만큼 강력한 아우라를 지닌 연기를 보여주었다.
앞서 얘기했듯, 영화는 상당히 전형적이라 어떻게 참신하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찾기 어렵지만 일단 배우들의 연기가 가지고 있는 캐릭터 내에서 거의 최대치에 가까운 폭발적인 연기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첫번째로 강렬한 인상은 남긴 것이 분명하다. 두번째로 이 영화가 강렬한 인상을 주는 부분은 그 전형성도 그저 그러려니 하면서 끝까지 돌파하는 "우직함"이다. 그런데 이 우직함이 맞닥뜨리는 상대는 비단 그들이 물리적으로 맞서는 유강진 일당만은 아니라는 점이 재미있는 부분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등의 귀에 익은 대사도 꽤 등장하고, 정의를 위해, 사랑하는 이의 복수를 위해 끝까지 악당을 뒤쫓는 콤비의 모습도 전형적인 인물 구조지만, 이런 구조 내에서도 어떻게 에둘러서 표현하거나 하지 않고 그들의 행적을 과감하게, 선굵은 표현으로 뒤쫓는다. 교통 체증은 상관없이 범인이 몰고 가는 차를 목숨을 걸고 뒤쫓고, 남들은 다 말리는 거물급 인사의 뒤를 캐는 작업을 반드시 성공하고 말겠다며 이를 악물로 시작한다. 소똥 밭에서도 아랑곳않고 뒹굴면서 싸우고, 거리의 빽빽한 자동차들 위를 건너가며 추격전을 벌이는 등 이들의 행적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고, 겁도 없다. 이런 모습이 느와르의 전형적인 모습인 "파워풀한 남성성"을 오히려 더 부각시키며 느와르만의 매력을 잘 살려준다.
그러나 중반 이후, 영화는 주인공들의 이러한 남자다운 우직함에다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배경을 세운다. 그것은 바로 세상의 직접적인 태클이다. 심문 과정에서 폭력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구속되면서 분위기는 강도영과 오진우가 내키는대로 밀고 나가던 이전과는 정반대의 분위기가 되는데, 바로 이때부터 극의 반전은 시작된다. 이전까지는 그저 주위 사람들이 말리는 분위기 정도에서 그쳤고, 되는대로 밀고나가는 두 콤비 앞에서 난관들은 제 풀에 못이기고 그들의 길을 비켜주었다. 그러나 그정도와 비교했을 때 어림도 없는 보다 막강한 태클 - 폭압 수사로 인한 구속 - 에 걸리게 되면서 이들은 보다 강력한 적을 만나게 된다. 유강진이라는 인간도 몹쓸 인간이지만, 그의 곁에는 이미 길들여진 세상이라는 강력한 보호막이 세워져 있었다. 유강진을 치기 위해서는 그들 키보다 몇십, 몇백배는 더 큰 세상의 벽을 뚫고 나가야 했던 것이다.
새삶을 살겠다면서 대외적으로 봉사활동을 벌이며 개과천선하는 "듯한" 유강진의 모습에 미디어는 감동의 물결에 빠지고, 곧 미디어와 대중은 그렇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쌓아가는 유강진이 원하는대로 그를 따라가게 된다. 결국 세상은 유강진이 뒤켠에 숨기고 있는 엄청난 함정을 캐내려는 두 사람의 편은 당연히 되어주지 않고, 폭압 수사 앞에서 유약한 척 엄살을 부리는 유강진의 편이 될 수 밖에. 이런 부조리 앞에서 그동안 끝까지 그래도 바람직한 원칙에 자신을 맞추며 살아오던 오진우는 원칙에 맞게 살아온 자신마저도 미친 죄인이 된 현실 앞에 절규한다.(개인적으로 이 절규 부분이 긴 설명조로 이어진 것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원칙이 맞게 행동한다고 해도, 남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나아가야지 유별나게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면 무모한 짐승취급을 받게 되는 것이다. 유강진의 외적으로는 물질적 권력, 내적으로는 아군이 아니면 적이라는 냉정한 사고방식에 힘입어 몸집을 불려갔고, 그렇게 커진 몸집 앞에 세상은 아무말도 않고 고개를 조아리게 된 것이고.
결국 끝까지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방향으로 가다가 결정적 태클에 걸린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더 격하게 나가는 길을 택한다. 어차피 인간같지도 않은 짐승의 모습으로 낙인찍힌 것, 끝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돌진하기로 한 것이다. 총알이 듬뿍 둔 총을 겨누면서, 세상을 향해 어깨에 잔뜩 힘주고 포효를 해 보지만, 결국 힘없지만 올바른 개인의 생각에는 여전히 무감각한 세상은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당당히 거리를 활보하는 그들마저도 처량하고 우습게 만들 뿐이다.
이렇게 이 영화는 자기가 원하는 방식대로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두 주인공의 모습을 부각시키면서도, 이들을 결코 멋있고 이상적인, 원하는 바를 이루고 유유히 사라지는 "황야의 무법자"처럼 그리지 않는다. 실제로 요즘과 같은 도시라면, 무법자는 서부영화처럼 정의에 호소하고 조용히 사라지기는커녕, 무섭게 날뛴다고 잡혀서는 교수형 당하는 경우가 다반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단순히 악랄한 악당과 맞서는 남자들의 모습이 아니라, 개인의 힘으로는 어떻게 해도 깨질 수 없는 세상과의 덧없는 싸움이 그려진다는 점에서 주인공들의 여정은 보다 비극적이고 처연하게 다가온다.
영화 제목 <야수>는 "거칠 것이 없는, 자기만의 방식대로 막나가는 사내들"의 의미도 물론 될 수 있겠지만, 내가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애꿎은 두 주인공들에게 사회가 붙인 부조리한 별명일지도 모른다. 단지 도덕적으로 자기가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대로 나아가는 이들더러, 비열하게 세상의 큰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자기 정체성도 내맡겨 버리는 세상은 "야수", "짐승"이라고 부른다. <킹콩>을 본 이후로 "짐승"에 대한 생각이 바뀌긴 했지만, 우리가 아는대로 "짐승"이라는 말이 비인간적이고 상종못할 사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라면, 진짜 짐승은 적어도 뭘 옳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사고관이 굳건하게 선 이들이 아니라 큰 힘에 말없이 복종하는 세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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