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아프다. 가슴이 아프다.>
카오스 그 속에서 울부짖는 거칠지만 순수한 영혼
선과 악이 뒤섞여있어 내 선이 악이 될 수 있고, 악이나, 선이 될 수 있는 그 혼돈속에서 나약한 존재는 절규한다.
카오스, 혼돈으로 흔히들 번역하는 그 속에서 질서가 태어났다고 한다. 누가 굳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인간들 사이에 질서가 이루어지며, 여러 개념들도 잉태된다. 선과 악의 개념도 그 의미는 추상적이나, 인간들의 행동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 아니던가.
자신의 위험을 동물적 감각으로 미리 파악하고 피하는 군상들도 많지만 자신의 끝을 어렴풋이 감지하지만 뒤를 돌아서가면 영원히 용납할 수 없을 것같아 그 불구덩이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들어가는 남성다움의 표상이 되고자 하는 사나이 두 사람으로 느껴졌다. <야수>라는 영화속 장도영형사와 오진우검사말이다.
볼수록 얄미워서 치가 떨리게 하는 악의 상징으로 유강진이란 인물이 나온다. 평범한 사람들은 잘 접하지 못할 군상이기는 하지만, 우리 사회의 어두운 세계 어딘가에 존재하는 인물일 것이다. 가식과 진실사이를 교묘히 오가고, 양심에 가책이 있을까하는 의야심을 주게하는 행동도 서슴치 않는 그런 인물들이 아마 있을게다. 돈도 권력도 함께 지니고 말이다. 이런 사람일수록 머리가 비상한 편이라 게임에 이기기가 쉽지않다. 거칠고 제멋대로지만 돈도 권력도 없는 장도영같은 이들에게는 범접을 불가능케하는 그 어떤 것 때문에 이 영화 <야수>는 관객의 마음을 시리게 한다.
스토리에 녹아든 영화음악
심장박동수를 높여주는 음악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자동차 추격신부터, 엔딩에 이르기까지 스토리속에 폭 빠져서 장도영의 거친 숨결을, 오진우의 한숨소리를 따라갔다. 영화매니아들에게는 전형적인 느와르 스토리라 치부될지도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게는 공감가는 이야기 구조였다. 장도영형사의 아픈 가슴이, 오진우검사의 답답한 가슴이 어느 결에 내 가슴에 젖어들어 주인공과 한 몸이 된듯 결말을 향해 정신없이 나아갔다. 중반쯤인가, 오진우검사가 부하직원들을 거느리고 피의자 검거에 나서는 장면에서 몇 번인가 거듭나오는 그 심장박동같은 배경음악만이 선명히 기억될 뿐 그 이후에는 음악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몰입해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장면에 음악이 있었던가 싶을만큼 배경음악은 튀지 않고 장면에 녹아들었나보다.
덜 실망하려 했었던 내가 부끄럽다.
진실을 말하자면, 기대치를 많이 낮추고 가서 덜 실망하려 했었던 내가 부끄럽다. 특히나 극장영화의 경우 별도의 비용지출과 공간이동이 있어야 하므로 적극적인 행위가 수반된 자신의 의지가 필요한만큼 그 시간에 자신이 선택한 작품에서 감독이 말하려는 메세지가 나름대로 가슴으로 느껴질 때 다가오는 것을 '감동'이라는 단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느와르의 특성답게 비현실적인 장면묘사가 당혹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으나, 처음에도 말했듯이 본인이 선택하는 과정에서 이미 액션느와르라는 것을 인식했다면 그 장르에 충실한지에 오히려 점수를 주어야 하지 않을까한다. 현실적인 캐릭터여야 했었지 않냐던가, 비현실적인 장면이 이해가 안간다던가 하는 리뷰들은, 애초부터 느와르라는 장르적 특성을 호감모드에 담지 않아서 인듯도 하다. 취향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는 것과 감상의 다름 혹은 차이를 다시 한번 절실하게 느낀다.
난, 영화에서 꼭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인물만을 봐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영화는 영화이기 때문에 '영화같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미 우리 세대는 환타지소설류로 분류되는 이야기구조에 알게모르게 익숙해져 있다고 생각되기에 주인공의 감성이 관객들에게 읽히고 공감이 간다면, 비록 현실적으로는 1%도 일어날 가능성은 없지만, 감독과 주인공이 만들어낸 장면을 통해서 대리만족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면 그 관객에서 있는 그 영화는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생각된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오랫만에 가슴이 뛰게 만든 영화이고, 극장문을 나서면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가슴에 여운이 남아있는 영화이다.
집에 와서도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영화를 보고 있을 때보다 더 장도영이 불쌍하고, 오진우가 안쓰러웠다. 장도영형사에게 그런 엔딩씬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하고 극장에 갔기에 무척이나 놀래서 끝부분은 나도 모르게 손으로 눈을 가리고 말았다. 도저히 볼 수가 없었다. 보기드문 엔딩이라는 기사를 읽기는 했으나, 솔직히 너무 충격적이었으며, 비장미와 비쥬얼이 훌륭한 장면이었다.
마음아프다, 마음이 아프다, 가슴이 아프네요...
영화보여줄께 가자고 했더니, 어떤 영화? 하고 물으며 다른 영화를 은근히 보고싶어하던 친구는 몇 번이나 그 영화를 들먹였으나, 이미 예매해 놓은 것이니, 오늘은 <야수>를 보고 다음에 그 영화를 보자고 했다. 전혀 사전 지식이 없는 친구에게 액션느와르라는 장르만 이야기 해준 후 극장으로 향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온 친구의 입에서 더 이상 다른 영화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그 친구는 몇 번이나 되뇌었다. 마음이 아프다. 마음이 아프다. 어쩌면 시쳇말로 나와 코드가 맞는 친구여서 인지는 몰라도 둘 다 똑같이 그 순간에 아 문장을 읊조리고 있었다. 마음이 아프다...
권상우가 없다.
스타가 아닌 배우가 되기위해 장도영 자체가 되어버린 권상우 이 영화속에서 권상우가 없다. 단지 펄펄뛰는 열혈형사 장도영만 느껴진다. 살짝 달뜬 톤으로 그렇게 연신 움직여대는 인물처럼. 이후에 그의 작품선택이 궁금해진다. 그것은 인간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법정씬을 클라이맥스로 잘 살려낸 유지태
검사라는 신분에 걸맞는 태도와 냉철하고 차가운 성격을 잘 표현해 내는데에 중저음의 보이스컬러는 잘 매치되었다. 문화적 욕구를 다양한 방법으로 즐기려 하는 것 같은 유지태의 행보가 궁금하다.
살결떨림도 각 장면마다 달랐던 악역을 제대로 소화된 손병호
중견배우중에 이런 배우가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연극계에 오랫동안 종사했다고 들었는데 연기의 기본이 잘 다져진 한국영화계의 훌륭한 중견배우를 발견하다.
초보임에도 뚝심이 있어보이는 김성수감독
김성수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하였을까? 우리의 암덩이같은 현실을 꺼내어 보여주고, 씁쓸한 세상, 내가 이렇게 아픈데 같이 아프실래요? 적어도 내가 사는 사회가 나의 이 작은 외침 이후에 1평방미터의 공간이라도 청정한 공기로 바뀌었으면 하는게 감독의 바램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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